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작가의 트위터에서 재밌는 농담을 읽었습니다.




한 트위터리안이 '한국에서 작가로 성공하려면 성공하려면 단체에도 소속되어야하고 회의에도 참석해야하며, 모시는 윗분도 있어야 한다'고 한 거에 대해서, 김보영 작가가 'SF로 오세요. 이 분야의 대선배인 사람은 익명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만날 수도 없어요' 이런 말을 한 건데, 듀나님이 '대선배'라는 권위주의적인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활동을 시작한 시기상으로는 그런 위치에 있다 싶은 게 역설적이어서 재밌네요.




근데 '한국에서 작가로 성공하려면 성공하려면 단체에도 소속되어야하고 회의에도 참석해야하며, 모시는 윗분도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좀 의아스럽더군요.




전 한국 문학에 대해 그리 잘 아는 편도 아니고, 많이 읽은 편도 아닌데 걍 저런 말들을 볼 때마다 의아스러워요.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요.





요즘 작가로 치면 누가 있을까요. 김애란? 김사과? 황정은? 손보미?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박민규, 김영하, 김연수가 '단체에도 소속됐고 회의에도 참석했으며 모시는 윗분도 있어서 성공한' 경우인가요?




걍 궁금해요. 저런 소리를 들을 작가가 누가 있는지. 그리고 한국 문학이 작가가 '정치질'을 안 하면 성공하지 못할 정도로 최소한의 자정 능력이 없는지도 궁금하고요.





김영하가 <빛의 제국>으로 만해 문학상을 받았을 때 시상식이 끝난 다음 뒷풀이에서 아무도 남지 않았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작가가 드물다고 하더군요(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했던 말이었던가요?). 그런 김영하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누리고 있는데, 이건 저 말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걍 제가 아는 한국 문학사의 자잘한 일화들을 늘어놓자면 이렇습니다.



한국 문학의 정치질이 꽤 있었던 거야 사실인 거 같더라고요. 김화영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50년대에만 해도 젊은 문청들이 '현대문학'으로 등단하기 위해, 현대문학의 문인들의 술자리에서 술 시중을 들었다는 얘기를 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김현과 같은 젊은 세대가 자기 세대의 문학을 하겠다면서 문학과 지성을 창안한 것과 같은 일도 있었거든요. 김현이 문지를 만든 게 당시엔 문단 기득권의 뒷통수를 쳐버린 것과 같은 충격적인 일이었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긴 한데 정확한 기억은 안 나네요. 하여튼 어느 정도 문단 스스로 자정 기능이 있긴 한 거였죠.




이문열은 1977년에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대구 매일 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했지만, 당선이 아닌 가작이었기 때문에 문단의 일원으로 취급 받지 못했고, 2년 뒤에 '새하곡'으로 동아일보에서 등단하고 나서야 문단의 일원으로 취급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이었던 유종호는 새하곡을 지지했고 이후에 <오늘의 작가상>을 심사할 때도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지지했다고 하더군요. 이걸 갖고 유종호가 '이문열을 키워줬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문열이 유종호와의 커넥션 때문에 컸다고 하는 건 웃기는 일이죠. 솔직히... 이문열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문열의 문재 자체는 다들 인정하거든요. 저야 개인적으로 이문열이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이문열의 팬들이 과도하게 추켜 세우는 경향이 있어서 거부감을 느끼긴 합니다만. 이문열 팬들은 걍 '이문열은 뛰어나다'고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문열은 존나 짱이고 만약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전 세계를 재패했을 거고 한반도의 역사상 최고의 문학적 재능을 타고 났다' 이런 터무니 없는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는데(심지어 이문열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싫어하는 이들조차도), 황당하기 그지 없는 광태입니다.




유종호가 이문열을 두 차례 지지했다는 것을 저는 이문열의 인터뷰에서 읽었습니다. 저때 한 말이 대충 '유종호 선생은 나를 두 번이나 지지 해준 고마운 분이지만 내게 가차 없이 엄격한 분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입니다. 실제로 유종호는 이문열의 <시인과 도둑>이나 <칼레파 타 칼라>에서 엿보이는 정치 인식에 대해서 비판했죠. 유종호 본인도 조선일보에 정치적인 칼럼을 기고하던 보수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요. 뭐 하여튼 유종호가 이문열을 평론가로서 지지했을지언정, '선배로서 키워주고 보호해주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이문열이 지금도 소비되고 있는 건 문단에서 정치질을 잘한 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문재 덕분이죠. <그해 겨울>이 프랑스에 번역되었을 때 미셸 뷔토르에게서 '헤세를 연상하게 한다'는 평을 듣게 한 바로 그 문재 덕분에요.




신경숙 같은 경우엔 문단에서 과보호를 하고 있다는 평이 돌죠. 사실 신경숙이 처음 표절 논란이 나왔던 십 여년 전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문제가 된 작품을 처리했다면 지금처럼 더 공개적으로 쪽을 당하진 않았겠죠. 이응준도 남진우를 비롯한 평론가들이 신경숙의 명백한 표절 행위를 좌시했으며, 지금 문단의 구조상 문인들이 함부로 신경숙 같은 '스타 작가'의 표절 행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 돼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경숙이 정치적인 힘을 통해 보호됐을지언정, 정치적인 힘을 통해 성공을 거뒀다고 하긴 힘들죠. 신경숙의 문학적 성공은 듣보잡 시절에 썼던 '외딴 방'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신경숙이 외딴 방이 처음 나왔을 때 거의 일주일 단위로 증쇄가 돼서 너무 신기했다는 말을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쨌든 신경숙의 성공은 저렇게 대중들의 선택을 받음으로 시작한 거였지요.





위에서 이문열이 등단을 하고 나서도 한 동안 작가들의 이너 서클에 끼지 못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것만 보면 문단이 닫힌 체제라는 것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반례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일지를 예로 들면,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민음사에서 <경마장 가는 길>을 출간하면서 등단했죠. 황석영은 7~80년대를 거치면서 문단이 해체화되어서 예전의 구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박민규가 '등단 절차'에 대해서 했던 말이 있죠.


 



-이른바 문단의 실체를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문단’이 어디 사무실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요. 주소라도 있나 했죠. 뭔지 모르겠어요. 아마 늘 심사 봐서 상 주고 그런 것 아닐까.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35525





처음엔 '문단'이라길래 어디 작가들을 모아놓는 사무실이라도 있나 했는데 그런 건 모르겠고 걍 작품 발표하면 상 주는 사람들이 있길래 그렇게 심사하고 상주고 그런 걸 문단이라고 부르나 보다, 한다는 겁니다.



지금의 문단의 모습은 아마 이문열의 시절처럼 닫혀 있다기 보다는 박민규가 말하는 것처럼 막연한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요.



듀나님도 비슷한 말을 했죠. 사람들은 듀나님이 문지에서 단편집을 내고 동인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걸 두고 '듀나는 문단의 인정을 받은 작가다'라고 했는데, 한 인터뷰에서 '문단의 인정을 받은 작가라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햐냐'는 질문을 받고 듀나님은 그냥 시큰둥하게 '잘 모르겠다'고 답했죠.



저런 걸 보면 사람들이 '문단'이라는 표현에서 어떤 폐쇄적인 집단의 이미지를 받는데, 오늘 날의 문단은 안과 밖이 확실히 구분돼 있다기 보다는 경계가 많이 흐려진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등단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기이한 제도다'라는 주장이 있는데, 제가 다른 나라의 문학판 사정은 모르지만 그에 대한 반례를 읽은 기억은 있습니다.



김영하가 조영일과 논쟁을 할 때 미국 작가들의 '길드' 제도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글이여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미국에선 작가들끼리 모여서 길드를 만들어서, 그 길드에 소속된 작가들끼리 인세를 일부분 나눠 가지는 그런 제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직 이름을 날리지 못한 신인 작가들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그리고 그런 작가들이 성공한 뒤에 후배 작가들을 도울 수 있게 만든 제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 길드에 들려고 하면 어느 정도 공신력 있는 출판사에서 글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개념 자체는 없어도, 저 동네에서도 어느 정도 '작가로 인정 받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문'은 있다는 거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저런 길드에 소속된 유명 작가가 예술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문제 있는 언행을 할 때, 같은 길드에 소속된 작가들은 그 유명 작가를 비판하기 힘든 권력 문제도 있을 거라고 상상해볼 수 있고요. 물론 천조국은 헬 조센과는 다른 곳이니 그런 권력 남용 문제를 해결할 제도적 기구가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한 가지 더 나아가서 '한국에서 작가로 성공하려면 성공하려면 단체에도 소속되어야하고 회의에도 참석해야하며, 모시는 윗분도 있어야 한다'는 말의 문제 있는 부분이, 일단 뒤에 두 개는 차치하고, '단체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건 오히려 작가들을 위해서 필요로 한다고 생각되거든요.



예를 들어서 미국엔 SF든, 판타지든, 공포든, 웨스턴이든 간에 작가들을 총괄하는 단체가 있죠. 그리고 이 단체에서 작가들을 조직화하고, 문학상을 열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과정을 걸치면서 해당 장르의 입지를 상승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저렇게 조직화가 돼 있기 때문에 대중과 소통할 수 있고, 편견과도 싸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작가들이 문인 회에 드는 거 자체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저렇게 조직화가 된 것 자체가 아니라 기껏 저렇게 조직화해놓고 이름 있는 작가의 표절 사건이 터졌을 때 찍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게 문제인 거죠. 




뭐 한 줄 요약하자면 한국 문학의 가십들을 살펴 보면 썩은 구석이 있는 것도 분명하긴 한데 완전히 닫혀 있는 구조인 건 아니고 정치질을 통해서만 작가의 성공이 결정된다고 보긴 힘들지 않냐, 이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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