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답글로 달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따로 작성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워낙 이민자 비율이 높은 나라이다보니 별별 곳에서 온 사람들을 다 만나죠.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실제로 어느 정도의 정치적 투명성과 안정성이 정착된 나라는 실제로 몇 안 되더군요.

북유럽과 서유럽의 몇몇 나라들과 북미와, 오세아니아의 일부 나라들 정도?

그 외의 나라들은 모두 정치적으로 참 안습 수준이죠.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고 독재자의 망상에 다시 사로잡히긴 했지만 그래도 전 세계 나라들을 일렬로 줄 세워놓고 비교해보면 아직까지는 상당히 상위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진짜 워낙 막장인 나라들이 많아요.  이건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첫 번째 희망포인트로 삼고 싶고요.  


이집트에서 온 친구가 있습니다.

중동의 봄 혁명 때 탈출해 왔어요. 기독교인이거든요. 이전의 독재자가 독재자이긴 해도 종교의 세력화를 억압했기 때문에 나름 종교적으로는 자유롭게 살았다죠?

그 친구의 관점에 의하면, 서구 사회가 독재자를 무너뜨린 중동의 봄 혁명을 앞 다투어 보도하는 방식은 그저 현실을 미화 시켜 본 것에 불과하답니다. 

독재자가 쫓겨나고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이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이 친구는 자기 집에서 앉아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으로 무장을 해야 했습니다.

이집트 민중은 무엇을 얻기위해 독재 저항한 것일까요? 다수 민중이 지향하고 원하지만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민주주의? 인권? 아니면 극단적 무슬림 가치를 지향하고 타인에게도 강요할 수 있는 자유?

물론 제가 들은 이야기는 이집트에 살던 기독교인 한 명의 관점에서 묘사된 체험담에 불과하지요. 

남미 친구들도 있는데 그 쪽도 워낙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선 생략할게요. 다만 그 쪽도 상당히 보수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라는것만 언급합니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인용을 다시 한 번 끄집어 내게 되는데요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있다 하더라도 선출되는 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들이 허용하는 수준의 가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심지어는 민중에 의한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그 민중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까지밖에 허용이 안되겠죠. 

예를 들면 중동 어느 나라처럼 여성인권이 안습인 국가에서 민주주의 혁명으로 개혁적 정부가 들어서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만약 그런 지도자가 여성인권을 보호하려 든다면 오히려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지도자 선출이 가능하려면 그 사회 대다수 국민들이 그 가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북유럽, 서유럽 북미 등의 나라에서 우리나라 새누리당 같은 정치적 행태를 보였다가는 매장되기 쉽겠죠?


그럼 우리사회는 과연 우리가 바라는 정도의 인권감수성이 있는가 의문을 가져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은 인권이 없다고 생각하고 교사들은 여전히 촌지를 받죠. 여러가지 규제를 통해 아이들을 통제하지만 거기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이 그걸 당연히 여기고 있어요. 학생은 공부만 해야하고 인권따위는 없는 거라고. 당장 게임규제의 억지스러운 법안이 학부모들에게 환영받는다는 것만 봐도 그래요.

직장인 인권은 또 어떤가요? 상사가 부하직원을 다루는 방식, 혹은 사장님이 고용인들에 대해 갖는 자세...제가 겪고 보았던,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인권 유린과 차별이 이 나라에서는 고소당할 충분한 사유가 되고도 남는다는 것을 볼 때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의 인권의식이 그 정도밖에 안되는 거고 그래서 아직 멀었다는 자괴감이 들어요. 

뭐 사람들은 그게 군대문화에서 온거다...라고도 하는데 기원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압도적 다수로 문재인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면 한진중공업, 용산참사 이런 일들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도요...박근혜는 아예 정계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못했을 것이고요. 

그냥 아직은 과반이 좀 넘는 국민 다수가 제대로된 민주주의보다는 강력한 힘에 의해 통제받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볼 수 밖에요.  

고무적인 것은 그래도 48% - 메피스토님말씀대로 48%가 모두 진보된 사회의식과 인권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48%면 미래에는 좀 희망을 걸어볼 만한 게 아닌가 억지로 믿고 싶어요. 특히 이번 투표가 세대갈등이라고 하니 군사정권을 경험하지 못해서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없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서 멘붕을 많이 경험했던 젊은 세대들이 포기하지 말고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 해 준다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를 인용하며 맺습니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반대론자를 설득하거나 그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만들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론자들이 결국 죽고 새로운 사실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자라나면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2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5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49
66 제가 스태프로 참여한 김량 감독님의 <바다로 가자>를 서울환경영화제와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어요. [2] crumley 2019.05.23 553
65 에일리언 커버넌트 촌평 - 노스포 soboo 2017.05.16 937
64 [바낭] 사람은 이상해 [1] maso 2012.11.30 1002
63 그 섬인가 사막인가 그 것이 문제로다. [4] 걍태공 2012.02.11 1045
62 '안철수' 꿈을 꾸었습니다. [3] soboo 2011.11.24 1119
61 행운이란 [1] 가끔영화 2011.06.04 1160
60 [생활잡담] 드디어 TV 교환(예정) + 공각기동대 블루레이 구입과 꿈. [2] 가라 2012.06.19 1180
59 오늘 새벽 꿈. [3] paperbook 2012.08.29 1180
58 오늘 아침에 꾼 꿈 이야기 [2] 사소 2013.11.15 1220
57 코선생과 꿈에서 연애한 이야기 유니게 2012.01.25 1238
56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꿈. [7] ACl 2011.10.31 1250
55 체력의 한계 [2] chobo 2012.05.19 1336
54 잡담 [8] 세상에서가장못생긴아이 2011.07.27 1356
» 박근혜의 당선 이유 - 아래 메피스토님과 같은 맥락으로 [2] 양자고양이 2013.01.11 1378
52 IE6 일병(?) 살리기 방법 [8] chobo 2012.02.09 1401
51 생시에는 머리 좀 쓰면서 살아야겠어요 [7] 가끔영화 2011.09.16 1453
50 화차 보고 왔습니다. 아마 스포가 좀 있을것 같아요 [1] Weisserose 2012.03.17 1479
49 (바낭&뻘글) 이틀 째 악몽 -_- [3] 러브귤 2010.11.03 1517
48 오오 저도 드디어 리브로 왔어요 를 비롯한 바낭 [6] 사람 2010.10.29 1530
47 꼴칰 2군 시설 [7] 달빛처럼 2013.06.07 153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