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과 성범죄에 대한 짧은 고찰

2013.03.26 18:37

고구미 조회 수:3017

일단 저는 남자고 군대는 의경으로 복무했습니다. 방범 순찰대였기 때문에 주 업무는 경찰서 관내를 돌면서 '내가 경찰이다' 뽐내는 일이었죠. 물론 시위 진압도 무지하게 나갔습니다. 장애인 휠체어에 치어 보기도 하고 덤프트럭 운전수가 던진 똥에 맞아 보기도 했어요. 많은 분들이 공권력의 개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런 의경 출신입니다. 어쨌든 방범 순찰대의 주 임무는 방범과 순찰이기에 시위가 없는 날에는 주, 야, 심야에 나눠 바깥을 돌았습니다. 


많은 일을 겪었는데, 일단 주제와 연관 지어 한 가지 특이한 경험을 소개하려고요.  




제목 :  벌건 대낮에 터지는 플래시



사람 많기로 소문난 서울의 그 거리. 수많은 패션 피플들이 줄을 서서 거리를 걷습니다. 젊은 의경들에겐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죠. 지레 겁 먹은 노점상 주인이 대가 없이 음식을 나눠주기도 합니다. 맛있게 냠냠. 


그 때, 한 커플이 웬 중년 남성과 시비가 붙어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남자친구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중년 남성의 팔을 꽉 잡고 있네요. 붙잡힌 팔에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가 하나 있습니다. 여자는 팔짱을 끼고 매우 격양된 얼굴로 소리를 치고 있어요. 분쟁이 있는 곳에 민중의 지팡이는 출동합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여자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습니다.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가자 남자친구가 당황하며 여자를 일으키네요. 남자친구가 말합니다. 저 새끼 카메라 좀 확인해달라고. 그러자 중년남자가 말합니다. 무슨 새끼? 너 몇 살 처먹고 반말이야! 이쯤 되면 거리 한복판에서 끝날 문제는 아니네요. 민중의 지팡이는 당사자들을 이끌고 지구대로 향합니다. 걸으면서, 대충 감은 잡았지만 무슨 일이었는지 남자친구에게 물어봅니다. 걷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친구 뒤에서 뭔가가 펑 터지더라네요. 순간 돌아보니 웬 아저씨가 손을 빼며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답니다. 대뜸 눈치 챈 남자친구가 중년 남성을 붙잡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거죠. 


지구대에 도착하자 셋은 또다시 다투기 시작합니다. 말이 뭐가 필요합니까. 카메라만 확인하면 되는데. 셋을 제외한 모든 지팡이들이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연세 지긋한 지팡이 한 분이 카메라를 좀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중년 남성이 거부합니다. 다른 지팡이들까지 합세해 카메라를 달라고 얘기합니다. 중년 남자가 갑자기 카메라를 던지려는 듯 어깨를 높이듭니다. 원래 이런 건 의경들이 막는 겁니다. 네, 제가 막았어요. 그러자 지팡이들이 달려들어 손가락 하나씩 분담해 결국 카메라를 빼았습니다. 


카메라에는 수 백 장에 이르는 (어쩌면 수 천 장) 사진들이 보관 중이었어요. 놀랍게도 그 사진들은 죄다 여성의 치마 속을 담은 사진입니다. 한 장씩 넘기던 지팡이들이 기가 차다는 듯 허허 웃네요. 그 자리에 있던 유일한 여자는 바로 그 피해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는 그 여자의 표정은 마치 자신의 손가락 열 마디가 거대한 바퀴벌레라도 된 듯했습니다. 


중년 남자는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제발 이 사실을 아내와 딸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심지어 울었어요. 그런데 정말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에요. 멀쩡하다는 기준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한 달에 한 번 이발도 하고, 매일 면도도 하고, 백화점에서 산 옷들을 잘 세탁해서 입으며, 광은 없지만 먼지 없는 구두를 신은, 그야말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었어요. 그런 사람이 우리를 향해 절을 하며 선처를 구합니다. 누가 보면 내 딸 대신 나를 잡아가세요 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 여자 팬티 사진이나 찍는 주제에. 


선처는 없었습니다. 피해자가 합의를 완강하게 거부했거든요. 무조건 처벌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뒷 일이야 알 수 없으나 아마 가족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딸아이랑 눈도 못 마주치는 아버지가 되지 않았을까요? 


네, 실화에요. '세상에 이런 일이 급'의 희귀한 변태였을까요? 아닙니다. 여성들의 노출이 많아지면서 이런 류의 변태 행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합니다. 사실 무식하게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았어도 넘어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실제로 그 인간 카메라에 담긴 수 백 장의 사진은 그 수만큼의 피해자를 의미하는 거고, 그 만큼의 피해가자 발생할 동안 붙잡히지 않았다는 것도 의미하니까요. P2P 사이트와, 성인 사이트에는 그런 식으로 찍어낸 여성들의 도촬 사진이 넘쳐납니다. 각도 내기가 좋은 지하철은 그야말로 속옷파라치들의 온실입니다. 이러다가 속옷 회사에서 통계 자료로 갖다 쓸 지경이에요. 


성범죄라는 게 흔히 으슥한 골목에서 벌어지는 '성폭행'만 이라면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가 이 정도가 뭐 어때서? 하고 넘긴다면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누군가 내 속옷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 않습니까? 게다가 국가 기관에서 처벌하고 상호 합의가 필요한 엄연한 범죄입니다. 


이 일은 누구에게서 일어날까요? 바지 아래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그 인간이야 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희귀 변태죠. 일반적인 변태들은 치마 속을 찍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긴치마가 아니라 짧은 치마를 선호합니다. 그늘이 덜져 더 선명하게 찍힐 테니까요. 물론 그에 앞서 짧은 치마에 더욱 충동을 느낄 겁니다. 


은꼴사니, 대꼴사니 이런 은어가 퍼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주로 짧은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과,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길거리 여성들의 도촬 사진이죠. 이 경우 주 타겟은 수수한 옷차림에 힘 없이 축 늘어진 여성이 아닙니다. 자신감이 넘치든 말든 몸매가 좋고 노출이 많은 여성입니다. 


성충동은 막 말로 나와 아무 상관없는 저 여인과 살을 섞고 싶다는 충동입니다. 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품는 망상이지요. 여자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에겐 성욕이 있으니 큰 차이가 있진 않겠죠. 그런데 이런 성충동이 노출과 연관이 있다는 겁니다. 성범죄는 성충동에서 이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충동을 잘 억제하며 살지만, 그렇지 못한 변태들은 갖가지 형태로 표출을 하죠. 그게 성폭행이라는 극악범이 됐든, 대중 교통 성추행이 됐든, 도촬이 됐든, 불법 성매매가 됐든 말이에요. 


그런 범죄를 일으키는 건 당연히 남자들의 무조건 적인 잘못입니다. 그 잘못을 여자의 옷차림으로 떠넘기는 인간은 말종이죠. 입을 잘라버려도 시원찮아요. 배고픈 사람들 중 절대 다수가 빵을 훔치지 않지만, 극소수는 빵을 훔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식욕 때문입니다. 식욕 때문에 빵을 훔쳤다고 그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 성욕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예 연관이 없으니 당당히 노출하자, 라는 건 맞는 걸까요? 수수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오히려 성범죄를 당한다고 얘기하는 건, 수수한 옷차림을 한 여자에게 노출을 권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수수한 옷차림을 한 여자에게 성충동을 느끼는 남자들이 훨씬 적은 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냥 서로서로 조심하면 되는 겁니다. 


아 그리고, 성범죄 중 성폭행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어요. 성폭행의 요지는 상대적으로 힘이 더 센 이성이 상대적으로 힘이 더 약한 이성을 성적으로 폭행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여기에는 힘의 논리가 들어갑니다. 그럼 당연히 힘없고 축처진 사람이 주 타겟이 되는 거지요. 힘의 차이가 크면 클 수록 목표 달성이 더 쉬우니까요. 이를 노출과 연관시키는 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힘없고 축 처진 날은 화장도 하기 귀찮고 옷도 신경 쓰기 싫으니 수수한 차림이 되는 거겠죠. 수수한 차림을 했기 때문에 힘도 없고 축처지는 건 아닙니다. 앞서 얘기했든 수수한 차림을 하는 여성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당하고 힘있게, 내가 너보다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뽐내는 건 좋은 일입니다. 성폭행범을 예방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죠. 허나 여기서 드러난 통계로 노출과 성범죄는 연관이 없다고 귀결하는 건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합니다. 저는 항상 뭔가 쓰면 길어지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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