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을 다 보고 나서, 막혔던 숨을 한꺼번에 내어 쉬면서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뺄 수가 없더군요.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면서 그 많은 감정들의 교차에 지칠 지경이었습니다. 내용은 1쿨 드라마를 하나의 영화에 담으려고 앞뒤 양옆 다 짤라내고 열심히 편집해서 압축본으로 담은것 마냥 쉴 틈을 주지 않더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형놀이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참 대단했습니다.

 

참신한 액션신, 특히 누구나 잊기 힘들 아파트 액션신은 현기증이 나더군요. 분명히 마카오박이 그 상황을 타개하긴 할텐데 상황이 만만치 않더란 말입니다. 와이어 액션들도 부피가 없이 심심한 컷으로 편하게 잡을수도 있었을 법 한데, 여러 방향에서 각을 힘겹게 잡아 눈호강을 했습니다. 최대한 손발을 이용한 격투신을 제하고, 영화에서 일어날법한 총격신을 배터지게 보여줘서 보고 나서 뻐근한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각각의 상황도 기가 질릴 정도로 흥미로웠습니다. 자기를 사랑해서 따라온 사람과,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쫒아온 사람을 한 공간에 집어 넣는 것은 도대체 어떤 악마랍니까. 또한 절묘한 상황에서 사실이 밝혀지는 4자 대화도 좋았습니다. 그것을 떠나서 무언가를 훔치는 영화 장르는 많은 변수를 임기응변을 통해서 넘어서는 인간승리의 현장이 되기 마련인데, 완전히 쫄딱 망하고 2차전을 벌리는데다 그 뒤의 결말도 확실히 닫아주는 영화라니요. (이런 시도가 장르인 영화중에 실패하는 영화가 몇 개 안 떠오르네요) 인물 하나도 아껴서 쓰는 것도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한국 경찰 대장(?)의 선택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혹시 복선이라도 깔린 것을 보신 분이 있는지요.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를 고려할 때, 내게 맘에 드는 장면을 몇 개나 짤방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떠올려 보는데 수도 없이 많은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잠깐 놓치면 마구 그런 장면들을 놓쳐버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막 2가지 정도가 떠오르는데 애니콜과 펩시가 처음 만나 차에 타고 가면서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장면과, 그 둘이 병나발과 글래스로 '짠'하는 장면이 재미있었습니다. 촬영 공간도 하나 같이 너무 예뻐서 하나 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펩시가 돌아와서 빨간 건물에서 바깥을 바라보면서 롱 샷으로 그 빨간 벽돌 3면을 찍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 군요. 언어 비대칭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4:4 탁자신)

 

한마디로 말하면, 도둑들은 제 취향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영화였고, 보는 시간 내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함께 보던 사람들이 씹던껌과 첸이 사고로 죽는 장면이나 뽀빠이가 필사로 태양의 눈물을 들고 도망가다가 오토바이에 그것이 박살나며 가짜라고 들어나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웃었지만, 저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후자 장면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다 아프더군요. 전자 같은 경우는 이미 이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죽음에 다가서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계속 주고 있어서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귀결되어 감을 보면서 그걸 피할 수 없음에 진저리가 쳐지더군요. 돈을 또 내고 같은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에 비에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는 마치 배트맨이 주인공이 아닌, 악당이 주인공이고 배트맨은 등장 악당의 악역(?)과 같은 느낌이 들어 배트맨에게 한 번도 감정이입이 된 적이 없었습니다. 가끔 글을 써보려고 악역을 만들 때 고심해야 되는 부분이 어째서 '세계멸망을 주도해야 하는가'가 있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악역의 세계 멸망의 이유가 전혀 납득이 되질 않더군요. 또한 인물들이 마치 삼국지의 장수들처럼 올곧아서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또한 장렬한 해피앤딩은 도대체 뭐랍니까.

 

그리고 초반부의 배수구에서 죽은 아이의 동생이 그리는 표식과, 배트맨 회사의 여자 중역의 어깨에 그려진 표식이 똑같아서 그 때부터 배신을 짐작해 어떠한 긴장감도, 재미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하세계에서의 배트맨이었던 (어린아이를 목숨걸고 지켜주었던) 베인이 어째서 나와서는 패악질을 해야되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간 재미있었던 부분은 무려 부르스 웨인이 집에 들어박혀서 사회부적응자가 되었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진짜 부적응자들과는 달리 주문 패스트푸드만 먹으면서 지내진 않았겠죠. 부자니까 예쁜 여자도 들어오고, 언제나 제기할 발판이 마련되어 있지 않덥니까.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결말부입니다. 약 3분 밖에 안남은 핵융합 폭탄을 바다에다 가져다 버리는데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바다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을 모든 사람들이 일부러(?) 쳐다봐서 시각장애 및 방사선 구이가 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또한 보통 핵폭탄보다 몇 배나 쎄다는데 쓰나미 같은게 밀려오지는 않는건가요. 이후 방사선 노출에 따른 기형아 증가 및 여러 증상 증가는요. 그나마 감명 깊은 말 중 하나였던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해야 돼(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가 고작 영웅이 폭탄 처리를 해준 이후 '신난다~!'라고 외치는 정도였답니까. (땅 속에서 나온 경찰과 법정 앞의 베인 무리와의 전투도 이해가 안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훨씬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베인 무리는 왜 경찰들에게 대놓고 난사를 하지 않았던 걸까요. 자기들끼리도 피도 눈물도 없었으면서.)

 

나만 재미 없었나, 하고 충격을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의 요건 중의 하나인 거대한 폭발과 장대한 전투씬 등이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소모되는 기분이 들어서 슬펐습니다. 다크나이트만 하더라도 아기자기(?)하면서도 잘 짜여진 장면들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겨뤄볼 시기에 개봉을 하진 않았지만, 제게는 도둑들이 다크나이트 라이즈보단 훨씬 좋았던 작품이고 그렇기 때문에 도둑들이 다크나이트 라이즈보다 선전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거나 제 생각입니다.

 

 ps. 드디어 듀게의 두 작품들에 대한 평들을 맘 편히 읽을 수 있겠네요. 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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