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개봉했을 무렵 <그놈이다>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때,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남녀가 영화 이야기를 종알종알 떠들고 있었어요. 낮은 목소리라 대화가 세세하게 들리지는 않았는데,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남자분이 특종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거나 볼까?" 하자 여자분이 인상을 확 일그러뜨리며 남자 분 팔뚝을 철썩 때리더라구요. 그러면서 한마디.

"그거 주변에서 보지 말라고 다 말려."

 

저는 좀 놀랐죠. 왜냐하면 특종은 비평가 평이 비교적 좋은 작품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물론 호평에 비하여 관객 수가 도통 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홍보가 덜 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여자분 반응이 유난히도 기억에 남아서 나중에 검색해봤는데 과연 관람객 입소문이 그다지 좋지가 않더라는...

아무튼 그때는 머릿속으로 '?'만 띄웠다가 금세 지나쳐버렸고, 오늘에야 VOD로 결재해서 특종을 봤습니다. 그리고 특종을 보지 말라고 말렸다는 그 여자분 주변사람들을 이해했습니다.

 

영화 재미있습니다. 플롯도 잘 짰고, 연출도 쫄깃하고, 배우들 연기와 앙상블도 좋습니다. 후반부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긴 해도 이 정도면 잘 만든 장르영화로 보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저한테 '특종 어때?'라고 묻는다면 '괜찮긴 한데, 난 비추야.'라고 말할 것 같아요. 잘 만든 영화라고 무조건 대중들이 좋아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특종으로 또 한 번 실감했다고나 할까.

 

특종에는 정을 붙일 만한 캐릭터가 한 명도 없습니다. 주인공 기자는 매력이라고는 쥐뿔도 없고 가까이 하기도 싫을 만큼 민폐 캐릭터예요. 주인공뿐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부산하고 히스테리컬하게 묘사되는데, 이게 정말이지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그나마 코미디 요소가 적절하게 섞여 있었기에 다행이었고, 어찌됐든 이야기의 힘으로 끝까지 잘 달려갑니다만 주인공한테 정이 원체 안 가다보니 나름 해피엔딩도 시원하게 느껴지질 않았어요. 캐릭터를 왜 이렇게 설정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우리 주변의 찌질한 소시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과, 우리 주변의 찌질한 소시민을 공감대 있게 묘사하는 것은 다르지 않나요?

 

잘 만든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워요. 감독의 연출력은 좋으므로, 차기작을 준비할 때는 캐릭터의 매력에 대해 좀더 숙고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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