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페이퍼와 나

2021.07.23 21:30

무무무 조회 수:785

저는 2017년 전후에 이드페이퍼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세술과 생존법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는 해당 사이트는 특유의 혜안과, 인터넷 공간에서 흔히 취할 수 없었던 정치적 입장에 대한 호기심으로 제 발길을 묶어 두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그 사이트에서 차단을 당했고, 그 소회를 간단하게 이 공간에 풀어 보고자 합니다.
박윤배 블로그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외에도, 듀게와 듀게 유저들에 대해 부적절한 관심을 가지는 부류가 한 때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게시판의 뒷담을 오랫동안 그들의 컨텐츠 중 하나로 삼아 온 사이트가 예전에 존재했었습니다. 저는 어느 분이 듀게에 그 링크를 직접적으로 올리셔서 그 사이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저 또한 그들의 안줏거리 중 하나였기에 그 사이트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이천년대 중후반이었습니다. 저는 속했던 공동체에서 퇴출당했고, 그것을 비관해 술을 아주 많이 마신 상태로 이 게시판에 여러 편의 글을 몇 일에 걸쳐 올렸습니다. 게시판 유저 중에 저에게 직접적으로 불편감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었을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게시판의 소란을 자세히 본 것은 아닙니다만, 그분이 결국 추방당했죠. 그걸 보니 그 때의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마 제가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글들을 오늘날 올렸더라면 저도 어김없이 추방이 되었겠지요. 

 '시큐리티'에 대한 감각과 열린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박윤배 블로그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당시 인터넷 여러 공간에는 듀게 유저들에 대한 심각한 뒷담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공간을 직접적으로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직접적인 싸움이나 강퇴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동시에 마음에 담은 말들을 풀어낼 공간들이 필요했었기에 그 사이트들도 유지될 수 있었겠지요.

 사람이 모이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갈등 또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것의 최선은 회피 혹은 서로간의 단절일 것입니다. 서로 불편한 모습을 보일 일이 없으니, 영원한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우리들의 사회는 분절되어 가고, 우리는 영원히 우리들 중 일부의 일면만을 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로 지칭되는 분들에 대한 걱정이 안 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중 굳이 약자를 꼽자면 직접적으로 공격적인 행위를 한 사람보다 아무래도 그 대상이 되신 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시큐리티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으로 이어질 때, 우리의 외연이 확장되기란 요원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게시판은 오래된 게시판입니다. 그간 많은 분들이 스쳐 지나가셨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결국 많은 분들이 이 공간을 떠나셨지요. 한때 존폐가 걱정될 정도로 서버가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예전에 좋은 글을 올리시던 대다수가 이탈하여 인터넷 공간의 변방이 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듀게는 듀게만의 고유성이 있기에, 이 공간이 너무 버려진 곳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게시판의 운영 방침과 유저들의 열린 마음도 한 몫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는 이 글을 쓴 목적인,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게시판에서 소란을 피웠던 그 날들은 제 삶의 어떤 분기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그 날들을 계기로 돈도 잃었고, 커리어도 단절되었으며, 세상을 보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신체의 기능이 떨어졌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타인보다 조금 더 저 자신을 챙기는 쪽으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듀게를 뒷담하던 그 사이트에 상주하게 되었고, 그 사이트에서도 차단을 여러 번 당하고, 듀게에서 잃었던 비슷한 액수의 금액도 잃게 되었지요. 동시에, 일간베스트 자게의 유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진심인지 위악일지 모를 '장애인 사이트'를 표방하는 그 공간에 섞여 들어가면서 우선 마음이 너무 편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고, 기능이 떨어져 버린 저 또한 결국 그들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운명 속에서, 저는 그저 새 집이 생겨 행복했습니다. 제가 아 하면 어 라고 반응해주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이제 사람들을 위한 사상은 좌쪽이라기보다 우쪽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안겨 주는 것은 좀 더 많은 임대 아파트를 짓는 것이라기보다 갭투자에 대한 규제를 풀거나 활발한 재개발을 통한 시세차익을 벌어 주는 정책이 더 가까워진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언제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혹은 '옳은' 정책들은 더 많이 가지고 더 여유가 있어 깊이 생각할 에너지를 가진 자들의 몫이었어요. 그들이 일반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갈 때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는 사실, 그들과 사람들의 서로 가진 (정신적)자원의 양이 다른 것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람은 굶으면 아귀다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분절화되어 진행되는 사회의 한 파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한때는 이상화했던 이 공간이, 너무 변질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끔, 아주 가끔 들러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게요. 우리가 너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것을 확신이라도 할 수 있게요. 일베 성향의 유저들을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인 이드페이퍼도 최근에 많은 변화를 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중 입소문으로라도 여기에 대해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이트가 확장되면서 그 특유의 색이 흐려졌고, 더 이상은 과거에 제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사이트라고 보기에 어렵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특별하고 고유하다기보다 인터넷 공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북적거리는 사이트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그 의사를 표시하고 나서 받은 결과는 차단이며, 그러자 자동적으로 이 게시판과 여기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 후일담도 적을 겸 겸사겸사 근황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분들로부터 직간접적인 도움을 얻었어요. 너무 많은 양의 글을 다 읽을 수 없어 95%정도의 반응과 도움에 응할 수 없었던 것이 여전히 아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때 저를 붙잡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때의 저를 모르는 다른 분들도 잘 살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 공간이 아직 유지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제가 글을 적을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글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업로드 하고 조금씩 이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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