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2 02:38
- 에피소드 갯수는 아홉개네요. 편당 50분쯤 되는데 마지막 에피소드는 좀 짧구요. 스포일러는 안 적겠습니다.
(가운데 적혀 있는 걸 보면 공식 포스터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걍 캐릭터들 골고루 골라 넣은 게 맘에 들어서 이걸로.)
- 1970년. '레드우드'라는 어린이 캠핑장의 교관 숙소에 피바람이 붑니다. 순식간에 아홉명이 난도질 당해 죽었어요.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직원 하나가 범인으로 잡혀가 정신병원에 갇히죠. 그 양반은 이 사건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급기야 '미스터 징글'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14년이 흐른 1984년. 얌전하고 내향적이며 순수하고 착실한 엠마 로버츠(라니!!!!!!)는 에어로빅 교실에서 만나 갓 알게 된 무리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때마침 그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나이트 스토커'라는 살인마의 표적이 되어 공포에 떨다가... 에어로빅 친구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14년만에 재개장하는 레드우드 캠핑장에 임시 교관일을 하러 갑니다. 이만큼 멀리 떠나서 한참 있다 돌아오면 살인마도 잡히든가 나를 잊든가 하겠지... 라는 마음이었던 거죠.
그리고 이야기는 순리대로 흘러서 미스터 징글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정신병원을 탈출하고. 심지어 그 나이트 스토커놈 마저 표적의 행방을 어떻게 알고 먼 길을 달려 캠핑장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의 얌전하고 내향적이며 순수하고 착실한 엠마 로버츠의 운명은!!!!?
-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라는 시리즈는 좀 특이하죠. 일단 확고한 자기 개성이 있습니다. 매 시즌마다 아예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 시즌의 배우들을 다시 기용한다든가. 제목이 '호러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호러 측면에선 그리 호평할만한 구석이 없는 가운데 강력한 막장 스토리로 승부한다든가. 작가놈들이 시청자들이 내용을 예측할까봐 부들부들 떠는 편집증 환자라도 되는 듯이 엄청나게 빠른 페이스로 국면 전환을 마구마구 밀어 넣는다든가. 사람을 죽일 때 괴이할 정도로 높은 빈도로 날붙이로 목을 긋는 장면을 선호한다든가. 매번 여자 캐릭터들을 미칠 듯한 개고생에 밀어 넣으면서도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하는데 힘을 쏟는다든가... 등등등.
이번 시즌에도 그런 부분들은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80년대 슬래셔 무비에 대한 오마주 시즌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말 그런 내용은 전반부에만 해당되다 말구요. 그나마도 창의적이거나 깊이(?)있다 싶은 슬래셔 장면들은 거의 없어요. 주요 등장 인물들 중 과반이 사연 많은 캐릭터로 자꾸만 반전을 일으키며 이야기를 산꼭대기를 넘어 우주로 날려 버리구요. 그렇게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다가 시즌 중반을 넘기면 초반과는 다른 장르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순식간에, 연달아 달리고 또 달려서 어느새 끝을 보게 됩니다. 제가 아는 미국 드라마들 중 가장 완벽한 '불량식품'이에요.
- 그런데 이번 시즌은 나름 제작진이 이 시리즈에 변화를 주고자 시도한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일단 반복되는 캐스팅... 자체는 그대로지만 물갈이가 크게 있었어요. 간단히 말해 사라 폴슨과 에반 피터스가 코빼기도 비치지 않습니다. 주역들 중 기존 출연자들은 엠마 로버츠를 제외하면 이 시리즈에 탑승한지 비교적 얼마 안 된 배우들이구요. 후반부에 레귤러 멤버 둘이 나오긴 하지만 비중은 특별 출연 수준.
그리고 유머가 강해졌습니다. 원래 이 시리즈의 제작자 라이언 머피가 좀 코믹한 작품들을 잘 만드는 편이긴 하지만 이 시리즈에선 안 그랬거든요. 근데 이 시즌엔 자꾸만 유머가 튀어나와요. 개인적으론 맘에 들었습니다. 지난 시즌들을 보다 보면 하도 정색하고 미칠 듯이 목을 그어대서 중간 좀 넘기면 지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시즌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덜 지치고 금방 끝낼 수 있었던 게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애시당초 막장 전개와 유머는 잘 어울리는 짝이잖아요.
마지막으로 뭐랄까... 이전 시즌들에 비해 등장 인물들에 대한 대우가 좀 좋아졌습니다. 여전히 가차 없이 죽어나가긴 하지만 이전 시즌들처럼 그렇게 허망하고 무자비한 느낌은 안 들어요. 스포일러라서 더 이상 설명은 못 하지만 암튼 그렇구요. 그것도 저는 맘에 드는 부분이었네요.
- 또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80년대 추억팔이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
한국도 아니고 남의 나라 80년대이다 보니 뭐 그게 제겐 그렇게 잘 먹히진 않았어요. 그래서 '80년대를 잊지 말아요~' 라는 식의 엔딩도 딱히 와닿진 않았습니다만. 미국 사람이거나 80년대 미국 대중 문화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저보다 더 재밌게 보실 수도 있겠다 싶었네요.
- 종합하자면, 상대적으로 좀 웃기고 순한 맛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입니다. 원래 특색은 거의 유지하고 있으니 기존 팬분들이면 무난히 보실 것이고.
거기에다가 저랑 취향이 비슷한 분들이라면 전체 시즌들 중에서 대략 상위권에 올려 놓으실 수도 있을 거에요. 물론 정반대일 수도 있겠고.
저는 잘 봤습니다. 시리즈의 변화 방향도 취향에 맞았거니와... 전 엠마 로버츠를 좋아하는데 이 분이 처음으로 이 시리즈 원탑 주인공이셔서. ㅋㅋㅋㅋㅋ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이 시리즈를 안 보신 분들이 이걸로 입문 하신다면 아마 좀 욕이 나오는 체험을 하면서 '재밌게 봤다'는 글을 적은 저에게 앙심을 품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는데 이 시리즈는 애초에 불량식품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 맛에 길들여진 가련한 호구 한 마리라는 걸 기억하시길. 핫핫하...;
+ 언제나 그렇듯 중간에 노골적으로 페미니즘적인 대사가 튀어나옵니다. 근데 이번엔 그게 내용과 잘 맞아떨어져서 괜찮았어요. 대략 이런 거였죠
"찌질한 남자놈들이 만만한 여자들 수십명을 죽이면 감옥에 갇히고도 팬이 생겨서 러브레터를 보내대고 난리를 치잖아. 그리고 사람들은 늘 그 찌질이의 엄마, 아내, 애인을 비난하지. 왜 늘 여자한테만 난리야?"
++ 언제나 그렇듯 메인 남자 빌런은 똥폼 잡고 다니지만 실상은 찌질이... 인데요.
그래도 이번 시즌 빌런은 좀 괜찮았습니다. 그 찌질함과 똥폼이 대체로 유머로 승화되어 거부감을 줄여주거든요. 그리고 배우도 잘 뽑았어요. 잘 생겼는데 그런 역에 또 잘 어울려요. 실제 미국의 연쇄 살인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데 사진을 보니 실물이랑도 닮았더군요. ㄷㄷㄷ
+++ 에피소드마다 제목이 있는데 그 중 어떤 에피소드 제목이 '100화'에요. 뭔 소린가 했더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전 시즌 통산 100번째 에피소드였다고 하네요. 뭡니까 이게. ㅋㅋㅋㅋㅋ
++++ 엠마 로버츠 좋아요.
이 분은 원래 '이 구역의 미친 x' 역할을 맡아줘야 제맛이긴 한데. 첨으로 한 시즌의 단독 주연으로 나오는데 하필이면 격한 캐릭터 변신(?)을 해서 아쉬웠지만. 뭐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전 이 분 때문에 '너브' 같은 한심한 영화도 끝까지 본 사람이니 뭐... ㅋㅋㅋㅋ
+++++ 무척 좋게 본 저의 소감과는 달리 이 시즌은 본토에서 상당히 확실하게 망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시즌 10은 캔슬될 위기에 처했다가 어찌저찌 살아나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그 시청률 하락 때문에 원조 레귤러 배우들을 다시 불러 모았대요. 말인즉 에반 피터스가 다시 나온다는 겁니다. ㅋㅋ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엠마 로버츠는 아예 빠져버린 듯. 헐리웃 가십에 관심 있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둘 사이에 워낙 심대한 문제가 있어서 말이죠.
그리고 그 시즌 10은 원래 올해 나왔어야 했지만 코로나 크리로 내년 하반기에나 공개 가능할 것 같대요. 그럼 또 이 시리즈의 전통상 먼저 미국 FX 채널에서 방영할 것이고, 넷플릭스엔 그 후 1년은 지나야 올라올 테니 저는 2022년에나 볼 수 있는 걸로. ㅠㅜ
++++++ 빌리 아이돌은 과연 이 시즌을 즐겁게 봤을지 궁금하더군요. 정말 미칠 듯이, 지겹도록 언급되는데 그 팬덤 대장(?)이 찌질한 빌런이라서. 그리고 한국에선 그리 유명하지 않은 실존 밴드 하나가 또 등장하는데 여러모로 아주 격하게 험한 꼴과 취급을 당합니다. 허락은 받고 쓴 거겠죠 설마. ㅋㅋㅋ
...이번엔 유난이 본문보다 덤이 길어지는데. ㅋㅋ 스키너 부국장님이 잠깐 나오십니다. 정말 잠깐 나오고 별 역은 아닌데 그래도 시작할 때 이름은 적어주더라구요.
2020.12.02 11:28
2020.12.02 15:54
근데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연구(?)와 호기심 같은 것이 극에 달했던 게 80~90년대라 그때 정립된 공식이 아직까지 영향력이 커요.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양반들 얘길 할 때면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은 학대, 자라면서 접한 여성들에게 당한 냉대 같은 걸 중요한 원인으로 이야기하곤 하니까요. 심지어 이 드라마 내용상으로도 엄마에게 학대당하고 자라서 맛이 간 캐릭터가 하나 나오죠. 이후 전개가 흔한 공식대로 흘러가진 않습니다만. ㅋㅋ
2020.12.02 14:50
온니 캐스팅때문에만 시리즈가 망했다는 게 믿기 어렵군요. 좋았던 80년대를 찬양하지만 뭔가 미쿡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스토리라인이 있었던 건 아닌지? 유우머가 툭툭 튀어나온다니 이 부분 기대가 됩니다. 이 시리즈의 유머가 저랑 꽤 잘 맞는 편이어서요. 시즌8 아포칼립스가 재밌어서 두 번 봤어요. 적 그리스도 관련 농담들이 유치하지만 재밌었거든요. 오멘을 보고 학습했다든가 뭐 그런거요. 여기에 더해서 코디 펀이 넘 매력적으로 나왔는지라. 젠더리스하면서도 순진무구 악당이 넘 귀여웠네요! 암튼 유머!!! 이거 보고 달릴게요 ㅋ
2020.12.02 16:05
캐스팅 때문에 망했다... 라기 보단 변화를 줬다가 망했으니 최대한 이전의 모양새를 다시 갖추자. 라는 일종의 원기옥 모으기 캐스팅일 것 같아요. 시즌 10이 망하면 시리즈가 그대로 종결될 위기이니 가능한한 리즈 시절 멤버를 다시 모으고 싶었겠죠. 혹시나 진짜로 종결되어도 정든 멤버들로 고별 인사할 수도 있겠구요. ㅋㅋ
글쎄요 뭐 망한 이유는 이제 사람들이 질릴 때도 한참 지나기도 했고. 또 제 짐작엔 후반부 전개가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건 뭐 거의 '응답하라 1984' 수준이어서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지나가던 제 가족분께서 얼핏 보시고도 '으악 오골거려!!'라고. ㅋㅋㅋㅋ
암튼 뭐, 이왕 보시는 거 즐겁게 보시길 기원합니다. ㅋㅋ
2020.12.02 14:53
케이시 앤소니처럼 자기가 낳은 딸 죽이고 아버지와 파묻고 감옥에서 남자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싶다는 팬레터받는 여자 살인범, 남편과 공모해 자기 친여동생 비롯한 여자들 강간,살해하고 나와서 카리브 해에서 재혼해 애 낳고 잘 사는 여자도 있습니다, 남편이 주도하고 여자가 어쩔 수 없이 따른 줄 알았는데 이를 뒤집는 비디오 증거가 나와 반대로 여자가 주도했음이 드러났죠. 그리고 여자 가족들은 여자를 옹호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에도 영화와 드라마가 나왔죠. 칼라 호몰카 이야기이고 영화는 리처드 기어,클레어 데인즈,에이브릴 라빈 나온 the flock, 로라 프레폰과 미샤 콜린스 나온 캐나다 드라마도 있죠.캐나다 사건이었거든요.
2020.12.02 16:10
네 그런 경우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비율의 문제겠죠. 아시다시피 연쇄 살인범들은 절대 다수가 남자이고 레전드 반열에 오른 인기(?) 살인자들도 다 남자들이다 보니. ㅋㅋ
뻘소리지만 이런 류의 사건들 중에서 제 인상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건 미국이 아닌 일본산 사건입니다. 키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해 사건이요. 미국의 연쇄 살인들이 대체로 뭔가 그냥 물리력 위주의 흉악한 폭력 범죄라는 느낌이라면 이 쪽은 좀 사람들의 정신 세계와 관련된 사건이라 훨씬 으스스하고 기분 나쁘더라구요.
2020.12.02 19:02
2020.12.02 23:02
뭐 일단 아주 단순한 얘기로 비슷하게 꿈도 희망도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도 사람마다 결과가 다르니까요.
타고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할만 한 것 같습니다.
2020.12.02 21:10
재밌어보여요. 80년대 레트로의 써커입니다 또 제가. 엠마하고 에반은 그렇게 죽고 못살더니.. 이제 죽어도 같이 못사는 사이가 되어버린 모양군요. ㅎㅎ
2020.12.02 23:08
레트로 좋아하신다면 좋아하실만한 포인트가 여기저기 많긴 합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빌리 아이돌 찬양과 함께... ㅋㅋ
근데 검색해보니 다음 시즌에 엠마 로버츠가 아예 안 나오는 게 에반 피터스 때문은 아닌 것 같네요. 새 남자 친구와 열렬히 사랑한 결과 현재 만삭이라고 해요. 본인이 sns에 사진 올리고 줄리아 로버츠가 댓글도 달아줬다고. ㅋㅋ
생각해보면 시즌 8에서 에반 피터스랑 동반 출연하긴 했어요. 둘이 한 화면에 잡힌 게 그 많은 에피소드들 중에 딱 한 순간 뿐이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