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않아

2015.09.11 14:07

Kaffesaurus 조회 수:2060

이해해요, 걱정 말아요


...

이제 밤이 존재하는 시간이라 저녁을 먹을 때가 되면 어두워 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며칠 동안 비가 왔었는데 낮에는 늦여름 더위처럼 찬란하고 아침 저녁으로 그기억을 잃어버릴 정도란 찬 나날들, 아침에 어떤 계획도 없이, 혹시 당신이 너무 바쁘지 않으면 저녁에 들릴까요? 라고 물은 그와 연어를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른들의 대화에 전혀 관심없는 선물이가 거실에서 wii를 열심히 하는 소리를 백그라운드 소리로들으면서 S는 자신이 여기 남아 있는 가 아닌가 그 결정과 관련된 여러가지 조건들, 관련 사항들을 이야기 하고 , 지금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설명하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봤다. 최대한 솔직하고 자세하게. 그러다가 지난 번에 내가 제안한대로 에릭한테 월급에 대해 물어봤다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하는데,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적은 듯해서 나도 모르게 내가 다시 그 직에 따른 평균 월급이 얼마인지 알아 보겠다고 했다. 이건 은근 직업병이다. 

그가 떠나고 나서 잠시 생각해보니 사실 나보다 에릭이 더 잘 알테고 내가 한 말들이 절친인 에릭을 믿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의 기분이 상했을까? 싶기도 하고 무엇때문인지 막연히 걱정이 되어서 다음날 아침에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 지,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 지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이 내가 말한 의도를, 지금 말하고 싶어하는 걸 이해주었으면 이라고 쓴 메시지에 그는 간단하고 가볍게 답한다. 

이해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스마일리.


이 문자를 받자 갑자기 다른 사람 생각이 난다. H는 늘 이해해 라고 말했다. 언제인가 내가 지쳐서, 뭘 이해하는데, 들어보자 뭘 이해하는데? 라고 물었던 게 기억난다. 이해한다고 말하던 사람과 말을 하면 할수록 벽을 느꼈던, 무언가 깔끔하지 않은 감정의 잔재들이 턱까지 차올라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때 그가 무슨 답을 했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가 보낸 반성문 메일에, '나는 너같은 사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너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해서, 너가 한 말들 뒤에, 네가 한 행동들 뒤에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늘 생각했었다. '라고 써보낸 걸 기억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 행동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하나의 translation이다. 이해의 근본은 나한테 있지 다른 사람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나의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고, 나의 행동들이 자신을 향한 선의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해해요' 라고 말하는 S는 분명 H와는 다른 사람이고 그들 뒤에는 다른 삶이 있다. 아니 이것 또한 H를 위한 나의 변명이다. 그보다도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삶을 경험한 에밀리는 그와 다른 종류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그는 그가 선택한 길에 있는 것이다.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믿는 것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하자, 나는 다시 서글프다. 이것이 이렇게 힘들었던 H가 불쌍하기도 하다. 그리고 밉다. 여전히. 아마도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말대로 진정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끝까지 결국 타인을 믿는 걸,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는 걸, 자신을 의심이라는 방어벽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했던 그가 밉다. 그는 나의 행동을 믿지 않았고, 내가 하는 말이 아닌 하지 않는 말들을 들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그가 보기에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한번 나와의 약속을 어긴 후 그는 연락이 없다. 가끔은 우연히 보고 싶다. 사람이 작아서 나는 그를 만나 지금 내가 얼마나 잘 지내는 지 그냥 보여주고 싶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S에게는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때의 우리는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다시 보여주고 싶다. 어쩌면 '네가 나의 선의를 믿지 못한 이유는 네가 누군가에게 이용하겠다는 생각없이 선의를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라는 모진 말을 해주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만나는 게 좋다. 아마 그도 알고 있다. 더이상 나한테는 그를 이해할려는 선의가 없다는 것을.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