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서사 외적 요소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감독이나 배우, 편집이나 시나리오 작가, 배급사 등을 고려하지 않고 흥이 나는대로 대충 본다는 이야기죠. 가끔은 영화를 보는 이유가 딱히 없단 생각도 들어요. 굳이 뭔가를 만들어서 그 이유를 찾아 붙이면 어색하고, 그저 시간이 거기에 있었고 영화도 그 순간에 있었기에 보게 되는거죠. 그래도 특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단 걸 들었을 때는 보는 편이니 완전 무작위적 선택은 아니겠죠. [도희야]를 원래라면 봤을까를 곰곰히 따져보는데 보지 않고 잊혀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화관에서는 관련자 대담을 GV라고 하더군요. Guest Visit의 줄인말인데 왜 이런 용어를 쓰게 되었는지 의문이에요. 어쨌거나 감독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약간 흥미가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진 않았을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눈물이 났던 영화 목록을 떠올려보고, [도희야]에서는 눈물은 커녕 감정 한 켠도 움직이지 않았다는걸 생각해보면 제가 문제인지 영화가 문제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감상적이 될 만한 요소들은 많았어요. 응당 동정한다던가 걱정한다던가 심려한다던가 할만한 소재들도 끊임없이 나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차갑게 식은 제 자신만을 계속 맞닥드리게 되더군요. 하기야 저는 영화를 볼 때 평균적으로 그런 입장을 취했었고 최근이 이상했었던 거지만 갑작스레 선회한 감정이 이해가 잘 안되더라구요. 그저 그랬을 수도 있지만,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봤죠.

 

[한공주]는 묵묵히 앉아 바라보기도 힘들었고, [감기] 같은 괴작도 일말의 이입이 되었는데 왜인지. 곰곰히 생각해도 아직도 답을 찾진 못했지만, 대략적으로는 세 인물에 초첨이 강하게 맞춰져 있고, 그 이외에는 너무 평면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게다가 집중하는 세 인물도 그렇게까지 입체적이지 않아요. 각도에 따라 달라보이는게 입체라면 어느 정도는 입체적이긴 하겠지만, 자주 그런 인물들을 봐왔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는 영화가 중반까지 느리게 걸었고, 중반 이후부터는 바쁘게 뛰기 때문이라 하지만, 저는 느리다고 해서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편은 아니거든요. 어쩌면 대본의 문제일지도 모르죠. 대화는 최대한 절제되어 있는데, 그렇기에 고르고 골랐을꺼라 생각되는 단어 몇 마디들이 그런 고심 이후에 나왔다고 납득이 안됐던거죠.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았으면 더 납득이 되었을지도요. 일대일 대화 상에서 그런 경우가 많았고, 3명 이상일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영화가 앞 뒤로 전혀 섞이지 않으니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직선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다른 부분에서는 아동폭력 대처를 그리는 방식이 '경고'라는 안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실제와 다르지 않은가 하는 의심 때문이겠죠. 한국에서도 아동폭력은 아주 중요하게 다뤄지고, 선도희의 등 상처 정도면 수십 장 사진으로 찍혀 보고서가 작성되고, 부모와 격리되어 아동보호센터로 보내져도 무방할 수준이죠. 그리고 그러한 센터들은 건축물로 한국 전역에 세워졌고 아직 그 행정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명확한 흐름은 모르지만, 그래도 영화에서 보이는 방치보다는 더 나은 과정에 있을겁니다. 특히 온전히 은폐되는 폭력이라면 모를까, 공권력에 발각된 폭력이 비행정적인 절차를 걸쳐 지연되다가 문제가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납득에서 저 멀리 떨어져버린 거겠죠. 소재들이 특정한 목적에 의해 배치되었단 의심이 들어버린다면, 폐쇄된 계 내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이란게 완전히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랬기에 이런 저런 철학적/현실적 질문들을 던질 단계에 이를 수도 없이 멍히 바라만 보다 영화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감독과의 대담에서 있었던 질답들. (시간이 지난 후 재구성했기에 의도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새론은 처음에는 이 영화에 정말 나오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시나리오와 함께 출연 여부를 보냈는데 한 달간 대답이 없었고,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한 달은 소속사와 부모가 설득을 해보다 포기했던 시간들이라 했어요.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지 못하는 배우라는건, 그렇게 유쾌한 상황은 아니겠죠. 그리하여 적합한 배우를 찾기 위해 오디션을 열었고,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 한 달 전까지도 못 찾았으며 최종 오디션을 앞두고 있었는데 혹시 하고 연락해보니 출연하겠다고 했다더군요. 그리고 최종 오디션은 취소됐고, 그 과정에 있었던 아역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배두나와 송새벽은 시나리오를 읽고 혼쾌히 하겠다 했고, 특히 배두나는 흥미를 많이 보였다고 하더라구요. 음, 그리고 깐느에서도 김새론은 영화 시작 전에 인사하고 빠져 나갔다가, 영화 끝나고 나서 인사를 했다더군요. 정말 어려운 역이었지만 촬영 후에 잘 빠져나오는 듯 보였다고 했습니다.

 

영화의 사전 조사에 대해서는, 감독 친구분 중에 현직 경찰 파출소장이 있었고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영화 내에서 깊은 대처를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남이 최대한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랬다는 이야기로써, 문제의 은폐 내지 유지는 관찰자도 포함해서 이뤄진다고 미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와 소아성애는 분류되어 판단되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즉 동성애자라고 해서 아이를 성적으로 접근했을꺼라는 논리적 도약에 대해서는 바로 그런 부분을, 뭉뚱그려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말하고 싶었으며 그걸 지키기 위해서 형사가 동성애자 아니냐고 집요하게 묻는 부분에서 언급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던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영화에서의 결과나 그 과정이 전혀 어떤 해결이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배두나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게져서 술을 거의 안마시는 편인데, 그렇기에 소주를 먹는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해요. 결론적으로 술꾼은 술을 마셔도 변화 하나 없다는 걸로 갔다고 하며, 배두나는 왜 술을 굳이 컵에 따라 마시냐고 했다더라구요. 그러니까 소주 > 생수통 > 컵이라는 귀찮은 담기 과정을 2번이나 거칠 필요 없냐는 질문이지 않았나 싶고. 소소한 부분으로는 ICIS가 아니라 삼다수로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협찬으로. 다른 소소한 이야기로는, 어머님께서 미용실을 하셔서 미용실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고.

 

선도희는 지금까지 애정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아이로써, 처음으로 타자의 애정을 받았기에 그 애정을 여러가지로 해체해서 대부분을 깊게 음미하려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자체를 자각하지 못했으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로써의 애정만이 아니라 성적인 애정과 그 이상의 여러 것들을 느끼고 표현하게 되죠. 간단히 영남은 밀고, 도희는 당기는 역할이었다고 (영남은 도망치고 도희는 돌진하는... 이라고 했지만서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강간 날조의 경우, 도희가 영악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만들었기 보다는, 그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악의 선택을 한 것 뿐이라고 하더군요. 매우, 아주 매우, 똑똑하거나 사악한 아이로 열어두진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처음 할머니의 경우도 모호하게 이해되는게 의도였고, 연기 상에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망이라고 가정하고 하도록 했다는군요.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밀양]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고 편집을 하고 내놓을 때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질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오아시스]는 계속해서 기억이 났는데 그 이유는 등장인물 둘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남이 볼 때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게 격차가 나는 상황을 상정하게 되기 때문이랍니다. 저야 두 작품 다 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요.

 

마지막으로 영화가 시작할 때 비가 오다가 그치고, 마지막에는 폭우 속을 달리는데, 그 결말을 바라보며 감독은 '쟤네들 어떻게 살까.'란 걱정이 든다고 하더군요. 저도 어떠한 해결도 없이 즉흥 내지는 짧은 시간 내의 판단으로 결정된 두 명의 인물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스러웠는데 큰 서사는 접혔지만 앞으로 진행될 것이 행복만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그게 독한거 같아 음악으로 좀 풀기도 하고 했다고. 충격적인 부분의 묘사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충격이 아니라 아픔을 같이 생각하길 바라고, 장면 묘사에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충격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충격이 주어지진 않나 고려를 한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최근 한국 영화에서 고통을 보여줄 거까진 없는 부분에서도 폭력묘사가 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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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첫 장편 영화라고 하니, 다음 번에는 더 정갈하고 짜임새있는 작품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무래도 저는 다시 영화 외적 요소에 끌리지 않는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첫 GV(통용되는 다른 단어를 가르쳐주세요, 쓰고 싶지 않아요.)를 참여하기 전에 하도 요새 부천국제영화제의 GV 진상 이야기와 뜻하지 않은 듀나님의 GV 에티켓을 읽게되니 주늑이 들어서 질문을 하고 싶지 않단 생각만 잔뜩 들었어요. 그래도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함께 감독을 만나니, 한마디 묻게 되더군요. 꽤 흥미로운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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