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2015.06.30 03:51

여은성 조회 수:718


  1.예전에 엄청나게 자세한 군대에 관한 글을 썼다가 너무 개인적이라 등록 안하고 넘겨버린 일이 있어요. 그런데 쓸모있는 사람만이 환영받는 냉엄한 거리를 걷고 와보니 약간 리바이벌하고 싶어졌어요.


 2.이 세상은 폭력적이죠. 물리적 폭력은 하급에 속하고 진짜 무서운 폭력은 대등한 관계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을,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납득시키는 것이죠. 요즘은 통신 사업이 그렇다고 느끼고 있어요. 휴대폰 요금이라는 건 요금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아닌, 21세기에 새로 생긴 세금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냥 의무적으로 내는 건데도 가격은 합리적이지 않고 폭리에 가깝죠. 


 3.한데, 우리에게 가해지는 그런 폭력들을 그냥 넘길지 아니면 비용을 내고 피해갈지를 택하라면 대개는 그냥 넘기는 걸 택해요. 비교형량해보면 기분은 짜증나지만 그걸 피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더 크면 툴툴거리며 그냥 참는 거죠. 설령 그게 합법적으로 피해가는 거더라도요. 


 4.휴.


 5.대학교 가서 들은 말 중 제일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나 소개해 보죠.


 "너, 군대 안 가면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 할 때 어쩔 거야?"


 이 말을 듣고 지금 블랙유머를 들은 건지, 아니면 이사람은 정말로 술자리의 군대 얘기에 끼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건지 헷갈렸어요. 그리고 그의 진지한 눈과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후자라는 걸 알았죠. 이외에도 '군대 재밌던데? 보내만 주면 또가고 싶다.'나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되지.' 같은 주옥같은 말들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 그 때만 해도 군대는 그냥 귀찮은 곳, 어쩔 수 없이 참고 다녀와야 하는 곳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죠. 군대문제가 끝난 후 군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서야 한국 군대는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6.잡담글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변호사 친구가 있죠. 그를 15년만에 만난 날 이런 말을 들었어요. 군대를 안 간 사람은 군대 가서 2년 동안 나라를 위해 시간을 바치며 보초를 선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요. 당시에 그는 변호사는 아니고 아마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많이 공부한 사람도 이런 현실 인식 수준을 가지고 있다니 소름이 끼쳤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그 친구가 뭘 말하든 '자네 말이 맞아'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그순간에만 반박을 했어요. 


 7.훈련소에 갔었던 첫날은 생생하지 않아요. 한가지, 모두가 모였을때 대장같아 보이는 사람이 '이 안에서 도저히 군대 2년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은 나와라'라고 말했어요. 나갈까...하다가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그냥 말았어요.


 생생하고 리얼한, 폭력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느낌은 다음 날 아침이었어요. 누군가가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죠. "지금부터 5분 준다! 5분 내에 세면하고 환복하고 정자세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였어요. 그순간 이게 뭔가 싶었고 소름끼쳤어요.


 이런 아침을 729번 더 참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요.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내가 이걸 729번 더 참을 수 있을까? 하고요. 그리고 도출된 대답은 'NO'였어요. 만약 이걸 참을 수 있는 버전의 내가 되었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사랑받는 내가 아닌 낯선 나일 거 같았어요. 그리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내가 늦잠 자고 싶을 때, 식사하고 싶을 때,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고 싶을 때 당장 할 수 없고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참아야 하는 곳에 왔다는 것에 대해서요.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러 왔거나 가치있는 보상을 받으러 왔다면 화가 덜 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 경우는 둘 다 아니잖아요.


 그래서 소리쳤어요. 


 "야 이런 씨팔 그냥 나 감옥 보내 달라고! 감옥이 낫겠다!"하고 소리치니 구대장(이상하게도 의정부에선 조교가 아닌 구대장이라는 직급이 있었어요)이 왔어요. 그가 제쪽을 보며 돌았냐고, 진짜 감옥 가고 싶으면 보내 줄까? 하고 으름장을 놓는 걸 가만히 보다가 너무 슬퍼졌어요. 


 이 사람도 가족이 있을텐데, 이 사람의 가족은 이사람이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거나 행복할 일을 하길 바랄텐데 왜 여기서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고 있어야 할까? 하고요. 뭐가 이사람을 이렇게 만든걸까 하고 슬펐어요. 그래서 그사람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걸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죄송합니다 지금 가서 씻고 오겠습니다'하고 말았어요. 



 8.아는 모 지휘자는 군대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군대에 며칠 갔다가 진단서 그딴 거도 필요없이 즉시 면제를 받고 돌아와 그후 5년동안 가위눌렸다고 들었어요. 제가 지난번 말한 감옥 규칙과 비슷하죠. 감옥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거나, 죽거나, 탈출하거나 셋 중 하나죠.


 

 9.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로 군대에 대한 나쁜말들을 늘어놓고 싶지만...어차피 군대를 이미 다녀온 사람들에겐 기분나쁠 수 있는 언설이겠죠.


 기분나쁠 수 있는 말은 쓰고 싶지 않으니 그냥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말을 써봐요.


 저는 왕자예요. 느닷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싶겠지만 왕자예요.

  

 휴.


 물론 언제나 어디서나 그랬던 건 아니예요. 하지만 20대의 어느 시기가 지나서는 어딘가에서 왕자 취급을 받지 못하면 심각하게 기분이 나빠지도록 스스로 연습했어요.


 이건 간단한 일이예요. 이 세상에서 단 한명만 나를 왕자라고 여겨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왕자인 거죠. 나를 왕자로 여겨 주는 한사람을 위해서라도 어디 가든 왕자처럼 땡깡피우고 왕자가 받아야 할 존중을 요구하는 거죠.


 하지만 군대 같은 곳에서는 그게 불가능해요. 그런 폭력적인 곳에서는 탈옥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폭력적인 곳에서 탈출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계속 놔두면 왕자 대접을 절대 받을 수 없죠. 


 그런 곳에 날 놔두는 건 나를 왕자로 여겨주는 분들을 모욕하는 짓이예요.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요. 사실 이세상에 중요한 사람 같은 건 별로 없잖아요.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만이 중요한 인격체이고 다른 인간들은 물체인거죠.



 10.하긴...모두가 왕자고 공주예요. 스스로 그렇게 믿는 동안엔요. 위에 말한, 제게 고래고래 소리질렀던 구대장도 한때는 왕자였던 것처럼요. 너무 시크릿류 같은 소린가? 


 CSI시리즈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이거예요. 별로 중요한 장면도 아니고 비록 뺀질거리는 악당이 한 소녀에게 하는 조언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제일 좋아해요.


 "아가야, 넌 공주님이야. 그 사실을 모르는 병신같은 놈팽이에게는 널 줄 필요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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