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행복하다

2015.08.27 19:04

Kaffesaurus 조회 수:2752

하나.

작년 여름에 선물이는 갑자기 이상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고생을 했다. 온 몸에 두드러기 나듯이 뭔가 나서는 아이가 간지럽다고 그러는데 원인이 뭔지, 병원에 가 여러번 검사를 해도 알 수 가 없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이 자기가 뭐에 반응하는 지 모르는 알레르기 환자가 많다면서 반응이 일어나면 약을 계속 먹는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이번 여름이 다가 올때 또 작년처럼 아이가 고생할 까 걱정했는데 전혀 아무 반응없이 지나간다. 나도 작년에 갑자기 헤이즐넛에 알레르기 반응을 해서 기도가 막힌 경험을 한적이 있다. 그만큼 힘들었다. 아, 아이도 그만큼 스트레스 받았던 거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작년 이맘때엔 선물이랑 나는 아침마다 싸웠다. 선물이는 아침도 안먹겠다, 유치원도 안가겠다, 다 안한다고 하는 아이를 끌고 옷을 입히고 싸우다 이기면 입에 빵조각 넣어주고 지면 그래 먹지라 라고 하고 그러면서 출근을 했었다. 지금은 소리 높이는 일 없이 웃으면서 밥먹고 잘먹었습니다, 인사하는 아이한테 접시 가저다 놓으라고 하면서 아침을 마무리 한다. 우리 아침 먹는 걸 스카이프로 보는 친구가 가끔 다행이야 라고 말해주는 데 정말 다행이다. 

조금만 일에도 까르르 웃는 아이. 며칠전에는 떡복이를 보더니 엄마 불났어, 여기 불난것 처럼 매워 라고 말하는 말할 줄 아는 아이. 말을 못하던 안하던 때에도 얼마나 큰 심장과 이해심과 아량을 가졌는 지 보여주었던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나의 아이라니. 


둘 

지난 토요일, 스웨덴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오늘이 여름 마지막 화려한 날이라는 걸. S와 나는 내가 이제서야 발견한 시를 가로지르는 개울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여름이 시작하던 때 이 카페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형을 만나러 미국에 가있었다. 당신이 돌아오면 여름이 가기전에 꼭 같아 가고 싶은 카페가 생겼어요 라는 문자랑 함께 사진을 보냈었는데 내가 보낸 사진은 얼마나 이곳이 아늑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지 못했다. 이 카페는 1800년대의 작은 오두막과 그에 딸린 아름다운 정원으로 되어있다. 들어서자 마다 와 좋은데 라고 말하는 S보고, 그러니까, 오늘이 이런 날씨 마지막일텐데 여기 오고 싶었어 라고 말하고 살짝 손을 잡았다. 오두막은 정말 너무 좋은데 우리랑 같이 생각한 사람들은 많아서 그 안이 붐비었다. 나는 자리 잡을까? 라고 말하는 그한테 뭘 먹고 싶냐니까 자긴 물외에는 마시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나한테는 커피를 그에게는 물과 블루베리 파이를 사서 나오니 그 넓은 정원, 큰 배나무 밑 벤치에 그가 앉아있다. 내가 가져온 것을 보더니 내가 가서 스푼 하나 더 가져올께요 라고 말하는 그. 스푼 밑에 하나 스푼이 더 있는 걸 못본 모양이었다. 말없이 보여주면서, 나 생각하는 사람인데 라고 말하니까 이 별 재미없는 말이 뭐가 재미있다고 크게 웃는다. 내가 커피를 한모금 마시는 동안 그는 파이와 바닐라 소스를 섞어 한 숫가락을 내입에 가져다 대었다. 

지지난 주에 에밀리와 S 이야기를 하는데 시리가 끼어 들어와 누구 이야기 해요?라고 묻는데 에밀리가 응 커피공룡 남자 친구 라고 말했다. 남자 친구이구나. 

우리 주위에는 노부부 한쌍, 팔에 깁스를 한 긴머리 여성을 중심으로 앉아서는 큰 사진기로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던 친구들 한 무리, 아직 십대가 되지 않은 어린 딸과 같아 온 엄마, 데이트 하는 한쌍들이 이 화창한 오후를 함께 했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마네의 피크닉 그림 같은, 정원에 앉아 커피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얼굴위에 떨어지는 배나무 그늘도 초록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힘든 일이 지나면 누가 진실한 친구인지 누가 아닌지 알 수 있다. 거짓된 모습에 괴로워 했던 나날들. 다시 생각하면 지금 나는 덕분에 누가 나의 친구인지 알고 있다. 울면서 보내던 그 날들을 같이 견디어 준 사람들이 있다. 가족도 아닌데 나와 선물이를 소중히 여긴 사람들.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난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모든 주어진 일들을 해가고 있다. 참 감사하다. 지난 주에 우리 리서치 세미나에 논문 텍스트를 가지고 참가했던 박사과정중 한명이 나보고 내가 지적해준 것이 자신한테 굉장한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별말을 하고 웃는데 아니 정말, 내가 뭔지 모르게 명확해 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당신이 지적해준게 아 이게 뭐다를 볼 수 있게 했다니까요. 라고 말해주었다. 다행이다. 감사하다. 


완벽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 어느 순간 작은 일 큰 일로 나는 또 울지 모른다. 내가 아는데 나는 약한 사람이라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The hours의 클라리사는 아름다웠던 어느 날을 회상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때 아 이게 행복의 시작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시작이 아니었다. 행복이었어. 순간이었다고. 나는 지금 그 순간에 있다. 행복하다. 많이 감사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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