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일을 시작한 지 조금 지났습니다. 

일 분야는 제가 결혼 전 하던 일과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제가 생각한 제 정체성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는 일입니다.

직장을 다니면 사람들간의 낯설음, 미묘한 알력, 재촉과 쫓김 같은 같은 건 있게 마련이고

파트타임만 하던 이가 저런 부분들에 적응하려니 조금 힘들었지만,

애써 자신을 무디게 하면서 그럭저럭 다니고 있습니다.

워낙 작은 일터이기도 하고요. 

물론 급여는 적습니다만, 파트타임 일을 하던 때 워낙 적디적은 돈을 벌었기에;;;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대신 업무량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싶을 수도 있는데,

사실 힘듭니다. 가장 힘든 건 일주일 중 잠시도 일에 대한 생각을 놓지를 못하고,

놓을 수 없는 상황도 많다는 겁니다.

저도 듀게분들의 직장생활 글을 종종 읽어서, 이런 제 생활이 별난 건 아니란 걸 압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저 정도는 약과'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테지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 쪽이 창작에 가깝다 보니,

일주일 내내 계속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지칩니다. 진이 빠져요.

무엇보다 일의 효율성도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저는 창작 쪽은 물론 노력과 배움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머릿속에 빈 데가 있어야, 노는 시간이 있어야'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주의라서요...

무슨 공장처럼 결과물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다 보니, 결과물들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늘만큼은 가능한 일 생각도 안 하고, 업무에 관해서는 작은 일도 하지 않고

(일요일인 내일은 스케줄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합니다)

아기와도 놀아 주고,여유도 좀 부리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영 즐겁지가 않습니다.

물론, 일을 못해서 즐겁지가 않은 건 절대 아니고요 ;; 꿀같은 휴일인데 생각처럼 즐겁지가 않아요.

어제 병원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처치를 잘못 받아 오늘도 또 가야 하고요...



그리고 일을 쉬고 있으면, 제가 웬지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아이를 잘 돌보지도 못하고(제 친정 어머니에 비하면 저는 아이의 신상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어쩌면 안하는 것일 수도?-엄마입니다)

부모님께도 좋은 딸이 못되고.

뭐 하나 좋을 게 없는 비루한 사람 같은 느낌.

근데 일을 하고 있으면, 적어도 제가 뭔가 생산을 하고 있고,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일이 늦어서 폐를 끼치는 것보다야)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

제가 뭔가 쓸모가 있는 사람 같아지죠.

이것이 일중독의 시초일까요.

한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지만, 엄마이기도 하고, 가족의 일원이기도 한데

후자의 두 가지는 잘 해내지 못하니까(혹은 귀찮으니까;)

전자에 매달리면서-게다가 이건 실질적으로 금전적 이득이라는 생산물이 있죠.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 당신들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유익한 사람이야 하고

제게 주어진 역할 중 몇 가지는 그저 방치해 버리는 것.

쓰다 보니, 제가 크게 원망했던 누군가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싶어요.

물론, 모든 일 중독자들이 저런 심리적 회로를 겪는 것은 아닐 수도 있고,

일중독자 흉내를 내기엔 제 업무량이 대한민국 직장인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병원 다녀와 가족과 잠시 외출이라도 할 듯한데,

좋은 장소를 택해서 머리 비운 상태로 그들과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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