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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떻게 의롭다고 여김을 받느냐? 라는 질문이 한 이틀 이어져서 저도 여기 하나 보태 보려고 합니다. 제가 갖고 있던 자료 중에 유대교 전통 부터 시작해서 중세와 개신교


회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정리해놓은 문건이 있었고 그 문건의 저자의 동의아래 이것을 정리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신,구교를 막론하고 '칭의,의화'의 출발점은 바울의 로마서 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 사람은 산다'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 이후에는 '은총'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라고 합니다. 당시 바울이 살던 시절에는 유럽 지성계를 통일한 그리스 철학과 이스라엘에서 뿌리깊게 존재하던 유대교의 관


념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기독교 사유를 형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의'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출발했는가가 먼저 학자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


은 유대인이지만 그는 그리스에서 살았고 그래서 그의 사유에는 그리스와 이스라엘 전통이 혼재되어있기에 그것을 분류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유


대교 랍비인 마르틴 부버는 바울은 그리스적인 사유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밀림의 성자'로 우리에게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는 '유대교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분리를 시도한 토플라이프 보만은 마르틴 부버 관점에서 볼때 순수한 히브리적 사유는 아니라고 보았고 안더스 니그렌은 '플라톤적인 사유세계에 기대


어 있으면서 이스라엘 적이고 비그리스적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 말에 손을 들어줘야 할까요? 바울 연구자인 귄터 보른캄은 그의 책 '바울'에서 '그리


스적 기본 덕과 라틴적 정의에 기반했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유대교적인 유산을 청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적 의를 공유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상당


히 복잡한 기반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유대교적인 의 개념에 그리스, 로마의 유산을 결합시켜서 자신의 의에 대한 관점을 정립했고 이후 그는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구원관을 설파 합니다. 당시 신구약 중간기에 보편적인 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사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것은 “계약에 대한 즉 요구하는 용사에 대한 


충성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고 또 그것은 심판과도 관계가 있으며 종말적 투쟁에 있어서 끝내 수행되야 할 것” 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에 바울은 묵시론


적인 요소를 더합니다. 묵시문학이라고 하면 이해 못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 쉽게 예를 들자면 '요한 계시록'을 예로 드시면 됩니다. 심판이 오면 의인과 악인이 나뉘어 지고 의


인은 천국으로 악인은 지옥으로 가서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형벌을 받는 다는 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결국 심판과 종말로 지금 세계 질서가 무너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사


상은 기원전 100년 경부터 기원후 300년까지 흥했으며 이에 대한 온갖 문서가 유대교 기독교 권에서 흥합니다. 이런 자취는 복음서에도 조금씩 보이는데 마태복음에서 동방박사


(라고 쓰고 점성술사로 읽는)가 별을 쫓아서 헤롯한테 왔다가 헛다리 짚고 아기 예수가 태어난 말구유에 와서 절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당시 묵시문학에서 떠돌던 '세


계의 왕이 태어나면 온 세계가 그에게 문안을 한다'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열 받아서 유아 학살령을 내렸는지도 모르죠). 아무튼 바울은 현재의 시대가 죄악의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죄의 시대가 유지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의)'를 받기 위한 전제로서 죄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의 칭의는 완성단계에 들어갑니


다. 바울 서신을 보다 보면 죄와 유사한 의미로 '율법의 행위'를 듭니다. 그의 서신에서 나오는 율법의 행위라는 말은 '성전, 제사장직, 희생제사, 정결례' 등을 의미했으며 바울


이 활동할 당시에도 꽤나 권위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단어의 권위를 바울은 깡그리 부정합니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를 올바로 믿는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율법의 권위는 바울에 의해 권위와 영향력이 완벽하게 거세되버리고 구시대의 지양해야 할 유물이 되버


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바울은 '믿음'을 올려놓습니다. 이 믿음은 중세로 넘어가면서 신학적 논쟁의 떡밥이 됩니다.


신구교의 신학은 두 명의 위대한 신학자에 의해 구성됩니다. 가톨릭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개신교는 아우구스티누스 (aka 어거스틴)에 의해서 입니다. 좀더 깊게 가자면 가


톨릭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출발하며 그것으로 신학을 재구성한 토마스 아퀴나스. 개신교회는 플라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 그 뒤를 이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맥


락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거대한 주석'이란 소리가 나올 법도 한 거죠.


어쨋건 중세시대에서 인간의 구원 칭의 (의화)에 대한 중요한 고비 가운데 하나는 펠라기우스 논쟁입니다. 펠라기우스 논쟁이란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디까지 인가?'라는 것인


데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완벽하게 독립적'이라고 주장하며 그 대척점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선악과를 먹으면서 박탈됐으며 이후 신에 의해 회복


됐지만 그것은 신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펠라기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책 '자유의지론'에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으며


그는 원죄에 의해 자유의지를 빼앗겼으나 은총에 의해 치료되고 칭의에 의해 완전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인간이 칭의의 과정은 율법적인 행동이 아닌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 신,구교의 공통점입니다. 이 '율법적인 행동'은 이후 수면 아래 있다가 15세기 다시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이 들고 나와서 (말 그대로 갑툭튀) 가톨릭 교회의 성사를 '율법적 행동'으로 밀어내고 자신들의 신학을 복음으로 위치하면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제 칭의는 신구교가 '믿음'을 유일한 매개로 보면서 일치를 봅니다. 그리고 그 것에 대해 교리적인 체계 차이가 나오게 됩니다. 믿음에 의한 자발적 행위 (개신교)를 루터가 주


장하며 그의 관점에서 보니 가톨릭은 행위를 통한 믿음 (가톨릭) 뭐 이렇게 나눠지게 된다고 개신교인은 주장합니다. 그거야 루터가 책 쓸때 이야기겠고.. 어쨋건 루터의 논문으


로 가톨릭 교회 역시 자기 방어를 위해 칭의론을 손보게 되고 그래서 칭의 자체가 지금 처럼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칭의는 신구교 공통으로 신의 전적인 권한입니다. 가톨릭을 완벽하게 행위만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이것입니다. 행위만으로 얻는다면 인간의 의지는


완벽하게 인간의 것이어야 하고 그렇다면 이단인 펠라기우스의 의견에 동의해야 하기때문에 칼로 무자르듯 잘라내기 힘듭니다. 어쩌면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는 99% 짜리 카


카오 초콜렛이 맛있냐 98% 짜리가 맛있냐의 지루한 싸움일 수 있습니다. 남들이 봤을때 둘이 똑같은데 그 함량을 놓고 싸우듯이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는 그들의 내면을 파고


들면 들수록 큰 차이 없이 약간의 차이 (성인의 중보, 사제의 권한, 연옥의 유무)를 놓고 다를 뿐입니다. 



몇 해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가톨릭 대백과사전을 보게 됐습니다. 거기서 이런 저런 항목을 뒤지다가 '믿음'이란 항목에 눈에 갔는데 거기서 편찬자들은 조롱반 공격반의 심정


으로 루터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는 전제를 공격하는 글을 읽게 됐습니다. 그때 기억에 남는 것은 '왜 그럼 바울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왜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냐


그럼 믿음이 먼저라고 하지'라는 부분에선 참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이 글이 잘 읽히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선 이 글에서 되도록 가톨릭에 대해 근거없는 비하를 하지 않고 공정하


게 쓰려고 했는데 제 생각이 얼마나 충실히 반영 됐나 모르겠습니다. 



P.S - 가끔 잘못된 근본주의적인 교리교육을 받은 분들이 천주교인들에게 '마리아의 종교' '이단' '사탄숭배자'이런 소리 하는 것을 보고 듣곤 합니다. 그런 사례를 듣거나 보거


나 할때 그건 초등학교때 쯤 졸업해야 할 일인데 아직도 초등학생만도 못한 신앙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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