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서재

2011.10.13 15:34

겨자 조회 수:2740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고서점 서유기를 읽으니, 제가 요즘 애써 잊으려고, 무시하려고 했던 고민이 떠오르는군요. 


저는 지금보다 더 큰 서재를 갖고 싶습니다. 크기는 평이나 제곱미터로는 잘 모르겠고...큰 방 두 개 정도의 서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러려고 현재의 집을 산 것입니다. 현재의 집에는 지하실이 있기 때문이죠. 이 지하실을 개조해서 겹겹이 책장을 놓고 도서관처럼 듀이 분류표를 붙이고 가운데에는 독서용 소파를 놓자고 구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하실에는 습기가 찹니다. 땅 자체에 습기가 있다고 이웃들이 그러더군요. 따라서 이 지하실은 정말 그냥 지하실로만 놔둬야지, 서재를 꾸미면 책이 망가질 거라는 것입니다. 저는 책이 망가져도 좋으니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만, 돈만 낭비라고 주변에서 말리더군요. 결국 제가 원하는 꿈의 서재를 가지려면, 큰 집이 필요합니다. 


책을 산다는 것은 공간을 사야한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집을 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재산세도 내야하고, 집이 커지면 당연히 난방비, 냉방비도 올라갑니다. 그러면 책을 한 권 더 산다는 것은 1) 책 값 + 2) 집 값 + 3) 재산세 + 4) 난방비 + 5) 냉방비 + 6) 대출 이자비용 + 7) 혹시 이사를 가게 된다면 증가하게 될 이사비용 + 8) 책장 비용 + 9) 늘어나는 집 관리비용 (쓸고 닦는 것)을 고려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 다른 건 몰라도 서재만큼은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가지고 말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 그만한 공간이 있으려면 비용이 상당히 들어가더군요. 서재를 따로 두지 않는다면 다른 공간에 책이 차고 넘쳐야한다는 이야긴데, 그건 원하지 않습니다. 기관지가 약하기 때문에서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서가에 들어갈 수 있는 물리적 책의 권수는 2천권이 못미치는 정도. 따라서 원하는 책이 있을 때마다 기존의 책을 솎아내야합니다. 제가 원하는 타겟 소유량은 만사천권입니다. 지금 있는 책장의 일곱배 정도를 원합니다. (합리적인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로 뚫린 공간이 있으면 좋겠고, 가능하면 붙박이 책장이라 책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했으면 좋겠고, 여러겹의 미는 책장이면 좋겠고, 만일 그게 안된다면 높이 약 1미터 20센티 정도의 낮은 책장으로 여러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닥은 카펫이었으면 좋겠고, 조명은 뱅커스 라이트 (녹색 덮개 스탠드) 였으면 좋겠네요. 기왕에 꿈꾸는 거니까 보태자면, 책이 아무리 많아도 박스에 들어있는 건 싫습니다. 박스에 들어있는 책은 웬지 슬픕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집을 두 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셰익스피어 매니아라서 지하실을 완전히 서재로 꾸몄는데, 언덕에 있는 집이라 지하실 반쪽은 평지라서 볕이 잘 들어옵니다. 책장은 붙박이 장이고, 서재의 모든 책과 자료는 셰익스피어에 관한 것이었죠. 셰익스피어 비디오 (VHS), 셰익스피어 전집, 햄릿 초판본을 석고로 크게 떠서 만든 장식, 각종 셰익스피어 논문. 이 집의 서재가 (컨텐츠가 아니라 스타일이) 바로 제가 원하던 이상형의 서재에 가까웠습니다. 두번째 집의 지하실은 모던아트와 팝컬쳐에 대한 저서와 기타 자잘한 책들이 있고, 1층과 2층에는 모던 아트가 집안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화장실과 부엌까지도 말입니다. 집 전체가 소규모 MOMA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심지어 변기와 수건거는 막대기까지도 모던아트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겉에서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은 허름한 집인데 일단 집안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대안은 물론 e-book이었습니다. 킨들과 킨들 클라우드를 이용하면, 책장에 있는 책을 절반은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책은 또 책꽂이에 꽂아야만 생기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고가며 이런 책이 있었지 하고 생각하고 떠올리고 읽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저는 악서가인지라, 책을 찢고 긋고 구겨가며 읽습니다. 그걸 위해서는 물리적인 책이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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