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2015.10.29 13:34

bap 조회 수:2231

 

가을이 깊어가네요. 좋아하는 시 올려볼께요.  한번 읽어보세요.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 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았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 때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 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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