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조선시대, 체벌이 사람잡다

2010.07.23 18:42

LH 조회 수:8673


옛날의 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김홍도의 그림입니다. 훈장 선생님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그리고 방금 회초리를 맞아 울먹거리고 있는 아이.
그런 그림 덕분인지 서당에서는 회초리가 기본 아이템이었을 듯한 편견도 듭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조선왕조의 기본 처벌 중 하나가 회초리였지요. 꼭 학생들 뿐만 아니라 관리들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회초리로 치자는 이야기가 조선 초에 조금 나옵니다.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회초리 치는 것을 초달이라고 하는데요. 재질도 다양하고 말도 많았습니다. 가시나무를 꺾어서 만들었대더라, 그렇다 해도 가시는 떼고 때리는 거라더라. 가시나무 혹은 뽕나무로 만든 회초리는 멍을 잘 풀게하고 기력을 좋게 해서 때려도 몸에 좋다더라 (응??) 라는 등등의 온갖 믿거나 말거나가 횡행합니다만.

결국 벌을 주되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말자, 라는 게 원칙이었지요.

 

그런데 성종 때 체벌하다가 학생이 맞아죽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삭녕군수를 지낸 김화라는 사람이 어쩌다 향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책 읽고 풀이하기를 시켜봤는데, 그 중 셋이 낙제점이었댑니다. 그래서 당장 뽕나무 회초리로 체벌을 가했고, 이 중 한 사람이 덜커덕 죽어버린 거죠.

회초리 맞는 것 만으로 사람이 죽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겁니다. 한자의 미묘한 뜻 덕분에 이게 과연 종아리를 때린 건지 곤장을 친 건지 분명히 알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스물 다섯 대를 때렸고, 그렇게 맞은 세 사람 중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다는 거죠. 게다가 김화는 이 사실을 보고하면서 자기가 때렸다는 이야기는 슥슥 감추고 병으로 죽었다라고 조작까지 해서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뽀록이 나서 벌금에 귀양까지 가게 되는데... 문제는 그 다음. 이 사람이 집안이 끝장나게 좋았던 겁니다.
애초에 과거에 붙을 만한 실력도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대신 써줘서 붙었다는 둥, 온갖 말을 들었고. 또 이 아버지는 자식 사랑이 지나치다보니 아들의 막힌 벼슬길을 뚫어주려고 온갖 설레발을 다 칩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미리 임금에게 "우리 아들에게 벼슬 줘서 감사 'ㅅ'"라는 말을 올릴 정도. 결국 갖은 반대에도 다시 관직을 얻긴 했지만... 그만한 물의를 일으킨 데다가 본인 역시 노력과는 담 쌓은 사람이라, 듣보잡 직책을 돌다가 또 귀양갔습니다.

 

성균관이나 사학, 그리고 향교에서 낙제점 받은 학생의 종아리를 치는 체벌은 의외로 정식 규칙이었습니다. 다만 규칙이되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종 때 유별나게 엄한 대사성 한 사람이 학생들을 시험보고 종아리를 때리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공부를 때려치고 성균관을 텅텅 비워버린 일도 있었으니까요.
이 때의 판결은 반반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스승을 공경하지 않으니 문제가 있다. 하지만 덕으로 학생들을 보듬지 못한 대사성도 문제가 있다고 말이지요.

사실 선비들에게는 그깟 회초리 백 대 맞는 게 낫지, "너 님 과거 평생 금지 'ㅅ' " 조치를 받는 것이 훨씬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끝으로 이건 중종님의 말씀.
 
"스승이 비록 가르쳐주고 싶어도 유생이 스스로 즐겨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종아리를 때리고 겁을 주어서 될 일도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창 시절 공부한 것은 맞는 게 싫어서가 아니었고, 또 내가 아니더라도 급우들이 엎드려서 펑펑 소리 나도록 맞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써늘해지는 경험이 참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스승이 학생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때리는 건지, 아니면 그 날 짜증나는 일이 있어 학생을 패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건지는... 그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요.

 

뱀발 이야기 하나 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막장 선생이 있고 꼴통 학생이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촌지 받고 시험 붙여주는 선생이야 놀랄 일이 아니지만,
성균관에서 교장 선생님 방에 쳐들어가서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용자라던가,
선생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닌 학생 이야기는 좀 쇼크였습니다. 그것도 서슬퍼런 꼰대 정조의 시대에 벌어졌으니까요!
옛날에는 선생님 그림자도 안 밟았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선생 패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황이 "요즘 애들은 선생을 봐도 공손히 인사를 안 하고 벌러덩 누워 흘깃 보다 말아!" 라고 써놓은 글은 꽤 재미났습니다. 율곡 이이도 "선생님을 보면 인사를 하지 도망가지 말 것." 이라고 학칙을 적어둔 듯 하니... 어째 모교에 찾아갈 때 마다 듣는 이야기랑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소소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고구마 덩이줄기 같이 쑥쑥 나오는데, 이어나가자니 끝이 없어서...
어느 선에서 잘라야 깔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지 고민입니다.
 

건 그렇고... 배 고픕니다,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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