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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지우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리플을 읽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마음이 서늘했던, 그래서 많이 아팠던 글은
왜 본인이 남에게 갖는 감정까지 깎아내리냐면서 안타까워하신 비네트 님의 리플 글과
마지막, "저는 종종 라곱순 님의 욕망은 왜 이리 억눌리고 거세되었을까 궁금합니다."라는 철철마왕님의 리플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순결에 대한 생각들이,
다른 분들이 리플에서 말한 것처럼
또다른 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이자 죄의식일까.
그것도 물리적 순결보다 더 심한 기준을 적용해서.
혹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해서
평소처럼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버린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예전 제가 혼자서 좋아하던 내 옆에 실재하던 짝사랑 대상들을 모두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혼자서만 좋아하던 모든 짝사랑 대상인 이성들... 심지어는 초등학교때 같은 반 남자 부반장 아이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감정은, 그 근본감은

놀랍게도, 죄책감 이었습니다.

(감히) (이렇게 많이 부족하고 뚱뚱하고 못생긴) 내가 (저렇게 눈부실 정도로 잘나고 멋진) 저 아이를/동기 친구를/선배를 좋아해도 좋을까. 라고 하는. 

작년 짝사랑 할 때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짝사랑 대상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열병을 앓았던지라.
미처 그 감정을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저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그 분과 저에게 공통점도 많이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둘 다 (사회적인 기준에서 바라보는 요구사항을 적용하자면,) 많이 부족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놀랍게도 대학때 전공도 같은 계열이었고요. 하지만 그분은 저보다 훨씬 더 실력이 뛰어나셨지만요...

하지만 역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맞았습니다. 
내가 내 곁에 실제하는 이성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죄책감이었어요. 그 분 역시도. 
작년에 끊임없이 이곳에서 짝사랑 넋두리 할 때 자기비하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감히 좋아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게 십대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뚱뚱한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내 자신이, 
여성스러운 매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자신을 아름답고 연약하고 누군가에게서 보호받고 이성에게서 사랑받아야 할 보통의 여성이 아닌, 제 3의 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체를 난처해 하고 많이 곤란해 하고 싫어하다 못해, 창피하다 생각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저런 저의 순결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강박관념의 원인은... 
역시 다른 분들이 지적해 주신 것이 맞았습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것을 넘어 심지어 그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는 것은... 
감히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괴로웠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비참하게 했습니다. 

내 마음속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빛이던 열병같던 짝사랑이, 동시에 나를 너무도 처참하게 만들어버린거지요.



이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고선, 전 아마도 영원히,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서 동시에 사랑을 받는 기적은

경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곧, 그런 그릇된 생각을 고치고 싶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말입니다. 언젠가는.

그래서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

지난번에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렸던 제가 좋아하던 분과의 식사 문제는,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저야 워낙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으니, 그 분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먹자고 했습니다. 순대국이나 돼지국밥 같은 음식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제가 결정한 만큼 실망도, 후회도, 슬픔도, 비참함도, 모두 감당하겠습니다.




제가 겪고 있는 이 지옥이, 더 이상 저의 뚱뚱하고 못생기고 여성스럽지 못한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는것은 
이미 예전에 깨달았습니다. 
알아도 쉽사리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대하는 제 마음속은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황폐합니다.

저는 정말로, 지금의 내 마음속 지옥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그때 정성어린 리플 달아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라곱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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