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으로 리뷰를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기도 한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만..

 

8일 12시 30분 상영으로 '산사나무 아래서'를 봤습니다.

 

 

작년엔 오직 호군이 주연한 '아적당조형제'를 보기 위해 부산행을 감행했을 정도로, '호군'에 눈이 뒤집어진 상태였는데, 올해는 그런 건 없이,

어차피 개봉하거나 중국영화라 개봉은 안해도 파일이 어디서든 돌거나 할텐데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그래도 가게 됐습니다.

딱히 영화들에 대한 기대는 없었고, 전 장예모 영화를 싫어하진 않고 그래도 5세대 감독들 영화들 중엔 21세기 들어 제일 볼만하게 만든다고 생각은 하지만,

뭐 주연배우들도 완전 신인이고, 시대물인지 옷들도 추레하고, 별로 비주얼이나 이런 데 기대도 없이 영화 관람을 시작하게 됐죠.

 

때는 문화혁명 당시 한창 하방이 이루어지던 시기이고, 여주인공인 징추는 중학생인데 농촌으로 몇달간 교육을 받으러 내려갑니다.

거기에서 지질탐사대로 내려와있던 청년 라오산을  만나 알 듯 모를 듯한 수줍고 설레는 감정을 나누게 되고, 도시로 올라와서도 그들의 만남은 꾸준히 이어집니다.

젊은 청춘남녀의 만남마저 엄격히 통제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차마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할 수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밖에 없어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 죽어요.

그들의 사랑은 정말이지 순진하고 순수하다못해 간질간질 못 견딜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이어집니다.

'정말로' 그들은 '오빠가 손만 잡고 잘게'를 실천하거든요. 한 침대에 한 이불 덮고 누워서도 말이죠.

 

 

 

 

 

 

그 흔한 키스씬 한번도 없고, 한두번의 포옹이 다지만, 그냥만 봐선 오누이나 그냥 친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러브씬들이 거의 표백되다시피 했지만,

그들이 나누는 사랑은 너무나 예쁘고 그림 같아 절로 미소를 머금게 만듭니다.

 

나중에 라오산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갑니다. 징추는 그가 선물해주었던 붉은 옷을 입고 와서 함께 산사나무를 보러 가자고 약속하지 않았냐며 울지만,

그의 이름도 한번 제대로 부른 적 없던 징추는, 그저  '나 징추에요'라는 말만 연발하며 울부짖지만(네 이름을 들으면 어디에서든 달려갈거라고 했거든요),

죽어가는 그의 흐릿한 눈은 병실 천장에 붙여둔, 그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들이 함께 했었던 마을에, 혁명영웅들이 피로 물들어 붉은 꽃이 핀다던 산사나무를 비춰주지만 산사나무의 꽃은 하얗기만 합니다.

라오산과 징추는 여느 연인들처럼 '우리 나중에 꼭 같이 와서 산사나무꽃이 정말 붉은지 확인해보자'라며 미래를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전설 속에서, 인민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붉은 꽃이 핀다고 선전했던 산사나무지만, 자연의 산사나무는 그렇게 무심하게 흰 꽃을 피울 따름입니다.

 

정말 내용 진부하죠. 한드에서도 요즘 백혈병 나오면 촌스럽다고 욕먹을 거에요.

너무 순진난만한 내용 전개라 요즘 관객들이 보면 피식 비웃을 거에요.

그런데 왠일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순수함에 제 마음이 정화되는 거 같고,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가슴이 울컥한게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인터넷상에 연재된 소설이었는데 대단한 인기를 끌었대요.

장예모 감독이 GV때 말하길 요즘 세상에서 오히려 더 이 단순하고 순수한 사랑이야기에 사람들이 더 감동을 받고 열광한듯 하다더군요.

 

일단 저렇게 단순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내용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아련한 감동을 자아낸 장예모 감독의 연출력이 가장 대단합니다.

제가 어제 마지막에 본 게 '전처의 결혼식'이었는데, 정말 도저히 납득이 안 되게 전개됐던 내용을 생각해보자면,

영화는 역시 감독의 연출력이 관건이고, 대가는 이래서 역시 대가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영웅'에서부터 시작된, 극도로 화려한 화면에 기댄 대작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옛시절로 회귀한 느낌이 들어요.

물론 문화혁명기, 그 엄혹한 시기를 낭만적으로만 그려낸 점에서 비판을 받을 것도 같은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두 사람의사랑이야기이고,

영화는 정말 단순하게 거기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단점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다만.. 남자주인공인 라오산이 너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서, 오직 징추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캐릭터라 다소 현실성과 개연성이 떨어진단 생각이 들기도 해요.

 

 

라오산의 일상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징추를 위해 나타나고, 징추를 보기 위해 오고, 징추가 힘들 때 '짜잔~'하고 나타나 필요한 걸 선물해주고,

징추의 발을 씻어주고, 징추를 업어주고, 징추가 추울 때는 안아주고, 아무튼 오직 징추징추징추 뿐이니까요.

그래도 그 둘의 그림이 워낙 잘 어울리고, 라오산을 맡은 두효의 이미지가 워낙 잘 맞아서 그러려니 하고 봐집니다.

 

그리고 두 남녀주인공의 이미지와 연기, 두 사람의 조합이 참 잘 어울리기도 했어요.

여주인공인 주동우는 92년생이니 올해 18살, 영화 찍을 당시 17살쯤 됐을텐데, 정말 애리애리하게 여려보입니다.

 

 

얼굴도 조막만하고 몸매도 애리애리해서 정말 어린아이 같습니다.

예쁘다기보다 수수하고 부정형적으로 생긴 얼굴인데, '집으로 가는 길'의 장쯔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역시 장감독 취향;),

이미지는 주신에 가까운 편이기도 합니다.

 

반면 남주인공인 두효는 키가 훤칠하게 커서 어른스럽단 느낌이 물씬 들고, 특히 영화 속에서 웃는 얼굴이 정말 선합니다.

 

 

순박하고 소탈한 웃음이 얼굴 한가득 떠오르는 걸 보면 절로 흐뭇해져요.

이미지가 비슷하기론 유엽을 들 수 있을 거 같네요. 특히 그 순박한 웃음이.(그래도 웃어도 눈물 짓는 것 같은 유엽보다 훨씬 밝은 편.)

 

하방시기의 남녀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발자크와 소녀재봉사>와 이 <산사나무 아래서>를 봤는데,

제 취향은 전자에 가까우나, <산사나무 아래서> 또한 수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장예모 감독이 <영웅> 이후로 욕을 많이 먹긴 했는데, 그래도 이름 좀 있다 하는 감독들 중에 볼만한, 재미가 있는 영화를 꾸준히 계속 기복 없이 만들어내는 건 장예모가 최고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GV에서 아주 가까운 자리에 앉아 직접 뵜는데, 감독님 멋있으셔요+_+

어째 그 얼굴은 십년전이나 이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중국인 관객들이 많았는데, 장예모 감독이 아주 대단한 인기더군요.

'감독님 손 잡아봤다~'고 감격해 넘어가는 분에다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GV 전에 통역하시는 분이 소개하셨는데, 그게 맞나봅니다.

 

두 주연배우들도 함께 봤는데, 주동우는 영화에서보단 덜 작고, 그러나 얼굴은 완전 내 주먹만하고ㅠㅠ

두효는 잘 생기고 훤칠하지만 아직은 영화의 라오산이 좋습니다^^(그래도 멋져요)

그러나 한가지 불행했던 사실은 제가 GV시간에 화장실이 너무 급해 정신이 없어 집중을 못했다는 것과,

화장실 너무 급해서 거의 끝날 무렵 나가려고 출입구 쪽에 서 있었는데, 거기가 하필 배우들 퇴장하는 곳이라서,

바로 코 앞에서 배우들이 서 있었는데, 정신만 있었더라도 사진이라도 한판 찍거나 사인이라도 받아두는 건데,

그래서 걔들이 나중에 뜨면(누가 알아요. 주동우가 장쯔이만큼 뜰지;) 기념이 될텐데 매우 아쉬웠습니다ㅜㅜ

 

개봉을 할지 모르겠어요. 장예모 이름값으론 할만도 한데, 주연 두 명이 완전히 신인이고, 비주얼이 화려해서 그걸로 어필할 수도 없고, 빵빵 터지는 액션도 아니고...

음... 또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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