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1분. 스포일러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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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터부터 지알로 느낌 가득. 실제로 영화 속에도 지알로 인용이 나오구요.)


 - 1993년. 딱 봐도 고풍을 넘어 고색창연에 가까운, 넘나 거창하게 생겨서 심지어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역시 엄청나게 고색창연한 톤으로 고색창연한 대사들을 읊는 의사가 나와서 캠코더에 뭔지 모를 영상을 남기구요. 그러다 긴급 호출을 받고 '가브리엘'이라 불리는 어린 환자가 미친 듯 날뛰며 초능력으로(!) 사람들을 막 죽이는 현장에 달려가 상황 정리에 성공해요. 그러고는 '이 종양 덩어리를 없애버리겠어!'라고 외치며 장면 전환.

 장면이 바뀌면 '현재'입니다. 이게 작년 영화니까 대략 28년이 흘렀구요. 인생 보탬 안 되는 찌질 폭력 남편에게 시달리는 산모 매디슨씨의 모습이 보이고, 또 다시 남편에게 화끈하게 배와 머리를 두들겨 맞은 그 날 밤에 남편이 괴이한 꼴로 살해당합니다. 그 와중에 아기는 어찌된 것인지 알 수 없게 유산됐구요. 여기까지만 해도 우울해 죽겠는데 갑자기 황당한 일이 일어나네요. 자다 말고 누군가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환상을 봤는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버린 거에요. 그리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데, 아무래도 이 상황은 '가브리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만 주인공은 그게 뭔 일인지 기억도 안 나고. 결국 주인공이 걱정돼서 달려온 여동생 & 그나마 주인공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해주는 젊은 훈남 형사님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한 조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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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팀 사람들. 나름 한 명 한 명 모두 빠지지 않게 매력적으로 잘 묘사된 편입니다.)


 - '컨저링'을 재밌게 봤지만 시리즈의 팬은 아니구요. 제임스 완 영화들 중 재밌게 본 게 꽤 있지만 역시 감독의 팬은 아닙니다. 신작 내놓는다고 열심히 챙겨보고 그러지 않아요. 뭐랄까... 잘 만드는 사람이고 장르도 제가 좋아하는 호러지만 뭔가 미묘하게 제 취향과는 살짝 안 맞는 영화들을 만들더라구요.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신나게 봤습니다!! 사실 처음엔 좀 애매한 감이 있었는데, 영화가 진행될 수록 즐거워지다가 마지막 부분은 진심 흥겨운 기분으로 봤어요. 아니 제임스 완이 이런 사람이었다니!! 라면서 그동안 몰라봤던 걸 죄송해하고 싶어질 정도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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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겨워지는 중의 한 장면.)


 - 그러니까 일단 굉장히 강력하고 뻔뻔하며 당당스러운 B급 호러 스타일의 영화입니다. 이미 흥행 대가로 인정 받은 제임스 완이 고급진 인력들을 데리고 만든 영화이니 완성도가 B급일 리는 없겠지만요. "아 뭐 어쩔!!" 이라는 느낌으로 폭주하는 스토리도, 일부러 과장되고 고색창연한 스타일을 내내 들이미는 비주얼도, 심지어 거기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완연히 B급 스피릿이 가득해요. 심지어 전 이 영화 도입부를 보면서 당연히 극중 극 같은 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스타일로 끝까지 나갈 수가 없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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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락없이 고풍... 을 넘어 그냥 웃음이 나올 정도로 과장된 병원의 모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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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감을 잡게 해주는 주인공네 집. ㅋㅋㅋ)


 - 그 와중에 역시 가장 튀는 건 스토리입니다. 도저히 앞뒤가 맞게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을 늘어 놓아서 당연히 심령극, 혹은 정신 이상 스릴러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다가 클라이막스 직전에 진상이랍시고 튀어나오는 설명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뭐야 이거, 이 각본 쓴 사람들 제정신인가? 2021년에? 그것도 무려 제임스 완이 만든 영화 내용이 이렇다고? ㅋㅋㅋㅋ 정말 무슨 60~70년대 B급 호러에나 나올 법한 엉터리 과학 설정이 정색하고 튀어나오는데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 반대로 생각하면 각본을 쓴 양반이 제임스 완의 수완을 철저하게 신뢰했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이런 스토리로도 멀쩡해 보이는 호러 영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그랬던 걸 테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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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고수 가브리엘찡... 매력적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데, 암튼 임팩트 하나는 상당합니다.)


 - 그런데 이런 막나가는 이야기를 진정 즐겁게 해주는 건 제임스 완과 배우, 스탭들이 이 이야기를 쓸 데 없이 고퀄(...)로 완성해서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과장스럽게 표현하긴 해도 이 영화의 특수 효과나 cg 같은 건 어디까지나 헐리웃 A급 영화의 그것이고 또 제임스 완이 그걸 영화의 괴이한 분위기 조성에 잘 써먹구요. 
 영화가 풍기는 유희적인 느낌 때문에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그래도 호러를 의도한 장면들은 모두 전혀 우습지 않게, 깔끔하고 효과적으로 잘 꾸며져 있어요.
 배우들도 옛날 B급 영화식 과장 연기와 진지한 드라마 연기를 오가는 난이도를 감안할 때 상당히 잘 해주는 편인 데다가 영화가 의외로 인물간의 드라마 파트에는 진지해요. 캐릭터들도 착한 쪽은 거의 믿음직스럽고 응원해주고 싶게 잘 잡혀 있구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클라이막스에 펼쳐지는 살인마 vs 경찰들의 액션씬이 참 '갑자기 이게 뭔데!' 싶을 정도로 고퀄입니다. 황당해서 웃길 정도로 기괴한 살인마가 참 괴상한 꼬라지로 펼치는 액션인데 그게 참 화려하면서도 유려하게 장시간 동안 펼쳐지니 나중엔 그냥 감탄스럽더라구요. 이렇게 훌륭한 분이었군요 제임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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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한 듯 깔끔한. B급 정서와 고급 인력이 만나 빚어진 어색하게 재밌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 그래서 결론은요.
 호러 영화를 이것저것 골고루 좋아하시고, 특히 B급 스피릿으로 막나가는 호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대체로 좋은 시간들 보내실만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제임스 완이 '아쿠아맨'으로 히어로물까지 성공 시킨 김에 당분간 외도를 하거나 아예 다른 노선을 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거나 먹어랏!' 하고 보내는 영상 레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ㅋㅋㅋ 이런 영화 많이 만들어주세요 감독님.
 ...다만 아무래도 그렇게 유니버설하게 널리 사랑 받을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니까요. 대체로 무슨 장르든 좀 정상적인 게 좋으시다든가. 옛날식 호러보단 요즘 유행하는 '하이 컨셉' 호러가 취향에 맞으시다든가... 라는 분들에겐 아주 별로일 수도 있습니다. 신중하게 선택하시길.



 + 가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건전하고 교훈적인 영화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모든 비극은 가정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고. 모든 것의 해답은 바로 우리들의 사랑에 있으리니...
 그런데 결말은 살짝 비겁하게(?) 맺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모든 사단 이후에 남은 생존자들이 안 억울하게 살아갈 방법이 안 보여요. 막판에 일을 워낙 크게 벌여놨어야 말이죠.


 ++ 사람들이 왜 이리 이 영화를 겨울 왕국에 비교할까... 했는데 아예 감독 본인이 그 언급을 했군요. 아니 이 양반이.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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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 분들이 엘사와 안나 되겠습니다.)


 +++ 제가 이렇게 극찬을 하니 낚여서 보고 후회하는 분들이 생길까봐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만.
 이 영화 흥행 성적도 별로이고 비평적으로도 그냥 그렇습니다. 되게 소수 취향 영화라는 거 잊지 말아주세요. 그것도 대체로 호러라면 아무 거나 다 보고 즐거워하는 호러 덕후 성향에 맞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밌는 것. 어제 영화를 다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되감기로 초반 장면들을 몇 개 다시 봤는데요. 그러다 이게 굉장히 당당하게 처음부터 스포일러(?)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긴 뭐 그럴만도 해요. 누가 사건의 진상이 그딴(?) 식일 거라 예상하며 보겠습니까. 스포일러를 보여줘도 스포일러라고 눈치 챌 수가 없는 영화인 겁니다. ㅋㅋㅋㅋ


 +++++ 아 맞다. 올레티비에서 유료로 봤어요. 다만 KT 포인트 + 매달 받는 티비 쿠폰 신공으로 350원인가에 봤네요. 한참 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하던 영화라 무려 이런 대규모 출혈(!!)도 감수한 것인데, 영화가 맘에 들어서 더더욱 좋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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