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금 11시 24분인데, 오늘 6월 17일에 올라온 글 갯수하고 조회수를 합쳐서 나눠봤어요.

글 갯수는 65개고 조회수 총합은 55416회에요. 나눠보면 글 하나당 조회수가 평균 852회 정도 되고요. 그런데 오늘은 듀게가 열띠게 이야기를 한 날이었다고 하니까..

6월 6일 골라서 세 봤어요. 이 날은 특히 조용한 날이었나 봐요. 글 갯수는 21개인데 조회수 총합은 35778이에요. 나눠보면 한 글당 조회수가 1703회 정도 되요.

댓글도 중요하지만 그것까지 세보기엔 너무 수고가 많아요 ㅠㅠ (대신 아래 비교할 오유도 댓글은 무시했어요)

글 쓰는 데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하루에 용기를 낸 사람이 65명이라 하면 그 사람을 보는 시선은 55416개 였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한명이 견뎌야 하는 시선의 수가 852개라고.

오유를 들어가서 몇몇 게시판의 오늘치 기록을 살펴봤어요. 대부분의 소인원 게시판은 척 보기에도 조회수가 별로 없고..

조회수 나누기(/) 글 갯수 = 평균 조회수
요리 게시판 38226/159=240
웃긴자료 게시판 133989/160=837

웃긴 자료 게시판은 듀게처럼 개인의 표현과 소통보다는 재미있게 소비될 수 있는 자료를 올리는 공간에 가까워보여요. 즐기기 위한 공간이고 즐겨지기 위한 글들이 올라오는 곳이죠. 이런 게시판이 생산자보다 소비자(보는 눈)이 많은 건 당연한 것 처럼 보여요. 그런데 웃긴 자료 게시판도 한 사람이 받는 시선이 837개에요. 오늘 듀게보다 적어요. 듀게는 어떤 날 심하면 한 사람이 1703개의 시선을 받는 날도 있어요.

듀게는 마치 안개에 쌓여있는 것 같아요. 듀게는 동아리마냥 사람들 면면을 징글징글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데, 받아야 하는 시선의 규모는 대형사이트에 버금갈만큼 커요. 어떤 논의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사람들의 수도 아주 많을 거에요. 마치 좁은 방에 자기 목소리 가진 유령 수백이 모여있는 것과 같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듀게에 글과 댓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신경질적이라는 거에요.


1.

개인의 개성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임의적으로 만들어져요. 개인은 개성을 일정부분 접으면서 커뮤니티의 분위기와 자신을 타협시키고요. 듀게의 매력은 개인이 개성을 드러내면 커뮤니티의 기조를 가져와 재단하지 않고 오히려 관심을 보여주기까지 한다는 거에요. 저는 사람들이 운영자 지정도 규칙 제도도 반기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에 대한 사랑과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집단 커뮤니티 아닌가요. 저도 오래 전에 진절머리를 내며 듀게를 찾지 않겠노라 했지만, 타인의 개성, 남과 다르다는 그 이유 때문에 관심을 주는 곳은 여기 말고는 없더군요. 트위터는 듀게의 확장판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곳도 온갖 개성이 넘쳐나는 곳이고 비아냥이나 조리돌림이나 심지어 도편 추방도 활발한 곳이죠. 하지만 적응하려니 힘도 들고 내 말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무섭고 특히 '같이 있다'라는 느낌은 안 들어서 그렇게 잘 쓰지는 않았어요.

권위라는 건 주관성을 인정한다는 거에요. 권위를 가진다는 건 공유되는 객관성 너머의 판단을 일차적으로는 무조건 관철시킬 수 있다는 거에요. '잠자코 따르고 이의는 나중에'라는 거죠. 듀게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주 명확해요. 규칙이나 제재를 세우려는 어떤 시도도 날아가버렸고, 운영자에게는 한 치의 주관도 허락되지 않는 초월적인 객관성이 요구되었죠. 제가 존경하며 사랑해마지 않는 문학과 인터넷계의 살아있는 셀러브리티 듀나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간의 몸과 정신을 지닌 듀나님은 요구되는 운영자 일을 해낼 수가 없었어요. 듀나님 또한 권위를 좋아하지 않는 듀게 사람들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까요.

진절머리를 쳐도 가끔 듀게를 들여다보긴 했어요. 하지만 '역시 그렇지... 하면서' 창을 닫은 적이 많았죠. 사실 생각해 보면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때에도 듀게는 비슷한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개인 대 개인으로서 마주하는 따뜻하고 소박한 글 옆에 믿을 수 없는 비아냥과 인신 공격이 난무하는 글이 있는 아주 상반된 공간. 마치 한 건물 안에 어떤 방은 담담한 감동이 느껴지는 티타임을 가진다면 바로 그 옆방은 술먹은 사람들이 시시한 일로 멱살잡이를 하는 그런 소리를 듣는 느낌이었어요. 어느 쪽이든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인 것 같아요.

말이 많이 길어지는데...


2.

제가 듀게를 보지 말자, 라고 생각한 이유는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사실 피곤함을 가중시킨 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맞서는 사람들이었죠. 어떤 글에서 처음엔 점잖게 말하던 사람들도 상대가 벽창호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다른 글에서 대뜸 비아냥이나 시비조의 댓글부터 올리곤 했어요. 왜 그러는지 이해해도 그런 모습을 보는 건 피곤했고, 모르는 때가 더 많았는데 그때도 그 나름대로 피곤했어요. 파티장에서 수많은 EX-인연들의 으르렁들을 마주치는 기분이랄까.

듀게에 요구되는 시련은 마치 점심에 뭘 먹을지 고르는 것과 같아요. 사람이 적다는 건 장점이에요. 짜장 통일이 쉽게 가능하죠. 사람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취향대로 모여서 방을 따로 잡고 먹어도 외롭지 않으니까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람이 적으면 목소리가 적어서 의견 맞추기가 쉽고, 사람이 많으면 주체가 많아서 서로 모여 만족할 수 있다는 거죠. 주체는 많은데 목소리가 적어서 잘 순응하면 분위기가 평화롭겠죠. 듀게는 이 두 측면의 단점만 모아놓은 상황이에요. 목소리는 많고, 주체는 적죠. 상대적으로 게시판을 보는 사람은 많고 글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에요. 그리고 주체들의 풀, 이라고 했을때, 그 구성원이 매우 유동적이에요. 일정한 순간에가시적으로 듀게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합이 듀게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가 없는 거죠. 게시판에 들어가면 누구의 글을 볼 지 예상이 되지만 막상 글을 쓰면 댓글로 누구를 만나게 될 지 알 수가 없어요. 여유 없는 좁은 공간에 시선을 던지는 수많은 유령들 중 어느 하나가 나와서 어떤 의견을 던질지 모르니, 듀게에 글을 쓴다는 건 유령들의 시선과 적대 가능성을 버텨내는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죠.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시비가 붙어도 당사자간의 일이야, 라는 인식 때문인지 도와주는 사람도 잘 없어요. 아, 사실 트위터를 못했던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었어요. 오는 시비에 용맹하게 응대할 수 있는 고슴도치 같은 인간들만 버텨나갈 수 있는 세계라는 느낌이라서. 부모를 거부하기 위해 보호도 거부한 사람들.. 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죠. 간섭받지 않기 위해 도움도 받지 않겠노라고. (지금도 사실 같지만) 하지만 지금은 어떤 한 태도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가져가려 노력하는 방식이, 반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모를 거부하지만 보호는 받을 수 있죠, 뭐. 사실 권위적인 방식도 가능만 하면 괜찮아요. 지금 듀게에서 누구 한명이 묻지마 권력을 휘둘러도 (손상된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정서적 손해를 제하면) 지금보다는 나을꺼라 생각해요.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권위는 권위자의 끊임없는 관심이라는 인력을 갈아넣어야만 올바르게 작동한다는 비용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해요. 운영 기반을 세우기에 완전한 주관성은 불가능한 비용이 들고, 완전한 객관성은 (듀게의 입은 많고 사람 수는 적고 양태는 천변하는 상황에서 실현하기에는) 환상이에요. 그럼 고려해야 할 건 주관과 객관 중 어느 방향으로 궁극적인 경주를 할 것이냐가 아니고, 둘 각각을 완벽하지 않게 가져갈 대안의 모색이겠죠. 주관은 우리가 비아냥이나 시비를 걸지 않으면 충족되고, 객관은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충족될 것 같고, 저는 서로가 예의를 지키기 시작하면 돌아오는 사람들,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3.

어떤 사람들은 듀게를 '존대하는 디시'라고 부르는데, 저는 듀게가 이런 모습이 절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존대하는 디시'는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하는 것도 아니고, 디시처럼 편하게 말하고 접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표면적이고 기계적인 존중 문법 속에서 상대를 상처주는 말은 정말 가볍고 쉽게 나오고, 그런 대화의 분위기가 편하고 가벼운 것도 아니라서 타협도 없어요. 저는 기계적인 문법 예절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최대한 상처 줄 궁리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저는 듀게에 까다롭고 억척스러운, '존대하는 디시' 스러운 사람들만 남고, 남을 존중하며 대하는 사람들, 디시스럽게 가벼운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게 밀려 떠나버렸노라고, 그 사람들의 고함 뒤에는 떠난 채로 듀게를 그리워하는 유령들이 있노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꼭 그렇지 않다는 건 알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떠나신 것도 사실이에요.

연어님도 잊어버리고 며칠간의 소요나 갈등도 잊어버렸으면 해요. 중요한 건 듀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대로는 괜찮으냐, 아니면 괜찮지 않냐 하는 결정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절대 괜찮지 않다고 생각해요. 싸우는 것도 막장도 누군가의 인격이 자의/타의로 진흙탕에 처박히는 걸 보는 것도 싫어요! 이건 제 주관이고 야망이고 욕심이에요. 일상적인 면대면 대화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 예의없는 상황을 조건으로 삼는, 일시적인 작성 금지 같은 제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이의가 없을 때까지 툭툭 튀어나오는 (저 같은) 유령들을 설득하는 근만장일치제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투표를 한다고 해도 따를 수 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왜 우리가 이런 규칙을 만들었는지 잊지 않는 거에요. 사람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메모를 하고 듀게 사람들은 규제를 그런 용도로 만들어 내고 싶어하죠. 하지만 개개인의 주관 없이 의존하는 규칙은 손쉽게 우회당해요. 아주 간단한 거에요. 명문화된 규칙에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누군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걸 보면 말려야 해요. 저는 상처받는 일 좋아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도 상처 받는 일 좋아하지 않아요. 상처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야 그저 안된 일이지만, 내가 괜찮으니 상대도 상처를 받아도 된다는 태도를 지닌 사람은 아주 아주 잘못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을 상처주고, 이겨먹기 위해 전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하고 그 상대가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해도, 돈이나 정책 시행이 오가는 실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저 논의라면 누구든 말을 예쁘게 하라고 끼어들어야 해요. 글에 관심 있고 자세히 읽었고 다른 의견도 말했지만 누군가의 비아냥을 보고 끼어들어 말리지 않았다면 폭력의 방조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쌍방적인 폭력은 폭력의 상쇄=0가 아니라, 폭력이 두 개인 거고요. 더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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