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4 05:52
김보영 작가의 트위터에서 재밌는 농담을 읽었습니다.
한 트위터리안이 '한국에서 작가로 성공하려면 성공하려면 단체에도 소속되어야하고 회의에도 참석해야하며, 모시는 윗분도 있어야 한다'고 한 거에 대해서, 김보영 작가가 'SF로 오세요. 이 분야의 대선배인 사람은 익명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만날 수도 없어요' 이런 말을 한 건데, 듀나님이 '대선배'라는 권위주의적인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활동을 시작한 시기상으로는 그런 위치에 있다 싶은 게 역설적이어서 재밌네요.
근데 '한국에서 작가로 성공하려면 성공하려면 단체에도 소속되어야하고 회의에도 참석해야하며, 모시는 윗분도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좀 의아스럽더군요.
전 한국 문학에 대해 그리 잘 아는 편도 아니고, 많이 읽은 편도 아닌데 걍 저런 말들을 볼 때마다 의아스러워요.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요.
요즘 작가로 치면 누가 있을까요. 김애란? 김사과? 황정은? 손보미?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박민규, 김영하, 김연수가 '단체에도 소속됐고 회의에도 참석했으며 모시는 윗분도 있어서 성공한' 경우인가요?
걍 궁금해요. 저런 소리를 들을 작가가 누가 있는지. 그리고 한국 문학이 작가가 '정치질'을 안 하면 성공하지 못할 정도로 최소한의 자정 능력이 없는지도 궁금하고요.
김영하가 <빛의 제국>으로 만해 문학상을 받았을 때 시상식이 끝난 다음 뒷풀이에서 아무도 남지 않았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작가가 드물다고 하더군요(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했던 말이었던가요?). 그런 김영하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누리고 있는데, 이건 저 말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걍 제가 아는 한국 문학사의 자잘한 일화들을 늘어놓자면 이렇습니다.
한국 문학의 정치질이 꽤 있었던 거야 사실인 거 같더라고요. 김화영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50년대에만 해도 젊은 문청들이 '현대문학'으로 등단하기 위해, 현대문학의 문인들의 술자리에서 술 시중을 들었다는 얘기를 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김현과 같은 젊은 세대가 자기 세대의 문학을 하겠다면서 문학과 지성을 창안한 것과 같은 일도 있었거든요. 김현이 문지를 만든 게 당시엔 문단 기득권의 뒷통수를 쳐버린 것과 같은 충격적인 일이었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긴 한데 정확한 기억은 안 나네요. 하여튼 어느 정도 문단 스스로 자정 기능이 있긴 한 거였죠.
이문열은 1977년에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대구 매일 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했지만, 당선이 아닌 가작이었기 때문에 문단의 일원으로 취급 받지 못했고, 2년 뒤에 '새하곡'으로 동아일보에서 등단하고 나서야 문단의 일원으로 취급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이었던 유종호는 새하곡을 지지했고 이후에 <오늘의 작가상>을 심사할 때도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지지했다고 하더군요. 이걸 갖고 유종호가 '이문열을 키워줬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문열이 유종호와의 커넥션 때문에 컸다고 하는 건 웃기는 일이죠. 솔직히... 이문열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문열의 문재 자체는 다들 인정하거든요. 저야 개인적으로 이문열이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이문열의 팬들이 과도하게 추켜 세우는 경향이 있어서 거부감을 느끼긴 합니다만. 이문열 팬들은 걍 '이문열은 뛰어나다'고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문열은 존나 짱이고 만약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전 세계를 재패했을 거고 한반도의 역사상 최고의 문학적 재능을 타고 났다' 이런 터무니 없는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는데(심지어 이문열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싫어하는 이들조차도), 황당하기 그지 없는 광태입니다.
유종호가 이문열을 두 차례 지지했다는 것을 저는 이문열의 인터뷰에서 읽었습니다. 저때 한 말이 대충 '유종호 선생은 나를 두 번이나 지지 해준 고마운 분이지만 내게 가차 없이 엄격한 분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입니다. 실제로 유종호는 이문열의 <시인과 도둑>이나 <칼레파 타 칼라>에서 엿보이는 정치 인식에 대해서 비판했죠. 유종호 본인도 조선일보에 정치적인 칼럼을 기고하던 보수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요. 뭐 하여튼 유종호가 이문열을 평론가로서 지지했을지언정, '선배로서 키워주고 보호해주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이문열이 지금도 소비되고 있는 건 문단에서 정치질을 잘한 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문재 덕분이죠. <그해 겨울>이 프랑스에 번역되었을 때 미셸 뷔토르에게서 '헤세를 연상하게 한다'는 평을 듣게 한 바로 그 문재 덕분에요.
신경숙 같은 경우엔 문단에서 과보호를 하고 있다는 평이 돌죠. 사실 신경숙이 처음 표절 논란이 나왔던 십 여년 전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문제가 된 작품을 처리했다면 지금처럼 더 공개적으로 쪽을 당하진 않았겠죠. 이응준도 남진우를 비롯한 평론가들이 신경숙의 명백한 표절 행위를 좌시했으며, 지금 문단의 구조상 문인들이 함부로 신경숙 같은 '스타 작가'의 표절 행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 돼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경숙이 정치적인 힘을 통해 보호됐을지언정, 정치적인 힘을 통해 성공을 거뒀다고 하긴 힘들죠. 신경숙의 문학적 성공은 듣보잡 시절에 썼던 '외딴 방'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신경숙이 외딴 방이 처음 나왔을 때 거의 일주일 단위로 증쇄가 돼서 너무 신기했다는 말을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쨌든 신경숙의 성공은 저렇게 대중들의 선택을 받음으로 시작한 거였지요.
위에서 이문열이 등단을 하고 나서도 한 동안 작가들의 이너 서클에 끼지 못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것만 보면 문단이 닫힌 체제라는 것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반례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일지를 예로 들면,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민음사에서 <경마장 가는 길>을 출간하면서 등단했죠. 황석영은 7~80년대를 거치면서 문단이 해체화되어서 예전의 구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박민규가 '등단 절차'에 대해서 했던 말이 있죠.
-이른바 문단의 실체를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문단’이 어디 사무실이라도 있는 줄 알았어요. 주소라도 있나 했죠. 뭔지 모르겠어요. 아마 늘 심사 봐서 상 주고 그런 것 아닐까.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35525
2015.07.14 10:27
2015.07.14 11:14
2015.07.14 14:19
창간호 <악스트>에 천명관작가가 문단권력을 적나라하도록 신랄하게 비판하는 인터뷰를 했네요.
'문피아'라는 표현까지 쓴 걸 보면, 그 작가의 시각에선 그냥 썩은 구석이 있는 정도로 여기진 않는 것 같습니다.
2015.07.14 15:26
천명관의 인터뷰 전문을 보진 않고 걍 기사에서 발췌한 부분들만 봤는데 걍 심드렁하더군요.
"문단의 작가들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시선이냐 하면 바로 선생님들의 시선이다.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동안 선생님들의 엄한 눈이 등 뒤에서 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거다."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독자와 상관없이 점점 더 대학에 종속돼가고 있고 문창과(문예창작과)가 없으면 문학도 사라질 거라는 얘기들을 한다"며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을 근거지로 삼아 물밑에서 문단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학상은) 대부분 단편에 주는 상인데 상은 여러 개이지만 문학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획일화되어 있다"며 "이는 심사위원이 모두 같은 선생님들이기 때문"
"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보단 단편이, 스토리보단 문장이, 서사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다"면서 "하지만 한 작가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유일한 잣대가 문학상을 얼마나 많이 수집했느냐, 하는 것이다 보니 작가라면 다들 이 리그를 포기하기도 어렵다"
"영화판은 대학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문단도 당연히 작가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대중 위에 군림하는 대신 대중과 소통해야 하며 평가는 당연히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작가들이 대중이 아닌 비평가들을 겨냥해서 글을 쓰면서 문학이 대중에게서 멀어졌단 건데, 정작 한 십 년 전부터 문학상 수상작들의 심사평을 보면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기는 건 그렇게 해서 뽑힌 작품들 중에서 정말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은 작품은 드물다는 거죠. 전 심사위원들이 대중성 드립치는 건 그거대로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데(문학에 대해서 얼마나 할 말이 없으면 '책 팔아먹고 싶다'는 얘기나 대놓고 하고 있을까요), 천명관의 얘기는 전혀 공감이 안 가네요. 심사위원이 문학을 보는 기준이 획일화 돼 있어서 문학의 정체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사실 어떤 예술이든 간에 그 기본을 따지는 기준 자체는 획일화 돼 있죠. 그렇게 해서 나온 작가들이 모두 다 획일화 돼 있다는 것도 공감이 안 가고요(제가 본문에 언급한 요즘 작가들, 그리고 00년대 작가들이 모두 다 획일화 돼 있나요?). 그리고 영화를 예로 든 것도 웃긴 게, 요즘 영화 업계에서는 '대중성'을 지향하는 제작자들의 입김 때문에 감독들의 자율적인 영역은 줄어들었다고 하죠? 박찬욱이랑 봉준호가 자신들이 00년대 초반에 작가주의적인 감독으로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탓이 크다고 했죠. 만약에 0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메가 폰을 잡았다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못해서 묻혔을 거라고요. 비평에 예술을 보호하는 기능이 분명히 있는데 천명관이 꼰대들의 비평이 문학을 잡아 먹었다면서 대중성 드립치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바로 그런 부분이네요.
2015.07.14 15:10
2015.07.14 15:43
최인호가 문단이랑 멀어진 게 대충 이런 사연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쓰면서 비판을 받자, 김현이 '네가 이런 통속적인 글을 쓰면 우리도 네 비판자들을 상대로 널 쉴드 쳐주기 힘들다' 이렇게 말했는데, 최인호가 '그럼 걍 쉴드쳐주지 마' 하면서 문지랑 멀어진 걸로. 지금과는 달리 문학의 아젠다가 실재하던 시절의 얘기고, 훨씬 더 문학이 살아 있던 시절의 얘기죠. 하지만 지금보다 '문단'이라는 닫혀 있는 체제가 훨씬 확고하던 시절의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학판이 저때보다 지금이 더 막혀 있다고 생각하긴 힘드네요. 당장 본문에 쓴 것처럼 이문열이 문단의 일원으로 취급 받지 못한 시절이었죠. 그냥 등단을 못 했다고 해서.
걍 요즘은 문단의 안팎 구별 자체가 희미해진 거 같습니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이 대산 문학상 후보에 올랐었죠. 이건 그때 심사위원인 권성우가 정유정의 7년의 밤을 극찬했기 때문으로도 보이긴 한데, 하여튼 '문단이 상 주고 받는 데 같다'는 현역 작가 박민규의 평을 놓고 봤을 때, 정유정은 저때 문단의 일부였던 거죠. 하지만 그 이후로 다른 문학상의 심사후보에 오른 적이 없으니 문단의 일부가 아니라고 할까요? 그 기준 자체가 좀 모호한 거죠. 정유정이, 김화영 교수처럼 전형적인 '문단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맡은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등단한 순문학 작가'로 보는 독자들도 있는데, 정유정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어찌 보면 듀나님하고 비슷한 경우인 거죠.
2015.07.14 17:21
2015.07.14 20:26
순수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설들 톤이 (특히 단편들 보면) 누가 썼든 거의 다 하나같이 일정해서 이거 무슨 입시학원에서 규칙 외우듯 달달 외워 쓰는 건가 싶을 때가 종종 있었던게 떠오르네요. (그렇다고 장르문학쪽은 톤이 다양하냐, 하면 그건 아니고 흔히 말하는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던가 요즘의 라이트노벨류도 다 엇비슷하긴 하지만... 그건 사실 쓰는 사람들이 누구 눈치를 보느라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상상력이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보거든요; 뭐 라이트노벨류의 경우엔 출판사 공모전에 뽑히고 싶어 뽑힌 작품들 답습하느라 그런 것도 있긴 하겠지만;;)
2015.07.14 20:53
2015.07.14 23:22
2015.07.15 11:26
으악, 이만 줄이지 말고 더 써주세요ㅠㅠ 댓글 잘 읽었습니다. 더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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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이 뭐라고...돈내면 책 내주고 시인이나 작가로 인정받는 장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순수하지 못한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문학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씨부렸사고, 시인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이 쓴다고 하고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은걸까요?
거짓되게 타이틀 받아서 뭐하겠다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