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사회

2016.01.06 22:58

Koudelka 조회 수: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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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길에 난리가 난 4호선(당고개행) 탑승자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연초 첫 주라 일도 많은데 어제부터 감기기운에, 뭘 먹고 체 한 건지 오늘 아침부터 자꾸 토할 것 같은 것을 참고, 조퇴도 안 하고 꾸역꾸역 일하다 7시 넘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7시반쯤 4호선 지하철을 탔습니다. 네, 분명 저녁 7시 반이었죠. 지하역에서 뭐라뭐라 안내방송이 나오긴 했는데, 지하철은 들어왔고 사람들은 탑승하길래 저도 덩달아 탔지요.


그리고 그 때부터 제가 탄 역에서 30분 가까이 대기, 겨우 한 정거장 움직이고 또 30분 넘게 대기. 너무 피곤하고 몸도 안 좋은데 왜 하필 이런 불운은 내 몫인지, 그리고 중간중간 기관사의 안내멘트가 나오는데 그게 세월호의 '가만 있으라' 소리인 양 들려, 짜증과 분노가 임계치에 달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한숨 쉬는 것 밖에 없더군요. 그 중 참지 못하고 내리는 분들 더러 있었지만, 이대로 내려 택시를 타고 싶은 마음 굴뚝이었지만, 중간에 내릴 체력조차 안 남아 있어서 참고 참고 그러다, 이게 얼마나 가나 보자 미련한 오기 발동.  네, 저는 분명히 7시 반쯤 지하철을 탔는데  평소엔 30분도 안 걸리는 구간인데, 집으로 갈 5호선 환승역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린 시간은 9시 반.  하하하하.  환승하고 집에 오니 밤 10시. 어머낫!


저는 세상에 많은 것 바라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가 침대와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만 보장 된다면. 하지만 기본이라 말할 수도 없는 이마저도 담보가 되지 않음을 어느 순간부터 절망적으로 느끼고 있어요. 지난 11월 어느 주말엔 코엑스에서 열린 행사 마치고, 아무 물정 모르고 가다가 제가 내려야 할 역에서 지하철이 운행하지 않는다는 방송을 들었죠. 그렇게 종로에서 내려 하릴 없이 3시간을 갇혀 있었고 겨우겨우 3호선 안국역을 돌아가는 것만도

1시간 가까이 걸렸으나, 안전하다던 경복궁역에서 막상 내리니 거기 또 원천봉쇄가 시작됐었죠. 아이러니컬하게도 저는  소년같은 어린 의경이 따로 안내해 줘서 겨우 빠져 집으로 갔습다만, 이러기까지는 다음날 일요일에도 아침부터 출근해야 하는 무고한 시민의 일상을 웅변(지랄)했던 결과였죠.

 

그럼에도 난  몸 건강하고, 그래 소말리아 아이들처럼 밥 굶는 거 아니니 이 정도는 평범한 불운쯤으로 여기자 했던 제 인내심이 바닥난지는 오래.

사는 게 피곤하고 너덜거려서인지, 언제부턴가 저는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습니다. 남 상황, 사정 봐 줄 여력 없어요. 내가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살려고 하는 만큼 이 사회도 내 사생활 피로회복을 방해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발상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거든요. 그런데 잘 안 되네요.


이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정치에 둔감하고 관심도 없는 나 조차도 특히나 어느 시점부턴 너무 심하다고 느껴요. 과거 어느 정권 때도 이 정도 였나요? 비단 정권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도 안 되는 일 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그리고 갈수록 너무 나빠집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요. 힘을 내서,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지경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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