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게임, 나쁜 중독

2013.02.20 16:50

知泉 조회 수:3007

1. 전 게임을 잘 못해요. 발컨이 너무 심해서, 동생님이 디아블로 2의 만렙 캐릭터를 주셨는데 며칠만에 모든 장비가 사라지고 십분도 안되서 만렙 캐릭터를 죽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동생님은 "누난 안돼, 그냥 포기해"라고 하셨고 전 그냥 설정집만 읽어대죠. 와우 소설 재미있대요.


2. 언젠가 한 번 한 말인것 같은데, 게임이 뭐가 나쁩니까. 노력하면 렙업을 할 수 있다.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 그 정도로 제깍제깍 결과가 나오는 것이 현실 세계에 있습니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승진하기 어려운데 노력하면 렙업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3. 한국 사회에서 게임은 다른 여타의 취미생활처럼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고 현실에서 얻기 어려운 성취감과 인간 관계, 소통, 관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뺑뺑이 도는 청소년들에게 다른 대안이나 놀이가 없습니다. 친구와 함께 레이드를 뛰고 쩔해주고 고난을 함께 이겨 나가다 보면 우정도 돈독해집니다. 제가 사는 곳에는 놀이터가 참 많습니다. 주변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줄히 있지만 놀이터는 한가합니다. 게임 셧다운제 때 비판했던 이유가, 애들이 놀 수 있고 쉴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만들어 놓고 그런 짓을 하면 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잠 못자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고 게임은 무조건 12시 까지다? 사실 게임 셧다운제 말고 학생 수면 셧다운이 필요합니다. 애들은 12시 되면 자야해요. 칠팔년 전쯤 과외시장에서 뛰었습니다. 그때 안 사실인데 일곱 살, 여덜 살, 아홉 살짜리들이 하루에 과외 세 개를 뛰면서 저녁 식사도 과외 장소로 가는 차 속에서 해결하는 그런 교육환경이 게임보다 훨씬 더 문제입니다. 


4. 게임에 빠져 현실을 도외시하고 중독이 되여 잉여 히키가 되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 참 걱정스럽습니다. 차라리 몸을 움직여 뛰거나 공부를 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네, 그런  쓰잘 데 없는데 "빠져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를 하였으면 하죠. 그런데 한국 사회에 사는 학생들, 청소년들이 게임조차 하지 못한다면 숨쉴 구멍은 어디로 갈지 참 궁금합니다. 걔네가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재미와 자극도 있지만 그 속에서 성취감, 인정이 있기 때문이죠.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는 작은 진실이요. 친구랑 함께하면 어려운 레이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요. 게임에 대한 중독보다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에 대한 중독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5. 하지만 유아에게 게임과 같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에는 회의가 듭니다. 보상시스템 같은 심도있는 논의 말고, 그냥 애들의 세계에서 게임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알거든요. 시각-미각-청각-후각-촉각이 점차 확고해지고 그것을 활용해 세계를 넓혀가는 영유아와 이미 성정한 십대와는 다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애들에게는 잼잼 놀이도 맛보기 놀이도, 지점토 놀이도, 색풀 그림도 달리기도 다 이유가 있죠. 이 놀이들은 순수한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을 통해 성장 발달을 하는 과정입니다. 손가락 끝으로 미세한 가루를 흐트러뜨리면서 지점토로 사물의 형태를 옮기면서 손가락으로 구현을 하고 블럭 놀이를 통해 구조를 익힙니다. 터치 스크린 게임을 통해 얻는 것보다 저런 실제 세계와 만나 얻는 것이 더 많을 때죠. 하다못해 어떤 것은 위험하고 어떤 것은 아름다운지까지도요.


6. 게임 '중독'이 위험한 것은 중독된 콘텐츠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낮아져 현실 세계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건 게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중독은 여기에 속합니다, 건전하다고 권장받는 독서도 여기에 넣을 수 있습니다. 게임을 너무 못해서 할 수 없었던 저는 활자 중독, 책 중독이라 책에 넋이 빠져 30년 내내 읽고 읽고 읽고 또 읽어대느라 세계가 좁아졌어요. 좁아진 세계에 서투르기까지 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나면 "책 좀 그만 읽고 나가서 뛰어놀고 사람도 만나라 이것아"라고 하면서 등짝을 후려칠 것 같아요.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에 다른 가치를 희생시켜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주변에서는 그게 좋은거라고 칭찬하고 부러워하지만 당사자인 전 불편합니다. 


7. 다른 얘기를 하자면 연령에 따라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 좋겠죠. 사드의 '쥐스띤느'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고 훌륭하지만 초등학생에게 보라고 하기엔 참 뭣하잖아요. 나이가 들어서 읽는 '빨강머리 앤'도 참 재미있지만 초등학교 때 읽었던' 빨강머리 앤'이 더 재미있었던 것처럼요. 고전 좋잖아요.  좀 반듯한 말을 하는 책들이요.  세상은 부조리하고 세상은 나 혼자고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고 어쩌고...  달리 중2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때 굳이 막장 드라마를 읽을 필요는 없잖아요.  아무리 명작이라도 미시마 유키오는 사춘기때 읽는 것은 대략 조치 않습니다.  왜 "세상은 넓고 찌찔이는 많다"를 일찍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입니까.  어둠과 악은 그 자체로도 매혹적입니다.  강력합니다.  그래서 그 예민한 시기, 최소한 중학교 때까지는 찾아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시간은 어둠과 악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것들이 주는 매혹이 아니라 진부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윤리와 도덕을 충분히 알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은 명작입니다.  훌륭합니다.  평생 두고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초등학생 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호르몬이 미쳐날뛰는 그 때 사로잡히기 쉽죠.  그리고 평생 미친듯이 후회할 흑역사가...  오히려 이때 철학 서적이나 사회과학 서적, 인문 서적을 읽어두는 것이 한참 머리 잘 돌아갈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걸로도 충분히 어둠의 자식놀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대가 허세로 가득 차 니체를 읽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어차피 뭘 읽어도 중2중2할텐데요. 나중에 살면서 하이킥할 시간은 많죠. 그런 의미에서 자극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은 필요하다고 봐요. 왜 아동 도서, 청소년 문고가 따로 있겠어요. 그러니 게임이나 텔레비전 컴퓨터를 너무 일찍 접하지 않는 것이 좋겠죠.


8. 그리고 전 다른 의미로 어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제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쪽인데요. 어쩌다 보니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 컴퓨터가 없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인터넷을 시작했고 - 레포트를 써야하니까요! -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블로그가 시작될 무렵부터입니다. 어릴 때부터 인터넷 활동을 한 지인증니 가끔 고통에 몸부림을 칠 때가 있습니다. 세이클럽, 다모임, 프리챌, 천리안, 싸이 뭐 이런 것들인데요. 십대에 남긴 그 쪽팔린 기억들이 웹에 영원히 남은 유령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죽을꺼야~!!!!!!!!!!!!"라고 외칩니다. 저도 그래요. 옛날에 썼던 글들을 볼 때마다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얘넨 사라지지도 않아요. 데이터 유령마냥 언제고 다시 튀어나옵니다. 언젠가 천리안과 하이텔, 프리챌이 서비스를 종료하고 서버를 폭바했을 때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런 거 생각하면 너무 일찍 하는 것도 여엉. 이건 제가 다 한가인이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야동보다 걸린 글을 올린 흔적을 봐서 입니다. 다음 카페와 네이버 카페의 기록은 무섭습니다!


9. '중독'이 무섭고 나쁜 것은 '일상 생활에까지 악영향을 끼쳐서'입니다. 게임 중독만 있나요? 인터넷 중독도 있고 영화 중독도 있고 도박 중독도 있고 연애 중독도 있고 관계 중독도 있고 관심 중독도 있죠. 그 중독이 개인의 일상을 파괴합니다. 성인들도 중독에 대처하기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너무 자극적인 것들, 그러니까 달콤한 과자부터 몰래 마시는 술까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고 중독된 콘텐츠 말고도 세상에는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접하게 해주는 것이 권장되겠죠.


10. 그리고 우리나라 상황에서 게임이 더 무서운 것은 애들이 놀만한 게 없잖아요. 아주 어린 애들까지도요. 놀아도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것이죠. 학습 '놀이'가 아니고 '학습' 놀이이고.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놀만한 것은 현실적으로 게임이 상황이니까요. 


11. 게임은 나쁘지 않아요, 자극에 대한 중독이  무섭지요.


12. 이런 말을 하는 저 역시 각종 중독을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 칙칙한 현실보다 찬란한 거짓말을 좋아하지만 칙칙한 현실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어야 할텐데 어렵습니다. 


13. 게임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TED의 강연입니다.

http://www.ted.com/talks/lang/ko/jane_mcgonigal_gaming_can_make_a_better_world.html


보실만 하실겁니다.

14. 이 글은 두 가지 논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1) 게임은 무조건적인 해악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서 제공할 수 없는 노력에 대한 성과, 역경을 이긴 성취감, 동료애, 집단지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대 사회에 필요하다, 

a. 현재 한국 사회와 교육 환경에서 게임을 대체할만한 놀이, 스트레스 해소 창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미미하다.

2)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게임은 영유아에게 매우 자극적인 콘텐츠로 어느정도 자라기 전까지는 접하지 않는 편이 더 유익하다.

a. 오감을 발달시켜 세계를 확장시려야할 영유아에게 게임은 매우 자극적인 매체다.

b. 아이들에게 자극적인 명작 소설이나 자극적인 과자를 먹이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자극제라는 측면에서 영유아에게 게임 콘텐츠를 미리 하는 것은 위함할 수 있다.


맨 처음 올라왔던 글을 중점으로 볼 때 논점을 분리시키는 쪽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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