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혐오의 출발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부정, 비하라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면 일견 수긍도 갑니다.


현대사회의 사회화과정에서 평등(혹은 여기에서 파생된 여러가지)의 중요성을 배우고, 무엇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 같은 얘길하지만 그럼에도 혐오정서는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무의식적으로or의식적으로 "이건 잘못되었다"라고 얘기하는 혐오정서도 있지만, 반대로 괜히 스리슬쩍 중립적인척, 온건한척 발을 담그고 있는 것도 존재하죠.

이 주제와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얘기하지만 혐오의 태반은 후자가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뭘 내쫓거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억압을 가하자는 수준의 주장은 대부분 문명사회에선 기각되는 가치관들이니까요. 

직접 미국을 가본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외노자 혐오를 보면 외국에서 어떤 식으로 인종차별이 일어나는지 최소한의 실루엣은 짐작이 가거요 물론 그 크기나 디테일은 상당히 다르겠지만..


이건 아마 만만함의 문제가 부분적으로 존재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대상이 차지하고 있는 여라가지 의미에서의 위치같은 것들 말이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기에 대상을 비하하거나 부정하는 그릇된 주장을 펼쳐도 공감대를 형성해주는 사람들이 '다수'존재합니다.

다수의 억압, 암묵적인 동의는 일종에 거대한 권력을 형성합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의 혐오가 모여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는거죠.


어떤 회사는 전라도 사람이 뒤통수를 치고 배신을 일삼는다고 출신지역이 전라도인 사람을 채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평범한'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직접적으로 두들겨패지않는 이상 '그럴수도 있지'라고 치부하던 사람들도 있었죠. 

혐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항도 크게 합니다. '평범함'은 튼튼한 방패가 되죠. 다들 '혐오'가 나쁜것인줄 알기에 자신의 혐오에 혐오라는 이름이 붙으면 기겁을 합니다.


"나정도가 어째서 혐오인가?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생각이다"

  

 분명한 차별과 부정임에도 흔한 중립과 중용적 태도(정확히는 그러한 태도의 흉내)는 이런 거대담론에 대한 이의제기를 극단적인 가치관으로 치부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긴데 왜 공격적으로 나서냐, 그건 객관적이지 못하다...........같은 수식이 붙죠. 이 또한 혐오에 힘을 실어줍니다.


소수는 애초에 소수이고 거기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도 적기에 힘이 약하지요. 


그러다가 그 소수중 단 하나가 조금만 튀기라도 하면 그 '하나'는 어느사이 대표성을 띄게 되고 또다른 편견을 만들게 되죠. 

가령 저와 가까운 사람중 하나는 전라도 사람에 대한 혐오가 상당히 큰데, 그 이유가 군대에서 전라도 출신 고참에게 하도 맞아서 그런답니다. 

단 하나의 트라우마는 널리고 널린 전라도 혐오를 주워먹으며 성장하고, 또한 다른 전라도 혐오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는거죠. 

 

그래서 약자들에게 향해지는 혐오정서가 개선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것 같습니다. 그것을 개선시키기 위해 꺾어야할 세력이 너무 강하고,또 많아요.

굵직굵직한 정책현안이라면 이슈화시키겠지만, 일상에 녹아든 혐오는 그러기 어렵습니다. 혐오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혐오인지 인지하지 못하죠. 


저도 그렇지만 누구나 소수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거부감은 소수약자가 억압받는 사회에선 누구에게나 패시브니까요. 

허나 사회의 발전은 내 안에 내제된, 혹은 동류가 가지고 있는 혐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깨부수는 과정에서 이뤄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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