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있음] 한공주

2014.04.30 00:16

잔인한오후 조회 수:1451

(내용있음 ⊃ 스포일러입니다.)


3시 10분 영화를 봤는데도 이미 기억이 희긋희긋해지면서 영화 전체가 기억나질 않는군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눈물을 닦고 나오면서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방에 든 책도, 호주머니에 든 휴대전화도 그 어떤 기록물이나 의미가 있는 상징들을 보고 싶지 않았고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담아 가고 싶었습니다. 집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도 멍하니 이런 저런 생각을 했고 그런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생각했죠. 집에서도 잠시간 멍하니 있다, 자다 깼더니 아홉 시 쯔음 되었고 웹을 여기 저기 쏘다니다가 타자를 두드려 봅니다.


주변의 CGV나 메가박스에서는 한공주를 상영하지 않더군요. 결국 시내에 있는 단관 극장에서 하는 것을 찾아가 보게 되었는데, 한 편에 8000원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그 극장에서 그 전에 영화 봤을 때는 그보다 쌌었다고 기억하는데 명확하진 않더군요. 사실, 이번에 한공주를 보면서도 극장 내에는 총 4명의 관객이 거대한 14x6m짜리 영화관을 전세낸듯한 상황이었으니 8000원은 과도하게 싸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가 온 직후라서 그런지 텅텅 빈 영화관은 상당히 추웠고, 관측에서 제공하는 담요에 몸을 감싸고 나니 편안하고 졸리더군요.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죠.


포스터에 대사가 하얀 글씨로 적혀 있듯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로 시작하더군요. 아주 복잡한 심정을 품은 여러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고르질 못하고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가방을 건내주는 장면 이후에요. 그 대사를 어떻게 발음할까 포스터를 보고 상상해봤지만 음,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정도로 들렸습니다. 그로 소설과 영화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을 조금 했죠. 저는 DJUNA님의 묘하게 원천적인 소재의 언급을 꺼리는 듯한 리뷰도 읽고, 그리고 집단 성폭행을 다루고 있다고 정면으로 써버린 어떤 글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걸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까 궁금하긴 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거죠. (몰랐다 하더라도 이런 것에는 이상하게 눈치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선풍기 목 돌아가는 쯔음 내지는 첫 시퀸스에서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DJUNA님 리뷰의 태그에도 아마 그 정보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가장 먼저, 자살은 죽어도 하지 말아야겠단 결심을 하게 되더군요. 뭐, 저의 경우 다른 여타의 안전장치를 통해 자살에 도달할 수 있는 길목에다가 여러 장애물을 펼쳐놨지만 이 만큼 (전혀 의도되지 않았겠지만) 격정적인 설득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억울한 상황에서, 그 해석의 권한을 타자에게 주는 미련한 짓을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죽고 싶더라도 끝까지... 끝까지, 살아남아서 한 생명체로써의 언어를 내뱉다가 그 수명이 되면 죽어야겠단, 남이 오독을 하든 말든 오독할만한 텍스트를 주고서나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죽은 이들은 말도 없고 고통도 회한도 미련도 억울함도 없겠지만. 그것을 버티고 넘어갈만한 것이 되지 못하더랍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영화내적 허구를 끼워 넣었을까요? 모두가 한공주를 부르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 물 바깥으로 검은 실루엣이 헤엄쳐 나가는 장면 말이죠. 그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너무 끔찍해서? 영화제작자로서 이렇게 끝내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관객들이 물결에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고만 있는게 싫어서? 아니면, 그 목소리는 관객인 제가 같이 내줘야 할 것이어서? 저는 마지막 그 짧은 10초 부근에서 영화가 지금까지 한 껏 해왔던 그 노력들이 훼손되었다는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상당히 길고 느리게 진행해왔고, 시도했는데 이런 식으로? 저는 아직도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잘 모르겠고, 제게는 아쉬운 끝맺음이었습니다.


성폭행이 나오는 한국의 영화는, 제 경험에 대부분 복수극이었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되는가는 알기 힘든 영역이었으나, 이 정도의 시선 처리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는 수많은 한공주가 있겠거니 싶은 겁니다. 거기에다 그보다 사정이 안 좋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겠지요. 영화의 주인공은 다른 이들에게 짧은 순간에 매력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노래실력을 가졌고, 살벌한 전학 메커니즘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자를 얻습니다. 영화 어디에서도 성폭력상담센터 등의 관이 주도하는 권력 내지 힘은 전혀 보이질 않고, 오로지 (담임일지 모르는) 선생님이라는 교육행정 공무원과 친족 중 아버지만이 (초기에 잠시 경찰이 등장하지만) 절차를 진행합니다. 실제는 어떠할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군요. 오직 한공주의 시각에서만 진행되는 영화는 당사자주의인 제겐 상당한 의미로 다가오긴 했습니다.


누구도 꺼내서 언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잊혀지는 것들이 있고, 그것은 멀리는 60년대의 홀로코스트, 가까이는 한국에서의 과거사 등이 떠오릅니다. 제가 그것들을 예시로 언급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언급하였기 때문일 것이고, 상상 그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그 해결로 가는 길목에서는 결국 고백하여야 된다는, 폭로하여야 된다는 아이러니는 피해자 모두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중간의 일상 내지는 어떤 기쁨과 행복으로 가는 흐름에서조차 허약한 종이 덮개로 숨겨진 예리한 칼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춤을 추고 있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파국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만 기다리는 제 입장에서는 그 간 계속 고통스럽고, 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그럭저럭 납득이 가는 결말이었던 듯 싶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끝맺음만 빼면 말이죠.


(있지도 않지만)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하면 나는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넋이 나가면 배때지에 칼을, 까지도 가능할지도 모르고 그 이전에 아주 철저하게 법적인 결과를 끌어내려 노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예컨대 애한테 접근하는 가해자 어른들 같은 경우에도 접근금지 조치라던가 해서 2차적인 소송까지 걸고 모든 피해를 법적으로 최대한 환산할 수 있도록... 그것은 그 환산이 피해의 보상이나 전리품이 아닌 "사회의 인정"이라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든 가르쳐주고 싶지 않을까 싶군요. 고통도 사회가 인정하고, 가해자 부모들이 X랄하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하고, 뭐, 그런 것들을 사회가 다 알고 너와 공감한다는 것을 전해주려고 사방팔방으로 날뛰지 않을까 싶군요. 어설픈 봉합 같은건 제 쪽에서 사양하겠다는 마음으로요.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무능함과 무력함을 느끼기 좋은 나날들입니다. 숨 쉬고, 먹고, 자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대라 생각합니다. 다들 남에게 오독의 여지를 주지 않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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