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심장 박동
너네 진지한 말도
너무 거대한 파도
날 이제 놔줘
다 가져 가 싸가지 없게
다 바가지 박아
목요일 밤엔 복을 받아
어반자카파
심장 박동 친자 판독해 (hey)
아빠 잠깐만
힙합 팔던 시장 바닥 (hey)
까무잡잡하지
으으으 하고 넘어졌다가
우우우 너가 너무 좋다
누가 음주 단속 똥줄 타

이 노래가 무슨 뜻이냐면, 아무도 모릅니다. 이 가사에 의미랄 게 없습니다. 심장박동이 느리다고 하면 뭔가 죽음에 가까워졌다거나 극도의 이완상태를 상상하게 되는데, 래원의 이 가사에는 그런 거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건 세대간의 문제도 아닙니다. 유튜브 댓글에서도 하나같이 의미불명의 가사라고 투덜대고 있습니다. 래원의 거의 모든 가사들은 다 이런 식입니다. 가사 전체를 잡고 있는 맥락의 뼈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라임을 맞추기 위한 낱말들의 짜깁기니까요. 오죽하면 놀라운 토요일 제작진들의 최종 병기라는 농담까지 있습니다.

 
(이건 팬이 만든 정교한 짜깁기 영상입니다. 래원 본인도 퍼갔다고 ㅋ)

놀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래원의 노래들은 정말로 아방가르드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질문에 되묻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가사는 의미가 없어, 근데 노래에 꼭 의미가 있어야 됨?' 이건 어쩌면 음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사람들이 팝송의 가사를 인지한 채로 들을까요. 안 그런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겁니다. 왜 그런 유머도 있었잖아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제목을 I will always love you라고 하면 모르지만 "앤 다이아~"라고 하면 바로 알아차리는 거. 노래의 가사가 의미전달을 해야한다는 건 의외로 실생활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믿음입니다. 가사의 의미를 몰라도 우리는 노래를 잘 즐길 수 있습니다. 
팝송의 경우 국적의 차이 때문에 언어를 이해하는데 생긴 한계를 우리가 자동적으로 보정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한국어로 된 노래는 한국인인 저희에게 다 명확하게 의미전달을 해야할까요. 그게 기본적인 전제였다면 한국어 가사를 맞추는 놀라운 토요일 같은 예능이 나오진 않았을 겁니다. 어떤 노래는 자국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안들립니다. 그렇지만 그 노래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전달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들리는 수많은 랩 가사들이나 영어가 섞인 가사들을 처음 들었을 때 정확히 아는 건 어려운 일이고 어떤 사람들은 안들리는 채로 감상합니다.
이걸 힙합의 랩이라는 장르에 접목해본다면 가사가 가진 의미전달의 기능은 훨씬 더 축소됩니다. 애초에 랩이라는 게 언어를 이용해 사람이 직접 박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라임이란 걸 생각해본다면 의미보다 오히려 박자의 전달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래원의 랩은 그 극도의 형식에 맞춰서 의미를 포기한 거죠. 그의 랩은 비트박스와 서사적 가사의 중간쯤에 위치해있습니다. 말은 말인데, 의미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파편화된 의미들이죠. 
어떤 사람들은 저런 게 랩이면 자기도 랩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그렇게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맥락의 노예거든요. 맥락을 만드는 것만큼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맥락에서 벗어나면 스스로 그걸 어색하다고 느낍니다. 라임을 강조하면서 아무 단어나 넣어서 랩을 만들고 그 어거지 안에서의 자연스러움을 만드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래원의 랩은 극단적으로 박자만 강조한 음악입니다. 박자를 위해 탈의미를 할 수 있는지, 수많은 랩퍼들이 래원만큼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플렉스와 자수성가의 싸구려 의미로 뒤범벅이 되어있는 국힙 랩들 사이에서 이렇게 "초탈한" 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래원의 랩은 이 무의미 속에서 재미있는 효과를 냅니다. 서로 연계되는 의미가 없는 단어들이, 오로지 박자를 위해서만 붙어있거나 쪼개집니다. 그래서 이 랩을 따라가면 의미 안에서는 길을 잃는데 리듬은 정신없이 쫓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랩이 변칙적으로 허우적댑니다. 스스로 무의미의 바다에 빠져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철퍽대는 것 같달까요. 그런데 그 안에서 래원만의 개성이 만들어지고 신선한 재미가 생기죠.


만약 아이돌들의 랩에서 이랬다면 그건 정말 괴상할 겁니다. 그러나 래원이 직접 쓰고 부르는 랩이라서, 이 랩은 유니크한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래원이 쓰는 랩만 그런 게 아니라, 래원이 랩을 부르는 스타일 자체가 계속 몸을 움직이고 흐느적거리기 때문입니다. 랩의 스타일이 랩퍼의 퍼포먼스 스타일과 일치하면서 이 노래는 "래원만이 이렇게 쓰고 부를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래원의 랩은 계속해서 "엇박"의 정의를 찾아내려는 하나의 실험일지도 모릅니다. 정박에서 살짝 튀어나가는 박자는 박자 자체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의미에서조차도 어긋나야 진정한 엇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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