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감정 외.

2015.12.07 21:53

잔인한오후 조회 수:944

1_마치 쇼핑을 하듯이. 그래요, 글 쓰는 것도 뭔가를 구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확하게 쓸 꺼리가 있을 때 써 왔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을 해보고 있어요. 작은 차이인데도 묘한 느낌이 따라와요. 이러한 상황은 언뜻 최근의 대화 중에서도 체감했던 것예요. 짧은 퇴근 시간을 빌어 아무한테나 전화를 거는데, 그 친구에게 매우 신기한듯이 그 상황을 설명했죠. '있잖아, 내가 정말 아무 의미없이 혹은 심심해서 전화를 거니까 정말 이상하다. 이건 정말 이상해' 그러자 친구가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보통, 그렇게 전화하는걸 빌어 [안부를 묻는다]고 세간에선 말한다네'.

딱히 거슬릴 게 없다면 정말 밑도끝도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예전에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는 운동을 하면서 알 수 있었던 건데, 누구에게 보여줄 일 없다면 대여섯 시간을 휘갈겨도 글이 멈추지 않았어요. 대신 그 글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죠. 그 때 뭔가를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었던 게 있었는데, 그 행동이 그 이상의 뭔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거죠. 어쩌다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제 자신과 공책 열 네 권 정도를 남겨두고, 사라져버렸죠. 아, 그래요, 듀게에서 글쓰기 모임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잠수를 타 버린 때였을 꺼에요. 시간이 흐른 후 짐짓 모른 척하고 돌아왔지만 책임을 져야할 것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심각한 결격사유죠. 무엇에 대한? 그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음.. 이런 태도는 올바르지 않죠.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야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제가 아닌, 좀 더 적격한 사람이 있었을꺼라고 생각을 해요. 그 때 한 참 레옴님의 독서 게시물이 막 끝난 그런 시절이었고, 누군가 지속적인 구심점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보통 보면 그래요. 대학교의 조별 과제에서 잠수타는 사람들을, 혹은 민폐짓하는 사람들을 욕하잖아요. 정상적으로나마 해내는 사람과 민폐짓하는 사람, 어느 쪽이 더 많을까요? 전 대학 다닐 때 부끄러운 일을 많이 했고, 그래서 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성토할 수 없게 되더군요. 그런 경험을 해 봤으니까. 잠수를 타는 사람들은, 작은 문제가 큰 문제로 번질 때 해결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죠. 눈덩이처럼 일이 커지면 그 눈덩이가 일을 완전히 밀어버릴 때까지 방치해버려요. 두려우니까. 적당히 타협해서 메꾸고 결함이 있는 채로 마무리 짓지를 못하는 거죠.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그렇게 된다고 하면, 그렇지 않은 것보단 나은데 말이에요.

저는 용서를 구한 적이 없어요. 언제나 처벌만을 원했죠. 벌을 받는 것만큼 간단하고 편한게 어디 있나요. 기계적인 행정처리처럼, 판매자와 소비자의 경제적 관계처럼 말끔하게 문제가 청산되어 버리는거죠. 아마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2_ 사실 이런 저런 핑계를 많이 대지만, 단순한 이유일거에요. 제가 칭찬과 호감을 참을 수 없는 이유는, 그걸 다루는데 너무나 서투르기 때문일거라구요. 오랫동안 저를 관찰(?)해온 제 지인들은 그래요. 그렇게나 남들의 반응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끌어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도 하지 않고, 거기에 그만큼의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도도하거나 무성의하기 때문에 감정 표현을 안 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할 지를 모르는 거죠. 보통 무뚝뚝한 아버지를 이런 식으로 옹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부드러운 방어는 아니에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일인데, 그걸 게으르게 방치했다는 식의 매우 신랄한 이야기인거죠.

감정 표현에 덜컥 겁이 나는 이유는, 보통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사람들이 신랄하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신랄한 면이 있죠. 냉철한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감정 따위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라는 가치관이 있잖아요. 한국 사회에 흘러내리는 질척질척한 감정들이 얼마나 오용되거나 남용되는지를 생각해보면 극과 극으로 갈라질만 하다고도 생각해요. 감정의 촉이 상당히 예민했을 때, 식당가에서 밥 먹으면서 드라마를 보는데 앞 뒤 맥락 없이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지 정신을 못 차릴 뻔 했어요. 장면과 장면에서, 누군가 울고 화내고 억울해하고 서운해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영상을 보는데 감정만이 전도되어 눈물이 나올 정도였지요.

한국에 간극이 있다면, 다른게 아니라 감정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과 감정만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무슨 의미를 지닌 말은 아니에요. 제가 깐깐하게 글을 쓸 때는 그 글의 앞뒤양옆을 다 재지만, 되는 대로 글을 쓸 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대로 짚어 나가거든요. 제게 편한건 후자지만,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응당 전자의 윤리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지만요. 어쨌든 간에, 그 두 부류가 대화하지 못하는 세계가 아닌가 싶어요. 거기다 이도저도 아닌 쪽에 있다면, 아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질 않죠. 그렇기 때문에 한 쪽으로 편향이 되고,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게 되는 거에요.

보통 이성과 감정은 양극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 그와는 다를꺼라고 봐요. 둘 다 뛰어날 수도 있고, 중요한건 한 쪽이 뛰어나다고 해서 다른 쪽이 억눌리는 시소 같은건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성은 모르겠지만 감정의 활용을 배울만한 곳이나 본받을 만한 곳이 없고, 거기다가 커버렸으면 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자주 하는 이야기잖아요. '넌 이제 사회인이야, 누가 널 챙겨주고 이해해주니?' 마치 '네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겠다'와 같죠.

경험의 영역일꺼라고 봐요. 온전히 실습으로만 가능한 영역.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적당한 길을 알려주지 못하는 걸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알 수 있는 거겠죠. 너무 감정적인 것과 감정적이지 않은 것 양단을 배척하면서 진행하려니 저도 뭐가뭔지 모르겠군요 하하. 여튼 간에 그렇습니다. 그런 전인격적인 인간은 청년 드라마 소설에서나 초반에 병약한 여성으로 나왔다가 중반에 갑자기 죽어버리는 그럴 때나 나오는 사람이야! 싶기도 하고. 인성자격증이나 인성교육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니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하하...

3_ 응답하라 1988이 그렇게 재미있나 보죠? 드라마는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듀게 전체가 떠들썩하게 드라마 하나로 이야기 하는게 참 오랜만이라 즐거운 기분이네요. (아마도 이전이 밀회였던 것 같은데.) 오래 전에 백플글들 중 대부분이 드라마 불판이었다는거 아시나요? 그런걸 생각하면 때때로 (듀게에서만) 걸출한 드라마가 나와줘서 같이 떠들썩하게 모여앉아(?) 봤던 기분이에요.

전에 백플글들을 정리해본 적이 있어서 살펴봤는데 최고의 사랑,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 K,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정도가 있군요. TV를 안 보다보니 잘 모르지만 참 재미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왜 굳이 백플 이상 글들을 찾아봤나면, 공통기억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어요. 어떤 거대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같은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느냐에 달렸죠. 마치 다림질 같이 사람들을 쫙 펴주는 그런 느낌이에요. 세계 1, 2차대전이 그랬을 것이고 6. 25전쟁이 그랬을 꺼에요. 듀게가 쇠락했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쇠락하지 않은, 쨍쨍한 듀게라는건 무엇인지 궁금해서 살펴보던 건데 결국 알아낼 수 있는건 없었죠.

가끔 듀게가 며칠 동안 분란 없이 조용하게 흘러가는걸 보면 '연년 기온을 되찾은 듀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환절기철이라 삼한사온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글을 골라 읽어주시길 바랍니다'같은 멘트를 치고 싶을 때가 있죠. 아무래도 분란이 없을 때는 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를 수가 있는 것 같아요. 안 좋을 때는 안 좋다는 발언이 쉽게 가능하지만 좋을 때 '아 좋다'라고 하긴 애매하잖아요.

4_ 웹툰을 예전부터 잔뜩 봐왔습니다만, 요즘에는 시들해요. 그래도 볼껀 다 보고 있지만. 한 때 치즈인더트랩을 듀게에서 함께 봤던 기억이 있네요. 저도 그 글 때문에 치인트(!)를 보게 되었었는데 말이죠. 그게 드라마로도 나온다니 참.

웹툰을 정말 많이는 보고 있는데, 그에 대한 담론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혼자 즐기는 컨텐츠라고 해야하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콘텐츠 소비하는 사람에 비례해서 이렇게 대화가 없을 수가 있나 싶은 부분이에요. 저조차도 딱히 가타부타 웹툰에 대해 이야기를 안하니까 할 말은 없지만요. 혼자 즐기고, 혼자 즐기는 걸로 끝나는 매체랄까요. 주간경향에서 웹툰 리뷰가 연재되고는 있긴 한데, 개개인이 웹툰의 리뷰를 올린다거나 그런 건 일반 커뮤니티에서는 잘 못 보잖아요. 이미 관련 웹진도 있고 그렇다는건 알고는 있습니다만. 비평매체나 아마추어 비평가가 별로 없는건 신기한 일이에요.

언제 한 번 보는 만화들에 대해서 떠들고 싶긴 한데, 흠. 레진 같이 댓글조차 안 달리는 곳이 있으니까 더 가속화 될만 하다고 보는데 말이죠.

5_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두서가 없군요, 두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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