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를테면 공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계약직이고요. 실은 알바 개념에 가깝습니다.

제가 속한 부서는 회사 내에서도 비교적 창의적인 일을 하는 곳으로, 직원들 외근도 잦고

상황에 따라 재택도 재량껏 할 수 있고 하여튼 좀 유연하게 일을 하는 부서입니다.

팀장님도 나이스하고 부장님도 젠틀하고 사원들도 일 잘하고 열심히 하고 성격도 다들 좋으시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타 부서의 부장? 뭐 그 쯤 되는 양반이 가끔씩 우리 부서에 내려와서 별 농담도 아닌 개드립을 치고 가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제가 그 분과 첫 대면을 한 건 작년 여름쯤인가?.. 사장, 부사장, 본부장들 몇명과 함께 우리 부서 인원이 단체로 점심을 먹을 때였습니다.

문제의 그 부장.. S라고 칭하죠. S가 어쩌다 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제 맞은편엔 선배 두 명이 앉아 있었죠.

이 인간 앉자맞자 여긴 꽃밭이네 어쩌네 그런데 다들 기혼이네 (선배 두 명이 다 기혼자) 김샜네 이 지X을 합니다.

(김 새? 밥하냐 이 새X야...)

그러더니 저에게 기혼이냐 미혼이냐 묻습니다. 기혼같은 미혼인데요. 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하니까 뭔소린가 하고 앞의 선배들을 쳐다보더군요.

오래 만난 사람이 있는데 곧 결혼할 거라고 한다... 라고 선배가 설명해 주자 아아.. 하고 지나갑니다.

그 뒤 몇 번 저의 신상을 묻는 질문이 있었지만 글쎄요.. 네 뭐 등등 시덥잖게 대답하자 

- 성격이 내성적인가 봐?

라고 합니다. 이어진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아뇨 외향적인데요

- 아닌데 내성적인데?

- 그런 말 처음 듣네요. 외향적인데요.

- 내성적이구만 뭐

- 제 성격인데 제가 잘 알죠. 외향적입니다.

... 보다 못한 선배가 내성적으로 보여도 알고 보면 외향적이다... 라고 설명해 줍니다.

이게 S와의 첫 대면이었습니다.

히야 이런 진상 상사라는 게 진짜 있긴 있구나 싶었는데 이후 목격된 S의 각종 오지라퍼와 개드립의 향연이란...


정말 할 일 없는 얼굴로 우리 부서에 내려와서 기혼자인 또 다른 선배 (최근 살집이 좀 붙었습니다) 에게

- OO이는 임신했어? 몇 개월이야? 임신도 안 했는데 왜 그렇게 살이 붙었어? 살 빼야지~

와.. 제가 잘 못 들었나 했네요.

그 여자 선배는 난감한 얼굴로 웃으면서 네 빼야죠~ 하는데 나중에 말하길, 정말 기분 나빴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저야 회사에서 퇴직금 받을 몸도 아니고 잘 보일 이유가 없지만 정직원은 상황이 다르죠..

보고 있으면 정말 당사자가 아닌 저도 기분이 드럽고..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게 한 번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시때때로 내려와서 /살+임신/ 개드립을 날립니다. 할 얘기가 그렇게 없니..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한 번은 밥을 먹으러 나가는데 엘리베이터에 S가 타고 있더군요.

같이 밥을 먹는 일행 중에 슬리퍼를 신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던 직원이 있었는데

- 슬리퍼 신는 건 고삐리나 하는 짓 아냐? 아닌가? 고삐리들이 슬리퍼를 많이 신대? 하하!

라고 농담인지 인사인지 갈굼인지 모를 말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다들 어색하게 웃고 넘어가려 하는데

자꾸 같은 말을 하며 슬리퍼를 신고 있는 당사자의 대답을 들으려고 합니다.

- 슬리퍼 신는 건 고삐리나 하는 짓 하냐? 응?

저는 엘리베이터 타는 순간부터 S가 있는 걸 보고 또 헛소리 하겠구나 싶어서 다른 직원이랑 다른 화제로 얘길 하고 있었고

슬리퍼 드립을 칠 때 부터는 부러 소리를 높여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며 못들은 척... 무시했고

슬리퍼를 신은 직원과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계속 하던 얘기만 이어갔지요.


이런 식으로

'나는 재치 있고 농담을 잘 하는 상사'라는 걸 어필하고 싶어하는 S. 

이를 목격할 때마다 딱히 아는 척도 안 하고 반응도 안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S에게 인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자기한테 안사 안 하는게 걸리는지 제 자리까지 와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안.녕.하.세.요. 힘줘서 인사 하더만요.

그 순간까지도 차마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네.. 저는 S가 너무 싫습니다.

아 네.라고 대답하고 헐 뭥미?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게 끝이었습니다.

사실 왜 나한테 인사 안 하냐고 물어봐주길 기대했지만...

그럼 "S님은 평소에 직원들을 자주 희롱하시고 농담도 재미가 없어서 제가 참 싫어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뭐 그 밖에도 참 많습니다.

모자를 쓴 직원을 보면 또 회사에 모자 쓰고 오는 건 어쩌고 저쩌고...

부서에 내려와서 또 살좀 빼라 애는 안 생기냐...

저런 소릴 듣고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응수할 수밖에 없는 직원들의 상황도 이해는 갑니다.

아 근데 전 진짜 이제 한계치에요.

며칠 전에는 정말 느닷없이, 맥락도 뭣도 없이, 어떤 직원에게

- 너도 미니스커트 입어보지 그래

라고.. -_- 그 순간 못 참고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들으라고요. 들었을 것 같아요. 제발 들어라.


아.. 차라리 나한테 개드립 날리면 시원하게 날려줄 텐데.

이미 내가 자길 싫어하는 걸 알아서 말을 잘 안 붙이는 것 같네요.


저런 인간은 그냥 응수를 안 해야 입을 좀 닥칠텐데...

슬픕니다.

직장 상사. 기분 나쁘지만 웃어야 하는 직원. 

계약 6개월 남았는데.. 확 지X한 번 하고 나갈까 싶다가도 그럼 팀장님 부장님이 뭐 저런 미친X를 뽑았냐고 혼나실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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