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3 08:39
기형도 시 빈 집 기억하시는 분 계십니까...수능 칠 때 입 속의 검은 잎은 EBS 문제집에서 한번 본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수능 문제집 수능 친 다음날에 죄다 버렸습니다.
빈집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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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상실되어 아무것도 없는 절망의 공간
사랑을 상실한 화자의 공허한 마음을 상징하는 공간
이 시는 사랑을 잃은 화자가 사랑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의식을 치르는 행위와 같다. 사랑을 잃은 화자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행위가 자신의 사랑과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의식일 것이다.
화자는 사랑했던 순간의 대상들을 하나하나 불러 가며 사랑했던 당시의 추억을 떠올린다. '잘 있거라'를 반복하면서 그것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지만, '잘 있거라'라는 표현 속에는 사랑의 추억들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을 상실한 화자는 세상의 빛을 잃은 장님이 된 듯하다. 그는 사랑의 대상들을 빈집에 넣어 두고서 마지막 문을 잠근다. 빈집은 사랑의 추억과 열망을 상실한 화자의 공허한 내면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이곳에 사랑을 가두고 문을 잠그는 장면은 슬픔을 배가한다.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가엾은 사랑은 빈집에 갇혔다. 그리고 화자의 마음도 공허한 빈집과 같다. 사랑을 잃은 화자의 허전함이 짙게 느껴진다.
이 시에서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는 요소로 보기 어려운 것은?
① 시구의 반복
② 호격 조사의 반복
③ 종결 어미의 반복
④ 통사 구조의 반복
⑤ 시각적 이미지의 반복
⑤
시각적 이미지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저만 빼고 믿는 세간의 진실인지 소문인지 중에는
(사실 저는 이것을 여러가지-_- pathway에서 읽었습니다) 유명 신문의 문화면에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기사로 실리기도 하고, 인터넷 유머게시판에 돌기도 하고, 핸드폰 파는 게시판에서 댓글로 달리기도 하는데,
>>시 빈 집은 기형도의 (생전의) 애인이 게이지만 위장결혼을 하고 나서 쓰여진 시다. 빈 집은 기형도의 애인이 위장결혼으로 만든 가짜, 헤테로를 흉내낸 가정을 상징한다. 그 빈 집에는 기형도의 애인과 그의 처가 사는데, 기형도는 그것을 가짜라고 생각했고 빈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라는 설이 돌더군요 -_-;;; 하지만 어디에도 근거가..없는데......?
진상이 궁금합니다.
2015.11.03 09:07
2015.11.03 16:49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 장정일의 글이 참 좋군요.
2015.11.03 11:22
저는 산 자건 죽은 자건 본인 스스로 밝히는 게 아니라면 그의 성적지향에 대해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고양이도 죽이는 그 호기심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는 없겠죠.
2015.11.03 13:38
비하인드 스토리를 떠나 빈집은 좋은 시입니다. 제 청춘의 한때를 같이 했던 이별가같은 시..
2015.11.04 08:35
수능 문제들 속에서 문학 작품들이 이렇게 해석되고 문제화되고 있었군요.. 순간 어지러웠네요..
이러고선 문학을 즐기는 인간을 정녕 키워낼 수 있을까요..
".. 는 뜻에서 나쁜 시인은 다 마초이고 좋은 시인은 다 게이다"... 저도 장정일씨 글이 좋네요.
시사인에서 장정일씨가 이렇게 적은 적이 있더군요,
「고 기형도 시인은 게이들의 크루징 장소였던 파고다극장에서 급사하는 바람에 게이였다는 소문이 끈질기게 따라 다닌다. 또 죽기 한 해 전인 1988년, 대구에 있는 나를 찾아와 "그에게 내 고통의 윤곽을 조금 말해주었다"라고 썼던 여행일지가 마치 '커밍아웃'을 한 것인 양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장소로 말하자면 게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호기심을 느낄 서울의 명소인 데다가, 그는 기자이자 시인이었다. 또 그는 자기 시의 진로를 놓고 고민을 털어놓았으나, 나는 그의 말을 기억도 하지 못할 만큼 무심히 넘겨들었다. 기형도를 '게이 아이콘'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은 그의 시집에 성 소수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퀴어감수성'이 충만하다고 하지만, 지배적인 고정관념을 되풀이한다는 뜻에서 나쁜 시인은 다 '마초'이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실어 나른다는 뜻에서 좋은 시인은 다 '게이'다. 설령 그가 진짜 게이라고 한들,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 모욕이 되길래 이런 석명까지 한다는 말인가? 다만 너무 늦기 전에, 나만 아는 사실을 밝혀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