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30 12:36
새로 일을 시작한 지 조금 지났습니다.
일 분야는 제가 결혼 전 하던 일과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제가 생각한 제 정체성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는 일입니다.
직장을 다니면 사람들간의 낯설음, 미묘한 알력, 재촉과 쫓김 같은 같은 건 있게 마련이고
파트타임만 하던 이가 저런 부분들에 적응하려니 조금 힘들었지만,
애써 자신을 무디게 하면서 그럭저럭 다니고 있습니다.
워낙 작은 일터이기도 하고요.
물론 급여는 적습니다만, 파트타임 일을 하던 때 워낙 적디적은 돈을 벌었기에;;;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대신 업무량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싶을 수도 있는데,
사실 힘듭니다. 가장 힘든 건 일주일 중 잠시도 일에 대한 생각을 놓지를 못하고,
놓을 수 없는 상황도 많다는 겁니다.
저도 듀게분들의 직장생활 글을 종종 읽어서, 이런 제 생활이 별난 건 아니란 걸 압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저 정도는 약과'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테지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 쪽이 창작에 가깝다 보니,
일주일 내내 계속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지칩니다. 진이 빠져요.
무엇보다 일의 효율성도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저는 창작 쪽은 물론 노력과 배움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머릿속에 빈 데가 있어야, 노는 시간이 있어야'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주의라서요...
무슨 공장처럼 결과물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다 보니, 결과물들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늘만큼은 가능한 일 생각도 안 하고, 업무에 관해서는 작은 일도 하지 않고
(일요일인 내일은 스케줄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합니다)
아기와도 놀아 주고,여유도 좀 부리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영 즐겁지가 않습니다.
물론, 일을 못해서 즐겁지가 않은 건 절대 아니고요 ;; 꿀같은 휴일인데 생각처럼 즐겁지가 않아요.
어제 병원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처치를 잘못 받아 오늘도 또 가야 하고요...
그리고 일을 쉬고 있으면, 제가 웬지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아이를 잘 돌보지도 못하고(제 친정 어머니에 비하면 저는 아이의 신상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어쩌면 안하는 것일 수도?-엄마입니다)
부모님께도 좋은 딸이 못되고.
뭐 하나 좋을 게 없는 비루한 사람 같은 느낌.
근데 일을 하고 있으면, 적어도 제가 뭔가 생산을 하고 있고,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일이 늦어서 폐를 끼치는 것보다야)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
제가 뭔가 쓸모가 있는 사람 같아지죠.
이것이 일중독의 시초일까요.
한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지만, 엄마이기도 하고, 가족의 일원이기도 한데
후자의 두 가지는 잘 해내지 못하니까(혹은 귀찮으니까;)
전자에 매달리면서-게다가 이건 실질적으로 금전적 이득이라는 생산물이 있죠.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 당신들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유익한 사람이야 하고
제게 주어진 역할 중 몇 가지는 그저 방치해 버리는 것.
쓰다 보니, 제가 크게 원망했던 누군가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싶어요.
물론, 모든 일 중독자들이 저런 심리적 회로를 겪는 것은 아닐 수도 있고,
일중독자 흉내를 내기엔 제 업무량이 대한민국 직장인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병원 다녀와 가족과 잠시 외출이라도 할 듯한데,
좋은 장소를 택해서 머리 비운 상태로 그들과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2015.05.30 13:23
2015.05.30 13:37
네 그렇네요 사람은 우선인 환경에 습관화 의식화 되죠.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의지에 속합니다 힘내세요.
2015.06.01 10:49
당장 결과가 돈으로 환산되는 '일' 이라는게 심리적으로는 가장 명료한거 같긴 해요.
엄마나 딸노릇이란건 해도 해도 결과가 제꺽 나오는 게 아니고 표도 안나는거라.하다보면 암담한 심정에 곧잘 다다르죠.
주부 우울증이 왜 있겠어요. 열심히 노력해도 피드백이 물리적으로 안다가오니 심적으로 지쳐 그러는거죠.
그냥, 일이 손에 잡히고 일 고민이 덜할때까지는 다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창작계통이라니 심리적으로 쓰는 에너지가 크실텐데.거기다 엄마노릇...보통일은 아니네요.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책은 금물. 역량이 안되면 엄살도 부리고 견디는거죠.견디세요. 그러다보면 아이도 커서 엄마 이런 애타는 맘 알아주고 그런날 옵니다. 걱정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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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을 다 잘 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토닥토닥 비슷한 고민을 다들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과 생활 양쪽 회로 on/off 가 잘 되는 사람이 스트레스 덜 받더군요. 한쪽을 할 땐 나머지 한 쪽은 끄고 올인하는거죠. 뭐...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단순하게 살 수록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더란 걸 자주 깨닫습니다 . 가족과 휴식하실 땐 몸을 많이 움직이는 활동이 다른 상념을 잊기에도 좋겠다 싶어요.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