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

2015.07.21 05:16

여은성 조회 수:999


 1.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한정거장 떨어진 곳에 내려서 슬슬 걸어왔어요. 간발의 차이로 비를 피할 수 있었어요. 골목골목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죠. 흠...그런데 매우 어렸을 때의 추억이 있는 어떤 빌라를 지나오게 됐어요.


 2.당시엔 CCTV가 없었어요.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는 너무너무 궁금한 게 있었어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당시에 저는 새벽에 나돌아다니곤 했어요. 지금이야 초딩이 한밤중에서 새벽에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어도 사람들이 아 그런가보다 할 수도 있겠죠. 휴. 한데 당시의 밤이라는건 지금과 완전 달랐어요. 아무리 번화한 곳이라도 밤이 되면 어두워지고 조용해지고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됐어요. 24시간 하는 가게도 없었고 그나마 볼 수 있는 사람은 경찰 정도였죠.


 3.궁금한 게 뭐였냐면...이 도시는 도저히 감시 체계라는 게 가동되지 않다고 여겨지는 거였어요. 막말로...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지나가는 누군가를 찔러버린뒤에 유유히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면 도저히 경찰이 잡을 수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거예요. 몸싸움이나, 금전 갈취 같은 것 없이 말 그대로 살인을 위한 살인을 저질러 버리면 도저히 꼬리를 잡을 수 없을 거 같아 걱정이 됐어요. 그야 당시엔 사이코패스 범죄가 거의 없었으니 당시 수준의 감시 체계로 당시 수준의 범죄를 잡아낼 수 있었겠지만 아무도 없는 스산한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그런 생각이 초딩인 나를 가끔씩 괴롭히곤 했어요. 악마가 현현해도 악마를 잡을 방법이 없다는 거요. 


 4.휴.


 5.그러던 어느날 또 밤거리를 빙빙 돌고 있었는데 두 여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오고 있었어요. 


 둘 중 하나였어요. 두 여자가 한밤중에 당랑권을 연마하는 중이던가, 두 여자가 만취했거나. 아마 후자인 거 같았어요. 두 여자는 남사국민학교 근처에 있는 빌라의 지하로 비틀거리며 들어갔죠.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채.


 여기까지였다면 저는 심드렁하게 또다른 장소로 이동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 두 여자를 유심히 관찰하는 한 성인 남자가 저를 그곳에서 떠나지 않게 했어요. 저는 그자가 바로 빌라로 따라 들어갈 거라고 여겼는데 조심성이 꽤나 있는건지 그러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약 15분 뒤 그가 나타났어요. 저는 그가 100% 다시 나타나서 그 빌라로 들어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서 계속 기다렸거든요. 그가 그 빌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거기 아저씨 집 아니잖아요."라고 말했어요. 딱히 제가 착해서는 아니고, 이 도시에서 누군가 비양심적인 짓으로 이익을 본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는 심리가 늘 있었어요. 다른 녀석이 비양심적인 짓으로 이익을 보는 건 참을 수가 없었어요. 반드시 훼방을 놔야 했죠.


 흠.


 그는 그순간까지 제 존재를 몰랐어요. 밤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건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진짜로 안 보인다는 거예요. 가끔 놀이터에서 밤을 새울 때 순찰을 도는 경찰들이 놀이터에 오면 꽤나 곤란해지죠. 하지만 어둠 속에 숨는 요령을 깨달은 뒤에는 경찰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냥 가장 어두운 벤치에 가서 앉아있곤 했어요. 그러면 경찰들은 5M앞에 초딩꼬마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못채고 그냥 지나가곤 했어요.


 뭐 어쨌든...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어둠속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리니 그는 꽤 쫄은 거 같았어요. 이쪽을 흘낏 보더니 그냥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 버렸어요.


 

 6.여기서 남은 문제는...이곳을 떠나기 전에 저 빌라의 현관문을 닫아 주고 가느냐 그냥 놔두고 가느냐였어요. 내가 하는 행동이 저 여자들의 운명에 관여하는 거 같아서...그게 길한 일이든 흉한 일이든 이 일을 해야하는 걸까? 라는 고민을 한참 동안 했어요. 그날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7.아직도 그곳에는 빌라가 있어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허물고 다시 빌라를 올린 거겠죠. 아마 그때 그 두 여자는 진작에 이사를 갔겠지만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종종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해요.



 

 8.요즘 쿡티비에서 인어공주 무료 서비스를 해요. 계속 틀어놓으려고요. 이 글과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관련이 있어요. 초등학생의 어느 때까지는 디즈니 애니를 좋아했어요. 인어공주에서부터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킹 같은 디즈니 대작 애니메이션이 나올 때마다 늘 챙겨보곤 했어요. 하지만 알 수 없는 어둠과 우활한 것들만이 내게 남아있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디즈니 애니를 보지 않았어요. 피할 수 없는 어떤 순간에 피할 수 없는 어떤 나쁜 것이 덮쳐지는 대신 노래와 춤 따위로 때워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요즘엔 다시 좋아요. 노래와 화려함이 있고 나쁜사람들은 벌을 받고 좋은사람들은 좋은 것들을 얻는 걸 보고 있으면 완벽한 세상을 보는 것 같아요. 디즈니 세상에선 좋은사람들이 겪는 나쁜일들은 좋은사람들을 파괴하는 대신 좋은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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