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4 01:47
작업물 초반부에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는 장면을 써야 합니다.
음... 이를테면 평소 같으면 간단한 말다툼 끝에 보험사 부를 정도로 끝났을 접촉사고에서,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시점에 흉기를 휘두른다던가, 그런 식으로요.
말하자면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악몽 같은 느낌으로......
가깝게는 느껴지되, 너무 현실과 비슷하면 안 됩니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장면을 본 젊은이가 바로 폰을 들어서 사진을 찍고, 그 장면을 본 노인이 나라망신을 왜 찍냐고 젊은이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 같은 것은 이런 이유로 기각되었습니다. 너무 평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최측근이 지적해주셨기 때문이죠 ㅠ
문제는 제가 사무실에 나가지도 않고 운전도 하지 않으며 편의점에도 잘 안 가는... 그나마 잘 가는 곳은 저렴한 술집?;; 정도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orz 디테일... 디테일은 세상 어드메에 있는가......
아무튼, 이게 현실인가 싶은 황당한 일들은 의외로 다들 가끔 겪지 않습니까?
저처럼 집밖으로 못 나가고 크왕왕 반대편 아파트 불빛이나 보며 짖는 사람도 겪게 되더군요.
때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몇 년 전 어느 날 밤, 신도림역 계단을 올라가다 술취한 아저씨에게 엉덩이 정중앙을 주먹으로 얻어맞은 일은 잊히지도 않습니다. 놀라고, 도망치고, 뒤에서 들려오는 킬킬 웃는 소리에 화가 나고, 그래도 멈춰서거나 따질 용기는 없어 계단 끝까지 도망치고. 그제야 씩씩대며 돌아보지만 누가 그 놈인지 알 도리는 없죠.
왜 그 인간은 저를 그런 모욕적인 방식으로 때렸을까요? 그 인간이 술냄새를 풍기며 비틀대며 올라가기에 저는 속으로 짜증을 내며 앞질렀었죠. 그런데 이게 제가 '내가 공격당할 빌미를 만들긴 했지'라고 해야 할 일일까요? 제가 여자고, 젊은 여자고(이제는 아니지만), 작은 여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짜증스럽게 앞지르는 모습을 보고 '이것 봐라?' 괘씸하게 여긴 감정을 그대로 물리적 성적으로 공격해도 뒷감당을 안 해도 되는 그런 상대니까 가능했던 것일 겁니다. 그리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웃는 거죠. 낄낄.
와우 좋은 인생이네요. 어떤 의미에선 부럽기까지 합니다. 상대 반응 신경 안 쓰고 내 꼴리는 대로 지르는 순간도 있는 생물로 사는 기분이란 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뭐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초식동물과로 살아가는 일은 성질 버리는 일입니다. 여러 모로 문명사회 만세라고 할까. 이런 일이 '가까운 악몽'이라고 한다면, 그에 비해 변태가 한 번 자자고 뒤따라오는 것은 뭐랄까 좀 더 현실 같다는 느낌입니다. 둘 다 힘만 있다면 명치 세게 쳐주고 싶은 거야 똑같습니다만.
뭐 그래도, 실제 세상은 저런 기억들이나 제가 써야 하는 묘사보다 훨씬 상식적이고 사람들 또한 점잖고 호의적입니다. 가끔은 신기할 때가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관대하고, 사람들은 저에게 친절합니다. 나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제 작업물 초반부만 잘 뽑히면 발 뻗고 잘 수 있겠는데 말입니다...... 아니 그러려면 기껏 여기서 진정시킨 마음을 다시 불안위기공포분노 상태로 만들어야......
인생 쉽지 않군요. 크왕왕.
2015.11.24 02:36
2015.11.24 11:58
아닙니다 저의 미련을 더 가볍게 해주시고 생각할 거리를 주셨어요. 평온한 가운데 이질적인... 그렇죠 역시 재난은 그렇게 시작하는 게 맞죠. 끄덕끄덕.
2015.11.24 18:13
이런 기사를 봤어요. 대만 폭스콘 회장이 흡연직원 나무라다 "당신 누구세요" 하는 소리 듣고 대노했다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41722571&code=970204
기사 말미에 노동자들이 연쇄 투신자살해 노동조건이 빗발치기도 했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나오는데, 전 여기서 담배 한 대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로 인해 아포칼립스 상황의 폐허가 된 폭스콘 공장을 상상했어요.
2015.11.24 05:03
예의없는 인간들이 꽤 많아요.
저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모릅니다 죄없는 자 저사람을 돌로 쳐라 정도로 이해해야 편하죠.
예의 없는 과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큰 과자봉지에 손을 넣어 한웅큼씩 쥐어 누워서 입에 넣는데 흘린단 말입니다.
조심조심 손을 입에 대고 안흘리게 먹는데 이불에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며칠을 그렇게 이불에서 과자부스러기를 줍다 오늘 알아냈습니다 과자 밑에 구멍이 나 있었어요.
이따 조금 또 자야하나 지금 더 자야 하나
2015.11.24 12:03
맞습니다. 사람을 내 기준에 맞춰 생각하거나 세상을 내 틀에 끼우는 건 부질없는 일인 것 같아요. 나 또한 살면서 누군가에게 어리석은 피해를 입혔거니...
과자 이야기 좋아요. 친근한데 생각에 잠기게 되고 도돌이표가 되네요.
전 결국 컴퓨터를 끄고 늦게까지 내처 자고 말았습니다. 큰일이에요 큰일.
2015.11.24 09:45
크왕왕. 저도 가끔 무신경한 사람들만큼 세상 사는 거 편한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겪으신 일은 음 무신경한 정도가 아니라서... 전 아주 예전 서울 살 때 모 지하철역에서 술취해서 계속 들러붙는 사람이 있어서 결국 각잡힌 백으로 찍었습니다 -_- 찍었다고 해도 위험을 느껴 못 다가오게 막은 정도이지만요. 호신용 백 추천드려요.
2015.11.24 12:13
오오 각잡힌 백... 토끼님 멋있어요! 이게 바로 여전사한테 여자들이 박수치는 그 심정인가! 우와아. 거기에 징까지 박혀있으면 완벽하겠군요. 모서리로 그냥 콱... 아니 이건 잘못하다간 고소각이니 패스. 역시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죠. 하긴 저도 예전에 치한이 붙을 때 우산으로 옆을 휘휘 둘렀더니 떨어져 나갔던 적이 있어요. 제일 빨랐던 때는 운동 경력 있는 남자후배님을 불렀을 때지만 -_- 이제껏 만났던 변태 중에 제일 빠른 속도로 사라지더라구요. 허허허. 그래도 남자후배님은 늘 상비할 수 없지만 호신용 백은 만날 제 옆에 있어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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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젊은이 vs 노인의 상황이 별로인 건, 현실에서 일어날법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이미 여타 매체에서 다뤄왔던, 클리셰가 된 상황이라서 식상한 것 같네요. 오히려 현실적이고 이해가 가는 동기를 가진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폭발하게 만드느냐-- 그 평온하고 이질적인 풍경을 잡아내는 게 관건이 아닐까요. ... 하나마나한 댓글 달아서 죄송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