2015.10.11 10:07
드라마 연애시대를 백 번 봤어요. 과장이 아니에요. 각 잡고 보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면요.
틀어 놓고 책 읽고, 틀어 놓고 청소하고, 틀어 놓고 운동하고, 틀어 놓고 어쩌구 저쩌구...
FPS 게임을 해도 싱글 플레이만 죽어라 해서 어느 지점에서 수류탄이 날아오고 그런 거 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 플레이만 계속하는 이상하고 지루한 인간, 그게 바로 저에요.
그래서 어느 지점에서 어떤 장면에 어느 대사가 나올지 알고 있어요.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걸레로 바닥을 훔치다가도 정확한 타이밍에 이하나 씨와 함께 말 하는 거죠.
"양념 꼬치"
공기같은 영화들이 있어요. 바다로 치면 인천 짠물. 동해의 격동, 남해의 호방함과는 확실히 다르죠.
물때 잘못 맞춰서 가면 물이랄 것도 없는. 그런데 그게 또 묘한 매력이 있어요. "내가 바다드냐...?" 하는 무심함.
바다라고 찾았지만 바다는 그저 이름일 뿐. 그래서 그렇게 많은 불륜 커플들이 서해를 찾나봐요.
(바다는 됐고, 어서 서두르세... 음란함을 촉구하는 비일상의 일상성)
그런 영화들은 감정을 끓어 오르게 하는 미덕은 없죠. 그래서 "연애시대" 처럼 두고두고 계속 볼 수 있어요.
곁눈질로, 주구장창, 질리지도 않고.
제 경우엔 "내가 고백을 하면" 이 그런 영화에요.
조성규라는 별 재미는 없는 사람이 만든 영화인데, 김태우 씨와 예지원 씨가 나오죠.
내용은 대충 이래요. 영화 제작자이며 서울 남자인 인성과, 간호사이며 강릉 여자인 유정이 각자의 일상을 지겨워 하고,
서로의 일상을 동경하면서 주말마다 집을 바꾸었다가 뻔한 갈등을 겪죠. 그 갈등의 끝은 연애의 시작.
이 영화의 미덕은 단연코 뻔함이에요. 거창하게,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 외치지도 않아요.
그냥 먹는 게 좋고, 마시는 것도 좋다보니 어쩌다 사랑도 하게 되었더라.
그 일상의 모습에서 공과금 지로용지 빼고, 욕실의 곰팡이 빼고, 개수대에 자라난 버섯 빼버린 뒤,
그 빈 곳에 (감독이 사랑하는)유재하의 노래를 깔아 놓으면 정체모를 뭉클함과 충만함이 자욱해 지는 거죠.
그걸 재주 좋게 잘 꾸려 놓으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되는 거고.
어제 "매드 맥스" 를 봤어요. 기타맨이 불뿜으며 연주하는 장면에서 오오!!! 절대간지!!! 감탄도 했는데,
그런 영화, 보고나면 기운 빠져서 다시 보려면 두어 달은 쉬어줘야 하잖아요.
그제 지어서 밥솥에 누워 있는 흰 쌀밥 같이 무심한 화면, 갈등, 화해가 더 위대하게 다가올 때도 있죠.
2015.10.11 11:43
2015.10.11 19:24
2015.10.11 12:04
2015.10.11 12:33
자기 전 습관처럼 틀어 놓는 영화들이 몇 편 있는데
올 해는 매드맥스랑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두편을 애정하고 있죠.
2015.10.11 19:26
2015.10.11 19:48
딴짓하면서, 책 보다가도 기타맨 나오는 장면은 관성 마냥 쳐다보게됩니다.
왓 어 러블리 데이는 진짜 올해의 대사인 듯 ㅋㅋㅋ
2015.10.11 13:51
ㅋㅋ전 "투 브로크 걸즈"를 습관처럼 틀어놔요. 시즌 1은 정말로 한 50번쯤 본 듯하고..
드라마 속 맥스와 캐롤라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어쩐지 편안해져서.
영화는 "시네마천국"과 스웨덴 퀴어영화 "kyss mig" 가 그러해요. 왜 그런진 모르겠어요 ㅎㅎ
혼자 있을 때 쓸쓸한 공기를 채워주는 영화들이 있는 거 참 좋아요.
나와는 상관 없이 돌아가는 화면 속 내용을 곁눈질로 보면서 잠드는 것도 좋구요.
2015.10.11 14:57
와 백번씩... 저는 열번 이상 본 건 없는 것 같아요. 책은 있지만.. 정말 좋지만 두번 보기 힘든 영화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라든지..
2015.10.11 15:11
그렇게 배우 멋적게 내가 먼저 대사를 해버리는 영화가 있긴 하죠.
외국영화는 난 우리말 배우는 자기나라 말.
서해바다 최남단은 중국과 접경이기도 하고 좀 쓸쓸한 느낌이 나는 것도 같아요.
근데 불륜커플이 왜 그쪽으로
2015.10.11 15:13
최근영화는 매드맥스를 선택하고 싶군요.
2015.10.11 15:35
전 한동안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가 그러하였어요
2015.10.11 16:17
2015.10.11 16:36
그냥 틀어두는 영화인데 자막이 필요한가요? 이미 본 영화고 내용을 대략 알고 있다면 자막 없이도 그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요?
2015.10.12 03:47
4시간 가까운 작품인데 대사량은 엄청 많고 또 주절거리는 그게 재미인데.. 수년 전에 한 번 본게 전부이니 내용도 이젠 기억도 안나려고 하네요. 불어를 모국어처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15.10.12 06:38
2015.10.11 19:39
2015.10.12 06:42
2015.10.12 02:12
2015.10.12 09:10
2015.10.12 20:23
러브레터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내새끼가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눈물 찔끔 거리다가,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볼 때마다 씨익 웃네요.
2015.10.12 16:11
조금은 다른 경운데, 저도 <화양연화>를 백 번은 넘게 봤어요. 술집을 매일 들락거리기엔 버거웠던, 가벼운 주머니의 주당들이 하루를 마치면 좀비처럼 모여들었던 연남동의 한 옥탑방, 제 비루한 자취방에서의 그 초라한 술자리를 그나마 조금은 농밀하게 채워줬던 배경이 그 영화였지요. 장만옥이 치파오를 몇 번 갈아입나 세다 한 스무 벌 언저리에서 매번 헷갈려 버리는 것도 늘 큰 안주거리였고요, 마지막에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담벼락에 대고 속삭이는 장면에선 우리 꼭 돈 모아서 저기 가보자 했던 거, 또 엔딩 올라가고 나면 비디오랑 티브이를 끄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CD(이 영화를 보러 씨네큐브에 갔다 선착순으로 주는 경품으로 받은 게 저 화양연화 VHS테이프였죠)를 틀었던 거 하며, 지지리 궁상으로만 생각했던 그 시절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녔을까 하고 아직도 그 친구들 만나면 이야기하곤 합니다.
2015.10.12 20:25
화양연화가 끝나고, 불 꺼진 방에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키스 타임!!인데... 안 되셨네요. ㅎㅎ
전 그런걸 취침용 드라마라고 부릅니다.ㅎㅎ
고르기가 꽤 어려워요.적당히 심심해야 잠에 들수있고 적당히 재미나야 잠들기전까지의 외로움을 달래줄수 있거든요. 전 약간 싱겁게 화면이 아닌 말로 웃기는 일드(주로 쿠도 칸쿠로가 극본을 쓴)를 틀어놓고 오분안에 잠듭니다.따뜻한 감성이 있는게 여러번 봐도 좋아요.리걸하이류는 시니컬해서 지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