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4를 손에 넣은지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지난 주에야 아이튠즈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폰에 음악 넣는 방법을 몰라 (어제, 일요일 아침에 성공-_-;;) 유일하게 저장되어 있던 들을 거리인 영어오디오북들만 줄창 듣느라 지친 뇌를 식히기 위해 한국어로 된 재미있는 팟캐스트 없을까 눈 뒤집고 찾던 와중,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를 발견했지요. 리뷰가 많은 것을 보니 아주 유명한 팟캐스트라는 짐작이 갔고,   '김영하'라는 이름 또한 듀게에서 접한 바가 있어, 소설과는 아주 먼 독서습관을 가진 저도 '오! 이 사람 유명한 소설가 아님?' 아는 척 하며 냉큼 다운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완전 보물 득템.

 

20~50분짜리 팟케스트들은 김영하 작가님이 소설을 한 개 씩 골라 직접 발췌, 낭독하고, 작가에 대해, 그의 소설들에 대해, 문학에 대해, 더 나아가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무엇들을 들을까..하다가  소설치인 제가 밤 새며 읽은 몇 안 되는 정통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주제 사라마구편, 그리고 완전 새 책 상태로 제 침대 발치 책장에 놀고 있는 '달의 궁전' '뉴욕 3부작'의 작가 폴 오스터편을 다운 받았습니다.

 

처음 들은 녀석은 짧아서 만만하다는 이유로 선택 된 폴 오스터의 <빨간 공책> 편이었어요. 듣는 내내 '오? 재미있...?' 했는데, 역시나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긴 했지만 (역시 논픽션 취향?;;;)  하여간 참 좋았습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목소리도 좋고, 이것 저것 들려주시는 이야기들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정통 문학에 접근하려고 노력은 몇 번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저 같은 독자에게 최고의 문학입문 강의를 선사해 주시더군요.

 

 

그 중 듣다가 '헉!' 하며 놀란 부분을 받아 적어봅니다.

 

 

  소설가들은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하는데요, 소설가의 머리 속에서 나온 어떤 이야기를 일단 '글'로 쓰면요, 그 다음에는 어떤 마술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예전에도 보면 마법사들이 주문을 글로 써서 태우기도 하고 이러잖아요. 또는 그냥 말로 방자해도 되는데 꼭 그림을 그리고 글로 써서, 우리나라도 궁중에서 바늘로 꼽고 그러잖아요. 그건 왜 그럴까..보면, 글이 가진 마법적인 힘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써 놓으면, 바꾸기가 어렵죠. 그리고 그것은 어떤 힘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그 옛날의 마법의 주문에도 적용되었을거라 생각되는데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적인 성공작이죠. '백년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에 보면, 돼지 꼬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남자가 있습니다.....스프링처럼 생긴 돼지꼬리를 가지고 태어난 남자인데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마르케스는 그야말로 상상을 해서 쓴겁니다.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어요. 그리고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 소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그리고 그 사람은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죠. 그리고 그 책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뒤에, 마르케스는 수백통의 편지를 받은거에요. 누가 받은거냐면, 돼지꼬리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이 분에게 편지를 보낸겁니다. '저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모두에게 감추고, 살아왔는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에....나와 같은 인물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고맙다', 이런 내용이 전 세계 돼지꼬리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로부터 편지로 받게 된거죠.

 

그런데 마르케스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마르케스라는 작가의 상당히 독특한 점인데, 이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원래 돼지꼬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는 그런걸 모르고 소설에 썼더니 그 사람들이 말하자면 커밍아웃을 했다..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소설에 돼지꼬리를 가진 사람을 씀으로써, 비로소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보는거에요. 다시 말해서 자신이 소설에 돼지꼬리를 가진 남자를 쓰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원히 없었을거라는 것이죠.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거에요. 물론 있었겠죠. 현실적으로는 있었겠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을, 마르케스는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는겁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는 김춘수의 유명한 시 <꽃>인데요, 마치 이 시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입니다. 마르케스의 이야기를 좀 더 밀고 나가자면, 언어라는 것은 세상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죠. .... (이 뒤 세익스피어와 움베르토 에코의 관련 이야기가 따라 나오고....) 그만큼 언어, 이름, 성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명명하면, 그것의 이름을 붙이면,  또는 어떤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암흑속에 있던 이름없는 것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돼죠.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났던 사람들이 자기조차 부정하던 자기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겁니다.... 폴 오스터의 경우에도, 어떤 계기가 있죠. 영감이 있어 소설을 쓰는데, 그것이 현실에 어떤 일을 만들어냈다고 믿고 있는 것인데... 이런 일들은 실제로 소설가들이 많은 형태로 경험하게 되는 그런 일인 것 같아요.

 

 

 

 

전 소설가는 아니지만 역시 비슷한 일들을 경험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는데, 그 방식이나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마치 마술과 같은 경험 말이죠. 예전부터 종교에서 '기적'이라고,  신비주의, 영성 언저리에서는 신을 닮은 인간의 창조력의 발현으로,  C.J. 융은 동시성이라는 용어로,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는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 으로 일컬어지거니와, 심리학이라면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니 예전에는 분별되지 않고 모호하던 패턴들이나 무심히 지나가던 사건들이 지각, 인지되는 것'으로, 현대인들은 그저 '우연'으로 여기곤 하는 그런 현상들 말이죠. 다만 제가 저런 경험을 한 때가 거의 정신상태가 깨끗하고 영감이 좋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주의집중 이상의 뭔가가 있으리라 개인적으로 우기고 있습니다만..

 

하여간 저 팟캐스트를 듣던 날은 화장품이나 피부미용, TV프로 관련 흥미로만 무장한 잡글을 주로 날리던 제가 어쩐 일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게시판에 '경쟁'과 관련된 (나름은 진지한) 꿍얼거림을 잔뜩 써 놓고 새벽에야 잠에 든 다음날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다 늦게 듀게에 들어와서 제 글에 대한 반박 리플들을 보고, 고민 하며 답글을 때리다 말고 다시 일하러 가면서, 평소라면 답답함과 욱함의 배설성 잡글 쓰기로 그치고 넘어갔을 '경쟁'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자세'에 대한 주제를 좀 더 각 잡고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생각을 깊이 해보려 하니 관련 주제를 체계적으로 사고하기에는 제 지력과 사고력과 관련 지식이 턱 없이 부족하다는걸 절감하기 시작했더랩니다. 

 

하여간 일이 끝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늘 하던대로 근처 대형서점을 가로질러 오는데 (머리도 식히고 책도 쇼핑하고. 물론(?) 쇼핑한 책은 안 읽습니다-_-;;), 제가 100권 리스트에 넣어놨던 <소비중독 바이러스 어플루엔자> 책이 눈에 띄더군요. '저 책 딱 사서 제대로 읽고 올해는 과소비를 줄이자. 이번에는 100권 프로젝트 건도 있으니 다 읽을꺼야!'라는 핑계로 또 냉큼 질렀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이럴수.....방금 전에 제가 고민했던 내용들과 어마어마한 싱크를 자랑하는 내용의 책이더군요.   인간, 시민에서 소비자로 진화한 우리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경쟁하며 일일 그리고 일, 일벌레로 산 끝에 겨우 돈을 획득, 그나마 획득한 돈으로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중한 시간과 휴식 대신 쓸모 없는 물건을 충동구매, 그렇지만 왜인지 점점 더 복잡하고 불행해질 뿐. 그래서 점점 발전하는 기술과 효율성과 물질적 풍요 와중에도 점점 더 시간 없고 스트레스는 쌓이고 계속 허무해져만 가는...그러면서도 필요는 없지만 욕망은 그득 담은 소비는 그치지 못하고, 그 쓸모없는 것들을 사기 위해 다시 경쟁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책의 저자들은 이런 정신병적이고 전염성도 막강한 비정상적 행태를  '어플루엔자 Affluenza'  (풍요라는 뜻의 어플루언스 + 인플루엔자의 합성어)라는 병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어플루엔자 병에 대한 정의, 각종 치명적인 증세들, 발병의 원인 분석, 그리고 치료법 (이 부분은 제 높은 기대에 비추어 그닥 만족스럽지 않습니다만..원래 잘못, 오류, 병에 대한 분석은 대단히 지적이고 정확하게 나오지만 치료, 회복과 관련된 방법론은 제대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그러려니..하고 넘어갔..)과 대안 - 새로운 사고방식, 대안적인 환경과 공동체-의 모색을 풍부한 사례들과 함께 재미있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전날 잡글을 끄적이며, 그리고 리플들을 읽으며 생각 했던 바로 그 내용들이 풍부한 사례들과 함께 훨씬 깊이 있게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어쩜 내가 지금 가장 필요한 책이 이렇게 타이밍 좋게 내 손에 들어왔을까..'  감탄하며 읽어나가다가, 바로 그 날 제가 어설프게 생각하려 노력했던 몇몇 사고의 조각들이 너무 깔끔하고 명확한 언어로 우아하게 쓰여진 몇 줄의 문장을 읽으면서는 약간 소름까지 돋았을 정도였지요.

 

그리고,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해서 집으로 걸어오는 긴 시간 동안 들은 팟캐스트가 저 폴 오스터의 '이야기의, 글의 마법같은 힘'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들으면서 '헐..그래, 정말 마법이네...타이밍 참...' 중얼거렸지요. 마침 그 언저리에 마르케스의 책을 100권 리스트에 넣냐 마냐 가지고 고민까지 했었던 참이었으니. 마법같은 우연이라고 우기기에는, 문화유산 답사기 머릿말에 등장한 이후 흔히 통용되는 문장인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의 실생활 적용 케이스 정도로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만, 그래도 직접 당한 제 입장에서는 찌걱찌걱 놀다 가곤 하는 게시판에 '경쟁 따위로 랩을 하다니 X친거 아냐?' 하고 반쯤은 재미로 욱하며 쓴 잡글 마저도 제 삶을 제가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힘을 발휘하고 있구나..역시 글이 뭔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게 맞긴 한가봐..란 생각을 하고 싶어지다가, 예전에 제가 경험했던 비슷한 일들도 새록새록 생각이 나니 아예 확신으로 굳어지게 되더군요.

 

그러고보면 아이폰 속에 음악도 없고 다른 들을 꺼리도 없어 오며 가며 꾸역꾸역 들어 치워 100권 읽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완독 책이 된 <신과 나눈 이야기> 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은 곧 신이며(-_-), 신이 창조력을 가진 것 처럼 인간도 정확히 똑같은 창조력을 가진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우리의 삶을, 그리고 이 세상을 계속 새롭게 창조해나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는 첫째 진실로 믿는 생각을 떠올리고, 둘째 그것을 말로 언어화하며, 마지막으로 행동으로 옮겨 물질화함으로써 우리의 창조를 완성시킨다.'   글은 말 보다 더 구체적이고 물질화되고 고정된 언어이니 힘이 더 세겠지요.

 

제가 요근래 관심 있어하는 책들이 그 언저리 분야들이어서 비슷비슷한 내용이 겹치는 것일테지만, 하여간 제 경험과 제 글과 책 속의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이 얽혀 마법과 같은 우연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드니, 책 읽어 나가는 재미도 새록새록 생기고, 음... 좋았습니다.  100권 책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하고 그 결심을 어설프게나마 계획까지 짜서 여기에 글로 쓴 것은 2011년에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책도 더 좋아졌어요. 이제는 그냥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읽어' 줄께.. (-_-;;;) 아,  이 일을 겪으면서 새로 한 결심이라면, 읽고, 생각한 것들을, 짧아도 좋으니까 많이 많이 '쓰자'일까요. 써서 글로 남기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은 걸려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니까.

 

 

하여간 '현대사회의 과소비는 전염병이자 정신병이다!'책을 스타벅스에서 비싼 커피를 마셔가며(-_ㅠ) 읽으며 동의하며 관련 잡글을 써야지 싶어 듀게에 들어왔다가, 밑의 '좋아하는 커피잔, 머그잔' 관련 글들을 읽고는 베어터스바하 스마일 점보 머그에 지름신이 들려서 또 한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껏 물잔 하나에 근 4만원 거금을 쓰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행히  '에잇!! 질렀다 치고 이 돈 저축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5만원을 스마트폰 적금에 넣고 나서야 겨우 참은 후 이 글을 쓰고 있지만요. 그러고보면 이 스마트폰적금 (쇼핑 했다 치고 쇼핑 아이콘을 누르면 5만원이, 커피 마셨다 치고 커피 아이콘을 누르면 5천원이 적금되는..) 녀석도 '오오 아이디어 재미있는데? 저런거라면 IT기술의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활용이라 칭찬할만 해. 재밌겠다 ㅋㅋ' 생각하며 아이폰을 지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되었던 녀석이군요. 음, 내 손에 들어온지 겨우 한 달 밖에 안 된 아이폰 녀석..내 삶 속에 잘도 스며들었구나. 무섭다. 어플루엔자 치료는 무슨...나는 물건의 노예..잡가시의 앱등이..역시 전 생각과 글이 행동으로까지 일치되기까지는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가열찬 정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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