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기에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글(http://www.djuna.kr/xe/board/12861717)을 올렸었는데요.

이 글은 아버지와 8년간 같이 살았던 집을 떠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정리한 글이에요. 


(이 글은 처음 쓰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오늘에서야 완성했다. 이 글을 쓰는 것이 미뤄진 건 이 공간과의 심리적인 이별을 늦추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쓸 수밖에 없었고 반드시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이 공간과 비로소 작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6년 11월 13일에 이사를 했다. 결국 아버지와 함께 8년간 살았던 정든 집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새로 이사를 가게 된 오피스텔에 입주 날짜가 아직 안 된 상태였고 내가 살던 집에 새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오는 날짜는 15일이었기에 나에게는 15일 오전까지 이 집에 있을 시간이 추가로 주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굳이 텅 빈 집에 이틀 동안 불편한 상태로 남아있으려고 하지 않았을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도저히 이 집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정든 집을 떠나게 된 한 사람의 광기의 기록이라고 할 만하다. 나도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이사짐이 다 옮겨진 시점에서 텅빈 공간에서 이틀간 머무를 수 있는 상황이란 자주 생기는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게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2016년 11월 13일 오전부터 시작된 이사는 오후 1시경에 마무리되었고 이사짐들은 일단 임시적으로 창고로 보내졌다. 이사짐 센터 사람들도 떠나고 누나도 떠나고 나 혼자 빈 집에 남게 되었다. 이때부터 15일까지 정든 집에 대한 나의 가슴 앓이가 시작된다. 텅 빈 집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몸의 일부분이 뻥 뚫린 것 같았고 식욕도 사라졌다.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 동안 뭔가 의미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도무지 무슨 행동을 어떻게 해야 될 지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너무 괴롭기만 했다. 그러다가 거의 감정적 패닉 상태에 빠졌다. 몸은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도 이성적으로는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상태에 빠진 건지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기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논리적으로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외할머니를 부모님보다 더 사랑했었고 부모님 두 분 중에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했었다. 말하자면 돌아가신 세 분 중에 아버지와의 친밀도가 가장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금곡동 청솔마을 동아 아파트에서 지금 이 곳, 서현동 시범단지 현대 아파트로 이사를 올 때에도 이사 전에 살던 공간을 떠나는 것이 이렇게 힘들지 않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고통의 이유에 관한 한 가지 단서가 있다면 그것은 35년 이상 가로막혀 있었던 아버지와 나 사이의 벽이 기적적으로 무너져서 화해했던 공간이라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외의 이유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자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밖에 내놓은 가구와 냉장고 등의 물건을 잘 수거해가는지 보고 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좀 멍한 상태로 일단 이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가서 아저씨가 짐을 싸서 물건들을 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도 역시 그냥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짐을 싸는 과정을 사진으로 몇 장 찍다가 그걸로도 만족을 하지 못 해서 급기야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용량 부족으로 인해 짐을 싣고 떠나는 트럭의 뒷 모습을 촬영하는 도중에 영상이 끊기고 말았다. 내가 생각한 만큼 트럭이 내 시야로부터 멀리 사라지는 모습이 오래 찍혀있지 않게 된 것이 너무 속상해서 중간에 끊긴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날따라 미리 충분한 용량을 확보해놓지 않았던 게 너무 후회가 되어서 얼마간 미치는 줄 알았다. 화면 속에서 나와 함께 했던 물건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는 게 뭐가 그리 아쉬웠던 걸까. 집으로 들어왔는 데에도 여전히 아쉬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면 될까 고민하게 되었다. 빈 공간이라도 집 안 곳곳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촬영할 준비를 하기 위해 캠코더를 충전하다가 괴로운 마음에 정신적인 에너지의 소모가 컸던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14일 아침이 되어서 잠에서 깨어났는데 잠도 자지 않고 집 안에서 뭔가 하고 싶었던 나는 잠을 잔 게 후회가 되었다. 원래 계획은 14일 저녁에는 이 집을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을 잔 게 속상하기도 했고 도무지 그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이 공간에 머물러있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이 공간에서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나가야 성이 찰 것 같았고 그래야지 나중에 그것 때문에 후회하면서 괴로워할 것 같지 않았다. 누나에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자를 보내서 내일 오전까지 여기에 있어도 되겠냐고 물어봤는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내일 12시 전에만 나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고 이 공간에 있을 시간이 늘어났으니 한시름 덜은 것 같았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들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는 일만 남았다. 나의 계획 중의 하나는 이 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몰의 순간과 일출의 순간을 찍자는 것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때 내 감정을 추스리는 방향으로 행동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정말 어쩔 줄을 몰라서 그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죽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사실 양가적인 마음을 함께 갖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주어진 마지막 시간 동안 이 집에서 머물면서 가장 의미있는 행동을 하고 싶었던 반면에 한 편으로는 이 집에서 머물러있는 시간 동안 감정적으로는 너무 힘들어서 그냥 과감하게 집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었다. 겨우 겨우 마음을 붙잡고 나는 계획한 것들을 반드시 다 실행하고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또 다른 계획은 누나의 눈치를 보느라 일단 집 밖에 내놓았던 수백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용달을 불러서 지인의 문화 공간으로 옮겨놓는 것이었다. 요양 보호사 아줌마가 혼자 지내는 게 적적할까봐 선물해주셨던 토끼 인형 '유미'도 같이 그 곳으로 옮겨놔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집에 있던 물건은 단 한 가지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사짐 정리를 하면서 버린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비디오 테이프와 토끼 인형은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사 갈 오피스텔이 아버지와 살던 집보다 평수가 훨씬 작아진 관계로 많은 짐들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지인의 문화 공간으로 옮기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오피스텔로 그 짐을 옮겨놓지 못할 경우에 기증을 할 생각으로 맡겨놓기로 했다. 언제 다시 이 집에 방문할지도 모르는 누나 몰래 밖에 내놓았던 비디오 테이프 등의 물건들을 옮겨야 했기에 마치 내가 스릴러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긴장감을 느끼면서 행동하게 되었다. 그날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벌써 바깥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한 상태에 있었던지라 계획도 정확하게 진행할 수가 없었나보다. 일몰 시간에 대한 판단이 늦어서 이미 내가 찍고 싶었던 시간대는 지나가버린 상태였다. 속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찍는 게 급선무였기에 부리나케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화면 구도를 잡았다. 거실 마루와 베란다가 함께 잡히도록 앵글을 고정하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아뿔싸! 땅바닥에 앉은 채로 오래 촬영할 수 있도록 편한 자세를 잡고 녹화 버튼을 눌렀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하고 서 있는 상태에서 녹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보통 같았으면 녹화를 정지하고 자세를 바로 잡고 다시 녹화를 시작해도 됐을텐데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일몰의 일부를 놓치고 시작한 마당에 또 한번 일몰의 일정 부분이 날라갈 상황이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몸을 움직여 바닥에 앉도록 안간힘을 썼다. 겨우 겨우 힘들게 바닥에 앉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앉을 때 다리가 꼬여서 그걸 또 다시 바로 잡고 앉느라 애를 먹었다. 실내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8년간 살면서 이런 행동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좀 낯설게 느껴졌다. 좀 신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긴 그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텅빈 공간에서 실내를 촬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는 했을 것이다. 주변은 완전히 어둠 속에 잠겼고 내 눈 앞으로는 외부 조명이나 반사로 인해 약간의 빛만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주변이 어둠에 잠기자 유난히 주변 소리가 잘 들려오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소리, 주민들의 목소리, 주변 소음,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 창 밖에서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 이렇게 주변의 소리들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도 8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변이 어둡고 소리만 들려오는 상황이 뭔가 영화적이라고 느껴서였는지는 몰라도 실내에서 일몰을 촬영하면서 나는 문득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일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마스터 클래스에서 어린 시절 열매(열매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따러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서리를 한 탓에 들키면 혼날까봐 어른이 나타나면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 하고 한참 동안 그 곳에 머무르면서 어른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나무 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나 나무 위를 비추는 빛을 느끼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본인에게 있어서 영화의 원체험에 가까웠고 그때의 체험이 본인이 영화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었다. 내가 그때 텅빈 집에서 일몰을 오랫동안 촬영하면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떠올렸던 것은 그날 내가 경험했던 것이 바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나무 위에서 경험했던 것과 유사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편하게 자세를 취하고 땅바닥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못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일몰이 될 경우에 주변이 완전히 캄캄해질 걸로 예상을 했었는데 내가 예상한 것보다는 밖에서 여전히 약간의 빛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아서 녹화를 멈출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하늘을 쳐다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그냥 감을 잡아야 했는데 감을 잡기도 힘들고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앉아있기 힘들더라도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있기로 했다. 그런데 배터리가 1 프로 정도 밖에 안 남았다고 화면에 뜨는 데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오랫동안 꺼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녹화를 중지했겠지만 단 1초라도 이 집 안을 더 찍어놓고 싶다는 마음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계속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더는 숨이 막혀서 못 참겠다는 마음이 드는 찰나에 드디어 카메라가 전원이 다 되어서 꺼졌다. 대충 1시간 정도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 전원을 켰는데 2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이제 비디오 테이프, 토끼 인형 등의 물건들을 무사히 문화 공간으로 옮기는 일을 할 차례였다. 일몰 촬영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길어져서 용달을 부를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으나 기적적으로 한 대의 용달차와 연결이 되어서 무사히 문화 공간으로 내 짐을 옮겨 놓을 수 있었다. 그 문화 공간에서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 집에서 머무를 수 있는 마지막날인 15일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출의 순간을 찍어야 했는데 혹시라도 일출의 순간을 놓칠까 싶어서 밤을 꼴딱 새기로 했다. 일출을 찍은 다음에는 이 집에서 나가기 직전까지 실내를 분할해서 동영상과 스틸로 촬영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15일 새벽이 되었고 그날 일출 시간을 검색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배터리를 충전해서 일출 이외의 장면들까지 촬영할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배터리 소모 문제로 주구창창 일출만 찍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만 일출을 찍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또 다시 주변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캠코더가 두 대가 있었으면 혹은 여분의 배터리가 있었으면 일출을 제대로 찍을 수 있었을텐데 몹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주변이 밝아오기 시작했기에 일단 녹화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일몰 때와 마찬가지로 8년만에 집 안에서 처음 일출의 순간을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보다는 주변이 점점 밝아지는 것이 더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일출 장면은 다음 촬영 문제로 마냥 찍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어느 시점에서 끝내야만 했다. 실내 공간을 나눠서 찍기 전에 롱테이크로 집 전체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관문 밖으로 나와서 현관문부터 시작해서 문을 열고 들어와서 한번에 다 찍을 수 있는 동선으로 움직이면서 실내 전체를 촬영했다. 실내 전체를 찍고 나니 이제 낮 12시까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은 점점 급해졌다. 이어서 머리를 굴려가면서 공간을 어떻게 나눠서 찍을 지에 대해 생각했고 바로 바로 삼각대를 세우고 실내를 찍어 나갔다. 거실, 안방, 화장실, 내 방, 부엌 등을 괜찮다고 판단한 화면 구도로 각 공간당 한 두 컷씩 정성껏 촬영했다. 안방을 촬영하려고 하는데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아버지와 화해했던 침대가 놓여있던 자리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안방 전체를 찍고 그 자리만 클로즈업해서 다시 찍었다. 사실 13일에 이사하기 전에 이 곳을 도저히 그냥 떠날 수 없어서 단편을 촬영했었고 그 이후로 이사짐를 싸느라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에 15일까지 이 곳에 남아있을 걸로 생각하지 못 했다. 그러다가 보니 일몰, 일출, 공간 분할 촬영까지 모두 즉흥적으로 결정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집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급하게 촬영을 하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감독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한 명인 차이밍량이었다. 차이밍량은 공간 미학의 거장이 아니던가. 물론 차이밍량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후계자라고 할 만하고 차이밍량 이전에 안토니오니가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차이밍량이 많이 떠올랐다. <애정만세>, <안녕, 용문객잔>에서 <떠돌이 개>까지 그의 걸작들이 떠오르면서 영화 속에서 그가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역시 탁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내가 실제로 빈 공간을 촬영하는 경험을 해보니 공간감을 느낄 수 있고 효과적으로 공간의 형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촬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간이 도대체 뭐라고 이 공간과의 이별을 이렇게나 아쉬워하면서 이 미친 짓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 공간의 삶과 죽음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보여줬던 차이밍량이 떠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 순간 공간은 슬픔을 담보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와 유사하게 차이밍량의 공간 미학 속에는 항상 고독과 슬픔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공간이라는 것을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방이 텅 비어서 뻥 뚫려있었고 내가 그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이 계속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때의 경험은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집안 각 공간에 대한 촬영을 하고 마지막으로 셀카 동영상을 찍었다. 카메라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말을 내뱉었다. 역시 아버지와 화해한 공간이라는 애틋한 내용이 저절로 나왔고 이 공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마지막으로 '안녕, 나의 집'이라고 말을 하고 촬영을 마쳤다. 시간은 이제 거의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만족이 안 되어서 아이폰으로 각 공간에 대한 스틸 사진을 다시 찍고 셀카도 다시 찍었다. 그러는 사이에 결국 12시가 넘고 말았다. 노트북, 캠코더, 삼각대 등 약간의 짐을 싸고 주변 정리를 하고 이제 몸만 밖으로 나가면 되는 상황을 만들어놨는데에도 불구하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나가야 했다. 언제 현관문이 열리고 여기 새로 이사 올 분의 이사짐이 들어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계속 '이제 나가야 돼. 제발 나가자. 제발' 이렇게 되뇌이면서 발을 현관문쪽으로 움직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랬다가 다시 한번 각 공간들을 한번씩 쳐다보고 눈 속에 담고 오려고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렇게 하고 나서 정말 굳게 마음을 먹고 짐을 들고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안쪽 공간이 보이는 사진 한 장만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까지는 스스로에게 허락하기로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공간을 눈으로 담으면서 현관문을 열고 드디어 겨우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현관문을 나오고 나서 2901호 현관문을 뒷 배경으로 셀카 한 장을 꼭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 또 다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한번 살펴보았다. 나의 표정에 나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애써 웃음 짓고 있지만 그 밑으로는 매우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은근하게 깔려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했는데 마침 이사짐이 들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살던 집으로 들어갈 이사짐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간발의 차로 집에서 나온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속으로 매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사짐이 막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다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일찍 나와서 아쉬운 상황을 만들거나 조금 늦게 나와서 곤란한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기적과도 같이 정확한 타이밍에 집에서 나왔던 것이다. 아직 오피스텔 입주 날짜가 되지 않아서 일단 누나 집으로 가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제 누나를 만나서 같이 이 집을 떠나는 일만 남아 있었는데 누나에게 전화를 했더니 집에 다시 올라가서 버리려고 놔둔 물건을 다시 갖고 나오라고 했다. 겨우 집에서 나와서 마음을 추스르는 중인데 그 곳을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괴로웠다. 들어가면 나오는 게 힘들 걸 뻔히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안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물건만 갖고 바로 나오려고 했으나 다시 한번 아쉬운 마음이 생겨서 실내의 각 공간을 다시 눈 속에 간절한 마음으로 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물건을 갖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드디어 내가 살던 집으로 새로 이곳으로 이사 온 분의 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주인이 바뀐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열린 현관문을 통해 내가 살던 집 안으로 이사짐이 들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29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아파트 경비실 입구에서 아파트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더 찍고 누나의 차로 8년 간 정들었던 집을 마침내 떠났다. 차 속에서 내가 살던 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마지막 풍경을 담고자 아이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누나가 "그만 찍어라. 무슨 이민 가냐!"라고 얘기를 해서 아쉽게도 촬영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는 미칠 것 같았던 내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슬펐다. 그런데 한편으로 누나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현실을 인식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누나의 청천벽력 같은 말과 함께 이렇게 3일간의 미친 가슴앓이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때를 되돌아보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마음 상태가 그때보다 담담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8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 집과 이별하는 고통은 흡사 연인과의 이별을 방불케했었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 대한 나의 절절했던 감정과 사연은 정말 한 편의 멜로드라마와도 같았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때가 지금은 먼 과거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늑하다. 슬픔은 이렇게 잊혀지기에 다행히 살아갈 수 있나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새삼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실내 장면은 찍었으나 실외 장면을 추가로 촬영해야 할 아버지를 기리는 단편도 완성해야겠고 일몰, 일출을 찍고 내가 살던 공간을 찍은 영상들과 기존에 이 집 안에서 찍었던 영상과 아버지에 대한 영상을 합쳐서 일종의 에세이 다큐를 한 편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그러니까 이 집을 나오면서 나에게는 두 편의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마도 평생 이번과 같은 경험은 다시 없을 것 같다. 이제 부모님 두 분 다 계시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상세하게 그때의 경험을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글이 참 고맙다. 이 긴 글을 몇 명이나 읽을지 알 수 없지만 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나의 체험이 시간이란 무엇이며 가족이란 무엇이며 공간이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드문 경험일 거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쓴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유명한 이 문구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왠지 이 문구가 이 글을 마무리하는 데 적절한 것 같다. 지금의 내 심정이 딱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서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안녕, 나의 집...

(변변치 않은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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