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큐어]의 마미야 - 1

2022.07.16 06:39

Sonny 조회 수: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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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야'는 [큐어]에서 미스테리의 핵심을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홀려서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 대상의 목에 X 표시를 남깁니다. 그들은 단지 마미야를 만났을 뿐 정확한 살해동기가 없습니다. 타카베는 마미야를 체포한 이후 그를 심문하며 어떻게든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보려 합니다. 그러나 마미야는 특유의 화법으로 대답을 회피하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상대에게 계속 반문만 합니다. 이에 격앙된 타카베는 어떻게든 그를 파헤쳐보기 위해 그의 옷을 벗기고 신체를 조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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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베는 마미야의 등에 큰 화상자국이 나있는 걸 발견합니다. 동료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고, 커다란 쇠에 등을 데인 자국 같다고 합니다. 영화가 그의 상처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자연히 그의 상처가 이 미스테리의 단서가 되지 않을지 추측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상처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이 지나가면 마미야의 화상 자국에 대한 언급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과 이 후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 상처가 연관되어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설정은 [큐어]만의 독특한 공포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상처는 그 인간의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는 단서가 됩니다.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가난, 열등감, 노력했지만 실패한 기억 같은 것들은 한 인간의 무의식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그 인간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고 어떤 행동양식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가장의 위치에 섰을 때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3자는 가정폭력으로 입은 상처를 그의 폭력에 대한 이유로 진단하고 그의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학대당해서 자기 아들을 괴롭히는 XX"라는 식으로요. 


위의 미쟝센은 마미야를 "큰 상처를 입은 인간"이라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미야가 최면을 통해 사람들을 살인범으로 만든다는 것은 영화 내의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마미야가 저지르는 살인교사 행위를 그의 상처와 연관지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상처가 있으니 그도 분명 그 상처를 입을 때 육체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고통을 느꼈을텐데 영화는 그 부분을 전혀 파헤치지 않습니다. 마미야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인간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정확한 묘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영화가 추구하는 장르적 방향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현실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수많은 인물들은 자신의 악행과 상처가 크게 인과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상처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어떤 상처가 있어서 어떤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행위에 대한 드라마적인 합리화로 활용됩니다. 상처와 행위 사이에는 필연성이 있다고 할 순 없습니다. 저 화상 자국을 어떻게 해석해도 마미야의 최면 교살 행위에 대한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역으로 마미야의 상처는 교살 행위에 대한 계기가 되었을지언정 의미있는 이유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큐어]는 무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상처입은 인간이 어떤 치유나 공감도 바라지 않은 채 그저 타인의 죽음을 유일한 해방구로 믿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것입니다. 군대를 예로 들어봅시다. 자기 고참이 자기를 지독하게 괴롭힐 때, 그는 상처를 입고 그 고참의 죽음만을 원합니다. 복수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가 정확히 바라는 것은 (어떤) 고참이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 상황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그 괴롭힘 자체를 중지시키기 위해, 그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등의 행정적 과정을 밟거나 사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해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놓이면 가장 먼저 우리는 살인을 생각합니다. '저 놈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먼저 떠올립니다. 그것은 그 피해자가 사악해서 그런 것일까요. 혹은 감정의 통제가 미숙해서 그런 것일까요. 만약 인간이 원한이나 괴로움을 해소하는 가장 본능적인 방법을 살인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죽이고 싶다는 말을 꺼내게 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전제는 더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단 몇명이 자신을 괴롭혀서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길 둘러싼 모든 사람이 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괴롭기만 하고 분노를 자극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게 될까요. 세계 전체가 자신에게 적대적이라고 느끼면 그 때는 그 살의를 세계 전체를 향해 투사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를 받을 때마다 곧바로 편해지고 싶을 때 우리는 살인충동을 꺼내서 실천하게 되는 것일까요. 애초에 영화가 보여주는 마미야의 최면 방식은 딱히 대단한 설득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강렬한 현혹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마미야는 단 한명도 최면을 거는데 실패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미야가 대단한 최면술사여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만이 '인간은 살인을 통해서만 해방될 수 있으나 그걸 다들 억누르고 있다'는 본질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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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베가 마미야를 더 조사하려고 그의 거처에 갈 때 집 밖에 갇혀있는 원숭이를 보게 됩니다. 영화는 풀 샷으로 이 원숭이를 보여줍니다. 딱 봐도 원숭이는 괴로워 보입니다. 아마 마미야는 원숭이를 애정으로 키우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 원숭이에 시선이 끌리는 이유는 이것이 마미야가 인간에 대해 내린 결론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원숭이는 닫힌 우리에 갇혀있어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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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베는 집 안을 둘러보다가 화장실 안에서 원숭이 모양으로 생긴 미라를 발견합니다. 그 미라의 목에는 여태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의 목에 나있는 것과 동일한 엑스자 표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숭이 미라의 양 팔과 다리는 철사로 묶여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조형물일 수도 있고 마미야가 기르던 원숭이 중 한마리의 사체일 수도 있습니다. 타카베가 마미야의 집에서 확인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기록들이나 일상적 증거들이 아닙니다. 집의 가장 안쪽까지 가서 확인한 것은, 무언가를 살해한 것처럼 보이는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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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타카베는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내가 목매달고 죽은 환영을 봅니다. 타카베는 오열하고 그런 그의 앞에서 아내는 어리둥절해합니다. 타카베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빈 세탁기 소리에 피로를 느낀다는 걸 영화는 은연중에 암시해왔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타카베의 아내가 자살할 것 같다는 묘사는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타카베는 왜 굳이 아내가 죽어버렸다는 끔찍한 상상을 한 것일까요. 어쩌면 이것은 원숭이 미라를 보고 난 뒤, 마미야가 남긴 그 흔적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내가 자살하면 타카베는 결국 편안해질 것입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는 타카베의 정신에 남겨진 가장 큰 상처입니다. 마미야의 가치관에 따르면 자꾸 자기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죽여야만 편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마미야를 면회하러 가서 타카베는 자신이 아내 때문에 느끼는 고통을 다 토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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