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심과 비밀의 상관관계

2011.07.21 23:33

유니스 조회 수:2333

 

"뭐가 됐든 간에 머리 굴리지 말고 한우물을 파! 너는 하나만 파야 돼. 그냥, 우직하게. 그냥 소처럼 하나만 파."

 

땡중인지, 대사인지. 암튼 회색 장복을 떨쳐입은 일산 백석동 레져스 오피스텔의 한 도사님이 내게 해준 말입니다. 사오년 된 일이라, 원래 복채 5만원인데 나랑 내 친구는 '예쁜 처녀'라고 3만원으로 깎아 줬고, 나오는 길에 오래 오래 살으라며 190Cm 되는 그 분이 내 발등 위에 마주 서서 건강발지압을 해준 징그러운 기억뿐. 이름도, 오피스텔 호수도 기억은 안 납니다. 아, 또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위의 저 말을 듣자마자 왠지 무지하게 기분이 상했다는 것.

 

왜 기분이 상했는고. 집에 돌아와, 그날 들은 점괘를 수첩에 적어보며 돌이켜 봤지요. 한우물만 파라,는 교훈은 아마 고대 피라미드 안 이집트 벽화에도 있을 거에요. 잘은 모르지만 외규장각 최종본 말고 1고쯤에 써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동서고금을 내려오는 지극히 당연한 교훈, 뻔하고 좋은 말, 오랜 지혜랄까요.

 

그 거인도사도 별 의미없이, 그저 좋은 말을 해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간에 들어서자 마자 "넌 가르치는 팔자야."그랬거든요. 당시 문제집 만들었고, 그 전에 과외했으니까. 끄덕끄덕하며 '사주나 손금 안 보시냐'했더니,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헹. 아마추어들만 만나봤구나. 난 날짜 안 물어. 그냥 기가 흘러. 너는"

그러시고는 그 후로도 이게 맞는 건지 그른 건지 애매한 말만 했거든요. 암튼 주제는 이 얘기가 아니고. 다시 본론으로 가자면,

 

왜 그렇잖아요. 드라마에서 이러죠. "나다운 게 뭔데? 니가 날 알아?"하고 버럭대는 인물, 그런 경우 상대방이 그 인물의 약한 점이나 악한 점을 꼬집어 말한 경우가 있죠. 제게 '한우물'은 절대반지 같은 것이에요. 물론 저는 골룸이고. 평생 원해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애시당초 맘에서 놓은 것.

 

하루에 수십번 변심합니다. 저는. 때로 3분마다 기분이 변해서 놀림도 받죠. "아,추워."했다가 훅 하고 더운 바람이 끼치면 "모야, 되게 더워."하죠. <동물농장>보며 줄줄 울다가, <라디오스타>로 돌리고 부은 눈으로 껄껄 웃죠. 아, 별명은 ‘인간리모콘’이에요. 자꾸 변하는데다, 정말 휴일이면 1분마다 리모콘질을 해서 부엌에 계시던 엄마가 버럭, 하시죠. "작작 돌려대! 정신사나워 죽겠네! 리모콘 던져 버린다!"

 

식욕도 그래요. 배가 고파서 비빔면과 치킨 전단지, 집밥을 놓고 고민하다 치킨가게에 전화를 걸어요. 그리고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손목시계를 노려보며 고민하죠. 십분 정도면 출발 안 할텐데 이걸 취소해 말어,하고.

 

세시간 동안 쇼핑몰 옷은 택배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잊어버려요. 택배왔다고 경비실서 전화오면 '뭐가 왔지?' 하지요. 어쩌면 제 변심병은 건망증과 뉴런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내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했고, 중요시했는지를 너무도 빠른 속도로 잊어버리는 게 문제가 아닐까. 지금 하는 일에는 아직 변덕을 부리지 않는 걸 보면서 이 일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을 정도로 주기적으로 일을 의뢰받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당연하게도 제게 한 남자와 십년 연애한 친구는 헬렌켈러급으로 위대해 보여요. "어떻게 스무살때 사랑하던 사람을 아직도 사랑해?"라는 질문은 바보같아 보일까봐 절대 하지 않았지만, 목끝까지 차올랐던 궁금증이에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고 묻는 <봄날은 간다>의 상우에게 저는 담담하게 말해줄 수 있어요. 변하니까 사랑이지. 바보야.

  

연애 얘기를 좀 해볼까요. 제게는 '1일 천하' 아니 '1일 연애'라는 놀랍고, 한때는 수치스러웠던 기록이 있습니다. 스물한살 여름방학이었을 거에요. 난생 처음 사귄 남자친구는 "우리 내일부터 만나지 마요"란 말을 듣고 어이를 상실했어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차마, 말로 전하진 못했지만) 제대로 된 첫데이트날, 신촌에 있던 단짝친구랑 셋이 보게 됐어요. 근데 이 오빠가, 아니 이 오징어가 제 오른손을 계속 만지작만지작하는 거에요.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그때만 해도 전 '연애'라는 행위 자체가 많이 부끄러웠어요. 아니, 그 오빠 손이 너무 축축해서 기분이 나빠졌는지도 몰라요. 그것도 아니면 그 만지작질이 너무 촌스러워 보였을지도요. 그때는 'COOL'이 시대의 절대절명의 가치일 때라서. 아무튼 민망할까봐 손은 못 놓고, 신나서 떠드는 그 분 얼굴을 봤는데 그저 무난하게 생겼다 여겨지던 그 얼굴이 오징어로 보이는 거에요. 결국 얼굴도 안 보고 전화로 이별을 고했지요.

 

후일담도 있습니다. 그 오징어 오빠는 1년 후 만나자고 하더니 제게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운동을 많이 했으며 동호회를 조직해서 회장 노릇을 할 정도로 리더십이 강하며 며칠 후 유럽 여행을 간다는 등, 제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더랍니다. 그날은 이분이 왜 이렇게 지루하고 지루하실까 생각했는데, 지금 와 돌이켜 보니 자기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어필해서 제가 후회하게 하려 했던 듯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당할 만 해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에요. 간헐적으로 만난 게 일년이 넘고, 밀땅은 혐오하는 제가 욱해서는 이렇게 유치한 일갈을 했으니까요.

 

"오빠는 대체 저 왜 만나요?"

"응? 아...만나고 싶으니까."

"왜 만나고 싶어요?"

"응? 아......뭐,좋기도 하고. 뭐..."

"좋으면 만나요? 좋으면 다 만나요? 맨날 만나기만 해요?"

"아...난 다음에 만나면 고백하려고 그랬지...."

(음...그분은 연애바보였던 것 같습니다. 차길 잘했습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지금도 그러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이래놓고! 하루만에 '안녕' 하는 계집애를 어찌 용서하겠어요. 이쁘지도 않은게, 글래머도 아닌게, 생머리도 아닌 게, 얼굴도 안 작은 게, 다리도 굵은 게, 안경도 쓴 게, 재수도 한 게, 서울도 안 사는 게, 게다가 실제적으로 먼저 고백도 한 게!!!!! 복수할 거야!!! 그랬겠죠.

  

여기까지 썼는데 결론을 못내겠습니다. 물론 결론을 못내니까 제 평생 지병이 변심병이죠. 변심병에 주사할 몰핀 혹은 안정제는 이미 알고 있어요. 경험상 그것은 '비밀'입니다. 그날 그 오징어랑 내 친구가 한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적어도 한달정도 비밀연애를 했다면 지금 그 오징어랑 결혼을 했을지, 뜨거운 연애 후에 상처로 남았을지 그건 모르는 거죠.

 

비밀의 긴장감, 아슬아슬함, 세상의 눈을 피하고 있다는 일말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사랑을 공고히 해 줍니다. 무엇인가를 비밀로 하고 있다는 건, 그 혹은 나와 관련된 누군가가 그 사랑을 방해하거나 최소한 탐탁치 않아한다는 건데. 그 점은 평범한 사랑도 소설 속의 사랑으로 신비화하고 그 지위를 격상시키는 즉각적이고 강렬한 힘이 있지요.

 

로미오 줄리엣 걔네도 양가의 축복 받았으면 스무살쯤 새 연인 찾아 훨훨 했을지 몰라요. 워낙, 열정적인 애들이잖아요. 결론은 이거네요. 로미오와 줄리엣 엄마 아빠, 그냥 찬성해주지 그랬어요. 그 나이또래 애들 연애, 22데이, 50데이, 100일 챙기고 나면 할 거 없어서 시들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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