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매드 맥스나 특히 폴아웃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꽤나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제가 직접 그 세계에 살게 된다면 전혀 행복하지도 않을테고 1주일도 살아남을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저는 이 때끼고 기름 냄새 진동하는 폭력의 세계가 좋아요.

 

듀나님이 올드 매드 맥스 3부작 리뷰도 올려주셨고, 저도 일요일 저녁 분노의 도로에 앞서 1,2편을 복습했습니다.(왠지 3편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군요...=_=; 한참 끓어올랐던 아드레날린을 쿨다운시킬 것만 같은 느낌;;) ...그러다 보니 도대체 이놈의 세계는 어떻게 유지되고 굴러가는 걸까 궁금증이 들어 뻘바낭.

 

일단 매드 맥스의 세계가 워낙 제각각이라 이것부터 정리해야 할 듯 합니다.

 

일단 1편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이 아닙니다. 폭주족이 활개치며 무고한 살인과 강간을 자행하는, 로보캅에 나오는 디트로이트나 미국 호러무비에 자주 나오는 남부 시골에 비견될 막장 치안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아직 정부가 있고 경찰이 있고 병원 응급실이 멀쩡하게 굴러가는 세계죠.

 

1편과 2편이 이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2편부터 갑자기 우리가 알고 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거든요. 만약 이어진다면, 1편과 2편의 갭은 끽해야 몇 년인데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문명은 절망적인 수준으로 붕괴했습니다. 게다가 2편에서 맥스가 구해낸 사람들마저 맞이했다는 가장 좋은 엔딩이 농업지대에 건너가 원시부족 수준의 문명을 재건했다는거니(야생아 꼬마아이가 훗날 족장에 올라 맥스를 회상하는 게 2편 이야기죠)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간이 쌓아온 모든 문명은 거의 초기 철기시대로 퇴화...=_=; 그리고 이 희망없는 분위기는 이야기와 썩 잘 어울립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기름이 부족하고 기름을 얻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폭주족들이 활개치며 그 피같은 기름을 물쓰듯 하니 그동안 쌓아올린 석유문명의 모든 유산들이 관리할 사람 없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겠죠. 3편은 확실히 2편과 이어지는 이야기이고, 불과 또 몇 년만에 정말로 석유가 별로 남지 않아 바이오 메탄(이라 쓰고 돼지똥이라 읽음)과 증기기관에 의존해야 하는 수준까지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명의 급격한 붕괴는 어쩌면 현실적이라 더 무섭습니다.

 

새로운 시리즈 분노의 도로는 1편과는 확실히 이어지지 않습니다. 퓨리오사가 어릴 때 임모탄 세력에 납치되었고, 그 떄도 이미 부족생활 중이었으며 오직 할머니들만이 TV 등 문명세계의 유산을 기억하는 걸 보니 이미 문명이 붕괴된지 최소 30년~50년이 흘렀다는건데 1편의 설정과는 전혀 맞지 않죠. 그리고 차라리 1~3편의 급격한 문명 붕괴는 좀 이해라도 가는데, 문명 붕괴 수십년 이후에도 여전히 굴러가는 분노의 도로 세계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면들이 있습니다.

 

일단 석유는 어디서 오는걸까요? 사실 2편에 등장하는 석유마을은 오류입니다. 석유 시추 플랜트로 원유를 캐낸다고 가솔린이 나오는 건 아니죠.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정유시설이 있어야 해요.(감독도 이걸 의식한건지 분노의 도로에 등장하는 '가스 타운'은 언뜻 스쳐가지만 거대한 정유공업 단지로 묘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유시설도 전기가 있어야 돌아가고요. 가솔린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유를 캐낼 수 있는 시추시설과 정제할 수 있는 정유시설, 그리고 정유시설을 돌리기 위한 발전소까지 장악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합니다. 시타델과 가스타운, '총알농장'이 각각 생존에 필요한 물, 석유, 탄약을 틀어쥐고 서로 공존하는 구조인 걸 보니 가스 타운이나 총알농장의 세력도 끽해야 워보이 수백명(그나마 전투에 나설만한 건 백여명 남짓) 보유한 임모탄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라는 건데, 이 정도 규모로는 어림없어보여요. 만약 새로운 생산은 못하고 그 동안 비축해놓은 걸 그냥 쓰는 거라면, 에너지 절약이 뭔지조차 모르는 것 같은 이 폭주족 놈들이 수십년이나 쓰고 남아있을 것 같지 않고요.

 

무기와 탄약은 이해됩니다. 뭐 상하는 것도 아니고 습기만 안 차게 보관해놓으면 수십년도 거뜬히 쓸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죽어라 만들더니 결국 다 쓰지도 못하고 죽어버렸군'이란 모 영화 대사처럼 진짜 더 이상 생산 안하고 까먹기만 해도 충분히 백년 정도는 버틸만큼 많이 비축되어있기도 하죠. 총열, 노리쇠, 공이, 방아쇠만 있으면 되는 게 총이고, 화약과 납덩이, 탄피만 있다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게 탄약이니 이 막장 세계에서도 최소한의 지식과 기계장치만 있다면 아마 무기와 탄약은 꾸준히 만들어질테고요.

 

가장 큰 궁금증은 자동차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냐는 겁니다. 문명 붕괴 이전의 자동차들이 그나마 잘 관리되어 몇십 년을 너끈히 버티는 걸까요?(최소한 임모탄 세력은 꽤 전문적인 자동차 수리기술만큼은 보유하고 있는 듯 합니다.) 엔진은 몇 십년전 그대로이고 차체만 주위의 고철들을 긁어모아 보강을 거듭한? 그렇다면 타이어는요? 타이어의 주 성분은 고무기 때문에 달리면 당연히 마모되고, 달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둬도 딱딱하게 굳어 못 쓰게 됩니다. 올드 맥스 세계관처럼 불과 10여년 사이에 문명이 붕괴한 거라면 아직 멀쩡한 물건들이 남아있겠지만, 이미 문명이 붕괴된지 수십년이나 지난 후의 뉴 맥스 세계에 쓸만한 타이어가 남아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죠.

 

폴아웃 세계에서는 여기에 대해 그나마 설명을 하려 합니다. 막장스럽긴 해도 어쨌든 미래기 때문에 현재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과학기술(로봇이나 플라즈마 무기가 일상화된 세계죠)을 보유했던 구세계이고, 핵연료가 보편화되었던 세계라 기술자만 있다면 에너지 걱정이 거의 없으며, 구세계의 첨단기술을 거의 고스란히 보유한 인클레이브나 문명의 재건을 위해 노력 중인 NCR 등에서는 여전히 공장이 돌아가고 있거든요. 이런 곳들에서 부족하긴 해도 꾸준히 멀쩡한 물건들이 공급되기 때문에, 황무지 인간들이 온갖 뻘짓거리를 하며 총알과 에너지를 물쓰듯 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문명의 유산을 부숴대도 더 이상 퇴화하지 않고 현상유지라도 하는 거죠.

 

올드 맥스 3부작도 여기에 대한 설명이 명확했습니다. 그냥 망해가는 거죠. 새로 만들거나 유지보수할 사람은 거의 없는데 물쓰듯 낭비하고 부숴대는 놈들은 잔뜩이니 그나마 남아있던 문명의 유산들도 순식간에 붕괴...=_=; 매드 맥스 특유의 희망 없는 분위기, 2편과 3편이 그나마 해피엔딩임에도 전혀 해피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고, 희망을 찾아 떠난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구세계의 문명을 복원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니까요. 몇십년 뒤 그나마 부실한 상태로 남아있던 구세계의 기계장치들마저 녹슬고 망가지고 난 뒤에는 잘 돼봤자 중세 시대 정도로 돌아갈 수 있겠죠.

 

하지만 이번 매드 맥스에서는 여기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문명이 붕괴되고 수십년이 지난 뒤 그정도 삶이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어딘가에서 꾸준히 기계장치와 에너지를 공급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기막힌 수준의 유지 및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데 임모탄 패거리는 전혀 그럴 역량이 없어보이거든요. 매드 맥스의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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