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급만 해도 난리가 나는 주제가 몇 가지가 있죠. 메갤도 그 중 하나일 것이고요. 그래서 신중합니다만…혹시라도 ‘화르륵’해서 클릭하신 분 계시다면 ‘그런’글이 아니라는 말부터 먼저 적고 싶습니다. 이건 지극히 저 개인의 마음을 적은 글이에요.

 

저도 성차별을 매우 일상적으로 겪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동성애자거든요. 제가 성소수자인 줄 모르는 지인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게이 어쩌고 하며 키득거리는 농담에 장단을 맞춰주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독교단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폭력도 감내해야 하며, 지극히 제한된 장소에서만 제 성적 지향을 언급할 수 있어요. 커밍아웃을 안 하는 편입니다만 만약 커밍아웃을 하고 사는 게이였다면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강도높은 폭력들이 저를 향했겠지요.

 

종종, 엄청난 벽 아래서 반대편을 향해 아무리 애타게 외쳐도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그런 상태에 놓인 기분을 받습니다. 보수 기독교단체 목사들과 ‘토론’도 몇 번 해 봤습니다만, 차라리 벽이 나아요. 벽은 가만히라도 있죠. 어떤 목사는 하다가 하다가 ‘어쨌든 나는 동성애가 정신병이자 죄악이라 믿는다’라더군요. 아무 증거 없어도 무조건 믿는, 그 ‘신앙’이란 믿음의 기제를 성소수자 혐오에 고스란히 가져다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이번주엔 여성가족부가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정책은 여성과 남성을 위한 것이며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조례의 제정을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입장을 뱉기도 했습니다. 우리 말로야 ‘여성부’지만 걔들 영어로는 gender equality어쩌고 하는 정부부처에요. 어제 퇴근길에 이마트에 갔었는데, 여성부의 이 궤변에 대한 울분을 종일 억누르다 난데없이 울화통이 터지더군요. 주스 고르다말고.

 

그렇기에, 성차별을 알기에, 저는 기본적으로 메르스갤의 존재의 이유를 이해합니다. 메르스갤의 ‘방식’이 과연 옳은가?하는 비판이 있지만, 제가 봤을 땐 적잖은 여성들이 ‘네가 아무리 더럽게 나와도, 아무리 내 말에 벽을 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나는 너에게 끝까지 정치적으로 공정한 반론을 하겠다’는 태도의 한계를 봤지 싶습니다. 실제로 저도, ‘동성애 등의 성적 지향은 페티쉬같은 것이 아니라 피부색과 같은 개인의 특질이므로 이는 선악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힌두교 신자들이 종교 내부적으로는 소고기를 먹지 않아도 한우전문점 앞에 가서 시위를 하지는 않듯 기독교 역시 자신의 교리를 근거로 모든 이들의 동성애를 금지하겠다고 들 권리가 없다’라고 아무리 차분히 짚어도, ‘동성애자를 금지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역차별’같은 개소리를 듣고 나면 갑자기 ‘성숙한 토론자’로서 저들을 대하는 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확 치밉니다. 당장에라도 ‘기독교 청정국’같은 ‘올바르지 않은’소리로 저들과 그냥 ‘막싸움’을 하고 싶어지죠.

 

그렇기에, 이렇게 ‘성숙한 토론자’의 태도로 그들과 맞서고 또 그들에 대한 나의 분노를 달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메르스갤은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들의 심경에도 공감할 수 있어요. 메르스갤의 ‘유머’중 거의 대부분이 이른바 ‘미러링’이라 하여 일베 등의 커뮤니티에서 실제로 자주 언급되는 여성폭력 언어를 고스란히 ‘남자 버전’으로 바꾼 것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런데요.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단 한 번도 김치녀나 된장녀, 보적보 따위의 단어를 써 본적이 없는 (심지어 직접 타이핑해보는 것도 지금이 처음이네요)엉뚱한 제가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는 겁니다. 특히 제 경우 이용하는 sns에서 페미니스트분들을 굉장히 여럿 따르고 있기 때문에 더 잘 눈에 들어와요. 그리고 그 분들이 제가 보는 화면에 매일같이 가져다 나르는 자료는, 남성기를 손으로 잡고 가위로 자르는 사진, 남성기 사이즈를 가지고 희롱하는 ‘유머 자료’들, 언니들과 공유하는 호빠 경험담 같은 것들입니다.

 

한 번 두 번은 참아도 봤지만 종종 어떤 것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각날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고, 잠시 특정 게시물이 보이지 않도록 하거나 하는 등의 조치는 이미 그 게시물을 목격하고 난 직후에나 가능한 처방이었습니다. 만만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 지금 정신과 치료를 생각하고 있어요. sns가 이미 제 일상과, 생각과, ‘관계에 대한 욕구’등의 상당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하루 종일, ‘여성들이 일베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겪어야하는 것은 저에게 엄청난 심적 소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기도 엄청 억울합니다. 물론 ‘너 보라고’그런 거 아니고 ‘너한테 하는 얘기’아니란 건 압니다만 누구보다 앞에서 여성혐오에 대해 핏대를 올렸던 제가 왜 자꾸 얻어터져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란 거죠.

 

 

저는 지금 ‘이런 부정적인 면도 있으니 메르스갤러리 안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깨어져야 하지만 성숙한 토론만으론 도저히 깰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있거든요. 동성애자라서 그걸 더 잘 알고 또 공감도 하고요. 다만 저는 지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자꾸 목격함으로 인해 생기는 저 자신의 심리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아마 이 고통이, 일베 등 폭력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로 인해 여성들이 겪어온 고통이겠죠. 하지만 말씀드렸듯 그걸 왜 내가 겪고 있어야 하나 싶고… 네. 같은 말이 다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글을 맺을 때가 되었군요.

 

일종의 푸념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요청조차 없는 제자리돌기같은 글입니다만, 그래도 ‘이런 애들도 있구나’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듭니다. 좋은 대체휴무일 되시길. 저도 출근은 해있지만 무두절이라 마음은 여유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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