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8 04:36
전에 듀게에 이런 글을 썼나 가물가물한데..
저는 응팔은 본 적이 없습니다. 대강 페북에서 도는 짧은 영상 정도는 봤는데요.
그래서 보라가 어떤 캐릭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댓글을 보다보니 '폭력성'에 대한 말이 나와서 문득 생각난게 있어서요.
저는 종종 유독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폭력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별것 아닌것 가지고 그런다' 라고 할만한게 아니라, 진짜 말도 안되게 (특히 옛날 작품 일수록?)
여주인공의 폭력성이 개그코드, 심지어는 해당 캐릭터의 매력 같은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작품들이 있는 듯합니다.
대표적으로 지금 떠오르는건 웹툰 '핑크 레이디'의 겨울이와 응사의 여자 캐릭터들인데요.
겨울이는 그냥 시도때도 없이 주먹을 날려서 남자캐릭터를 메다 꽂더라구요;;; 제가 보기엔 이게 너무 어색하고
뭔가 불편하고 그런데(그냥 민망하거나 불쾌할 상황에서 바로 주먹이 나가다니.. 분노조절 장애인가) 이게 그냥 클리셰같이 여겨지는 것 같아요.
아무리 만화캐릭터라고 해도 뭔가 "폭력성"이 캐릭터의 성격 중 하나인 것도 이상하고요. 격투물도 아니고..
응사같은 경우 콕집어 거슬리는 캐릭터는 없었지만, 그냥 여성 캐릭터들 전반이 아주 쉽게 남자 캐릭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분위기였던 듯 합니다.
기억에 남는것 중 하나는 야구부 매니저로 나왔던 여성 캐릭터가 야구부 선수가 뭐라고 실없는 소리를 하자 정강이를 걷어차는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이것들이 불편한 이유는 여성 캐릭터들의 이러한 '결함'이 매력으로 여겨지는 부분인것 같아요.
비상식적인 폭력성이 귀엽다거나, 웃기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약한' 여성이 '강한' 남성을 때리는 것이다, 라는 상황에 대한 전제가 있기 때문인듯 한데
이 '강함'과 '약함'에 대한 쓸데없이 강한 성차별적 고정관념도 좀 거슬리고요.
또 하나는 민망함, 화, 불쾌감 같은 감정이 성숙하게 다스려지지 않고 바로 폭력적 표현으로 이어진다는,
(마치 혀짧은 소리처럼)유아적인 인격이 '귀여움'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별로입니다.
그냥 이런 과도한 판타지 순정물을 지향하는 작가들이 반복하는, 해묵은 클리셰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자가 별것도 아닌것 가지고 남자를 때려도, 화를 내도, 변덕을 부려도,
받아줄수 있는 남자 캐릭터 라는 것 자체가 판타지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거겠죠.
그런데 저한텐 그게 좀 구려보이는 것 같네요.
2015.12.08 04:41
2015.12.08 05:15
일단 편의를 위해 성별과 옳고 그름의 문제를 논의에서 배제한다면,
때리고 맞는 행위는 아주 고전적인 코메디의 요소입니다. 이걸 장르로 명명한것이 슬랩스틱이죠. 이름부터가 몽둥이(stick)로 때린다(slap)는 뜻이잖아요.
누군가가 맞는게 왜 웃긴지에대해서는 더 학술적인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하여간 때리는건 희극에서 쉽고 확실하게 관객을 웃기는 방법이고, 희극에서 때리는 장면이 들어가는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헌데 주인공이 여자라면 여자가 때리거나 아니면 맞아야죠. 당연히 현대 사회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맞는모습을 희화화 하는건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코메디가 아니라 비극이 되겠죠. (과거에는 그런 개그 코드도 통했을 시절이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어쩔수없이 폭력이 등장한다면 여자가 남자를 때리거나 남자가 남자를 때리거나 여자가 여자를 때려야 합니다. 사실 따지고보면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는 세가지 경우가 다 등장합니다. 단 한 경우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경우가 없기때문에 남자 주연 캐릭터들이 여자 주연 캐릭터들보다 상대적으로 인격적으로 그려지게 되는 것이죠.
이 정도가 왜 그런 클리셰가 생겨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것 같고. 그에 대한평가를 하자면. 저도 구리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정도 성차별적이기도 하구요. 남자든 여자든 폭력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죠. 작가의 게으름의 발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랩스틱 코메디를 하고자 한다면 피할수 없는 결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2015.12.08 05:17
2015.12.08 07:41
슬랩스틱 코메디를 시도한다는 사실은 동의합니다.
단지 저는 '실패한 코메디'에서 사고를 시작하고 있는듯 합니다.
웃기지 않으면 개그가 다큐가 되는..
2015.12.08 14:55
일종의 슬랩스틱이라는 것에 동의.
그러니까 "이 장면은 개그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없다"는 그런 거죠.
그리고 반드시 여자의 폭력만 용인하는 건 아닙니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걸핏하면 치아키가 노다메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하죠.
악보로 뒤통수를 친다든가 뭔가를 노다메에게 집어던진다든가.
게다가 치아키는 남자선배고 노다메는 그런 치아키를 좋아하는 여자후배인데.
하지만 그게 딱히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많지 않았을 거예요.
왜냐면 딱히 치아키란 존재가 남녀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하는 사람이 "원래" 아니기 때문이죠.
(잠깐만.. 써놓고 보니 후자는 별로 자신이 없어...)
하지만 일전에 무슨 웹툰이던가, 상남자던가.
비록 개그만화지만 거기서 남=>여로 가는 폭력은 불편해하던 분들 많았을 것 같네요.
그건 그 남자가 마초에다 성차별적인 사람이란 코드를 전제로 깔아야 성립이 되는 웹툰이어서 그런 듯 합니다.
결국 코메디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보라는 저라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확실히 성공한 캐릭터는 아니네요.
2015.12.08 13:26
응답하라 시리즈는 여자들뿐 아니라 캐릭터들의 말투나 표현이 전반적으로 '센'편입니다.
응칠부터 성동일이 딸들한테 툭하면 소리지르고 ~년, XX년 하는게 불편했고
윤윤제가 '미친놈아' 하면서 친구들 머리를 세게 때리는것도 적응이 안됐는데 지금은 별로 안거슬리더군요.
응팔또한 성보라가 툭하면 엄마아빠에게 소리지르고 동생 머리채 잡는거 보고 기겁했는데 지금은...최애캐...
이 시리즈의 문법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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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의견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