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 신용카드

2015.07.14 21:15

여은성 조회 수:2220


 1.동네 마트에 갔어요.


 늘...인간은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계획이 있어야 효율도 있는거죠. 북쪽에 있는 동네 마트에 갈 때는 먼저 빵집에 가서 빵을 사고 가요. 동네 마트에서는 냉동식품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야 하고 냉동 식품을 마지막으로 사야 엔트로피를 되돌리는 데 드는 비용이 더 적어지죠. 동네 마트 안에서도 일단 과자나 음료수부터 집고 마지막으로 냉동 식품을 집어요.


 다른 큰 가게에서는 동난 비비고 교자만두가 있더군요. 혹시 다른 걸 집고 돌아오는 동안 이게 사라지지 않을까...했지만 마트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들의 행색과 태도로 보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 사람은 없는 거 같았어요. 밖을 돌아다닐 건데 냉동식품을 사는 건 멍청한 행동이죠. 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거라는 걸 믿기로 하고 비비고 교자만두를 굳이 먼저 집지 않았어요. 


 그리고...과자 칸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그것이 있었어요.


 허니버터칩이 들은 실물 봉지를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어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허니버터칩이 맞는지 몇 초간 갸우뚱해야 했어요. 분명히 하기 위해 왼쪽 위를 봤는데...해태라고 써있었어요. 이건 뭐지? 싶었어요. 허니버터칩을 만든, 멋진 주봉 차트를 가진 주식 이름은 분명 크라운제과였거든요. 흠...고민하다가 아마 해태제과를 크라운제과가 인수한 걸 거라는 데에 걸기로 하고 있는 대로 몽땅 집었어요. 그러자 보고 있던 아주머니 둘 중, 계산원이 아닌 쪽이 말했어요.


 "대어를 낚으셨네? 잘 숨겨 놨었는데."



 2.후...신용카드라. 신용카드라는 물건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오늘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가져보려다 실패했죠.


 운동하는 곳 역에 있던 백화점이 사라지고 현대백화점이 들어왔어요. 영등포에 있는 신세계과 롯데, 그리고 여기에 현대백화점이 생겨서 3파전이 된 거겠죠. 다른 상권에서도 종종 이러던데 잘 이해는 안 돼요. 이미 다른 경쟁자들이 있는 곳에 굳이 들어가는 거요. 하지만 유통업의 전문가는 그들이니, 보이지 않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거겠죠. 



 3.어쨌든 운동을 하고 나오려는데...현대백화점에서, 호텔 회원에게 뭔가 괜찮은 걸 해준다는 문자가 왔어요. 알아보니 호오...현백 라운지 그냥 이용에 하루에 공짜 음료 3잔! 음료 값을 아낄 수 있음에 기뻐하며 오라는 곳으로 갔어요.



 4.흠.



 5.가서 번호표를 끊고 데스크에 물어보니 이런...그냥 되는 게 아니었어요. 일단 현대백화점 카드란 걸 만들어야 한대요. 그래서 하루 음료 3잔을 위해 만들기로 했죠. 직원은 이 카드는 신용카드 개념이라 신용정보를 주셔야 하고,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어봤어요.


 늘 하던 대로 '헤헷, 백수예요.'라고 대답하자 직원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럼 카드는 못만든다고 했어요. 그순간 지금 상대하는 건 장난이 아니라 현실 세계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거, 내가 직업이 정말 없나? 생각해보면 직업이 뭐 하나라도 있긴 있을 거 같은데...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봤어요. 


 사실...웹툰 작가라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위대한 작가가 된 것도 아니라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거의 말하지 않은 건데 여기서 말하는 건 왠지 싫었어요. 그래서 전업투자가도 직업으로 쳐 주냐고 묻자 직원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안된다고 말했어요.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했어요. 아주 잘 봐 주면, 사실 웹툰 작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요. 그러자 프리랜서였냐고 하며 뭔가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고 여기저기 표시된 서류를 내밀었어요. 서류에는 외우고 다니지 않는 정보들을 적어야 해서 결국 그만둬야 했어요.


 휴.


 가기 전에 자산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소득이 있어야 하는 거냐고 묻자 무조건 직업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직원을 보며 무서웠어요. 세상의 단면 중 처음 겪어본 하나의 단면이...만약 내가 아쉬운 사람인 상황에서 이런 종류의 단면을 겪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하고요.



 6.가끔 물건을 살 때 체크카드를 내도 체크카드란 걸 못 알아보고 '몇개월 하실겁니까?'하곤 해요. 그런 상황에서 기분이 좋을 때는 '일시불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애초에 왜 사는 거죠? 어른들은 참 이상하네.'같은 대사를 하며 연극적인 기분을 느껴보기도 했는데...신용 카드란 물건을 사실 그동안 안 가진 게 아니라 못 가진 거였다니. 


 

 7.카드 이야기에서의 오늘은 금요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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