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런 사람이란 겁니다."

2015.06.24 02:59

여은성 조회 수:1842


  1.제목은 드라마 굿와이프의 대사예요. 본 지 오래 되어서 확실하지 않은데 주인공과 노회한 실력자가 이야기를 해요. 나름대로 좋은 사람인 주인공은 노회한 실력자의 작전을 거절하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하죠. 그러자 보좌관이 '제가 인생에서 단 하나 아는 게 있다면, 모두가 그런 사람이란 겁니다.'라고 합니다. 굿와이프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예요.


 그동안 좀 비뚤어진 것 같은 소리들을 했었죠. 사랑은 구걸하는게 아니라 사는거라던가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계량화가 되어서 사람들의 선동과 헛소리를 없애야 한다는 글들이요. 저는 '모두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철저히 믿거든요. 


 이 말을 모 진보 논객의 데이트 폭력 글이 나올 때부터 슬슬 하고 싶어서 근질거렸어요. 그리고 며칠 동안 뭐랄까...이른바 '기대받았던 사람'들이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촌극이 몇 개 더 일어났고 오늘은 모 만화가의 성추행 사건도 나왔군요. 지금까지 세상을 본 바론, 그럴듯한 걸 만들거나 그럴듯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돈도 벌고 인기도 얻기 위해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아 그렇다고 제가 인간을 꼭 뭐 나쁘다고 여기려는 건 아니예요. 인간에게는 자의식과 욕망이 있고 자의식과 욕망에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운이 좋을 거라고는 안 믿을 뿐이죠. 유감스럽게도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제법 좋은 것들을 결국 발판으로 써먹어요. 욕망을 실현시키고 자의식을 부풀리기 위한 발판 말이죠. 그것이 발판이 되는 순간 그건 '제법 좋은 것'에서 '그래봐야 발판'일 뿐인 게 되는 거죠.


 흠.


 저는 묻지도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편이예요. 한데 요즘은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제가 먼저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하곤 해요. 나는 뻔한 것과 브랜드에만 열광하고 나머지는 안중에도 없는 얄팍한 사람인 걸 꼭 알아두라고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내가 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대해주고 기대해주는 건 견딜 수가 없어요.


 


 2.자의식과 욕망에 이길 수 없다면 그나마 공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남에게서 얻는 것들에 대해 비용을 치르는 거라고 봐요. 


 한데 많은 사람들은 의태를 하죠. 좋은 사람인 것처럼 의태하거나 상처받아서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의태하거나 강한 것처럼 의태하거나 약한 것처럼 의태해요. 먹힐 것 같은 캐릭터로 의태하거나 잘 흉내낼 수 있는 캐릭터로 의태하죠. 한데 이 따위 의태가 통하는 경우는 결국 하나로 귀결돼요. 자신이 상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상대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하는 거죠.


 건전한 구애를 하거나 적절한 가격에 사는 건 좋아해요. 하지만 저런 의태 행위는 완전 구걸짓거리라고 보고 있어요.


 휴.


 하하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인간에게는 자의식과 욕망 말고도 감정이 있으니 바보같은 일들은 계속 일어나겠죠. 저를 포함해서요.



 3.흠...취하면 머리 속의 뉴런이 뛰는 속도가 느려지는 거 같아요. 글도 뭔가 앞뒤가 안 맞게 써지고요. 등록버튼을 눌러야할지 말아야할지...하지만 머리 속의 뉴런이 느려지면 한가지는 좋아요. 연상 작용도 잘 기능하지 않는다는 거죠. 건드리면 반응하는 수은 같던 뉴런이 겨울잠 자는 곰처럼 가만히 있는 거죠.


 누군가 말했듯 세상 모든 사람은 몇 단계만 거치면 다 아는 사람이예요. 마찬가지로 머리 속의 것들도 몇 번~십수 번의 연상 작용을 거치면 다 아는 사이죠. 정신이 온전할 때는 아주 하얀 것에서부터 아주 검은 것까지 가는 데 1~2초도 안 걸려요. 이것에 도움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번 활성화된 연상 효과는 이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계속 작동하죠.


 멘탈리스트라는 드라마의 각 화 제목을 보면 늘 '붉은~'으로 시작해요. 주인공 제인의 원수인 레드존이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에서도요. 제작자는 그렇게 에피소드 제목을 지은 것을 '주인공은 언제나 레드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썼어요. 다른 어른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놀이공원의 익스프레스가 완전히 뒤집어질 때, 바이킹 뒷자리에 앉아 바이킹 높이가 정점에 달했을 때 중력을 잃는 순간, 사놓은 주식이 8%가 올랐을 때, 웨이트 트레이닝의 마지막 세트에서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 마지막 횟수를 달성할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스테이크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순간...뭐 이런 순간들에도 늘 가장 나쁜 것과 같이 있는지 아니면 그런 순간들에는 완벽히 즐거울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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