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에 대해.

2012.10.23 20:27

drlinus 조회 수:3606

제가 안철수 후보에 대해 끄응.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 즈음입니다.
당시 박원순 후보와의 단일화라면 단일화는 어찌보면 안철수 후보가 공개적으로 정치력을 보여준 일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입지를 극대화했고 그 입지를 바탕으로 박원순 후보와 논의를 했고 타협을 했고 박원순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치력을 발휘했죠.
물론 둘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는 지.
누가 누구를 설득했고 타협을 위한 결정적 역할을 발휘했는 지는 모르기 때문에 당시의 일이 안철수 후보의 노련한 정치력. 
이라고만 평가하기엔 주저함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한 일이 되었죠.
물론 개인적 판단으로는 상대가 박원순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만.  :)

이런 일이 있기 이전입니다.
당시 안후보 주변에는 소위 6인 모임이라는 멘토단이 있었는데 그들 역할과는 상관없이 제 관심을 끌었던 건 다음의 대화 내용입니다.
물론 밖으로 드러난 내용이 짧기 때문에 이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인하대 강연에서 나온 놀라운(-_-) 
얘기들과 결합하면 적어도 제가 안철수 후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시너지 아닌 시너지가 발휘됩니다.  -_-;;

당시 안철수 후보는 서울시장을 하고 싶어했지만 김종인씨가 만류를 합니다.
정치를 하려면 일단 총선 출마를 하라고 권유하면서 말입니다.
이에 대한 안철수 후보의 답변이 제가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 끄응. 하게 된 대목입니다.

"국회의원은 하는게 없잖아요."

이에 대해 김종인씨는 의원 한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많다는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는 또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정치는 낭비.  서울시장은 행정이니 잘할 수 있다."

당시 대화에서 윤여준씨나 법륜스님 모두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의미와 명분이 없고 에너지만 분산시킨다고.

안철수 후보에 대해 착한 이명박이란 표현이 있는데 저도 뭐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하는 것이 없고 정치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매우 애석하게도 가카의 기본 인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가카의 여의도 혐오증이야 예전부터 유명했으니까요.
실제 가카는 퇴임 시기가 다가오는 지금까지 행정부 수반으로 입법부를 상대로 무언가를 설득하고 타협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여당이 알아서 협조하는 모습을 늘상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카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입법부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 저의 추측이지만 그닥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 국회를 상대로 논의하고 설득하고 타협할 이유가 전혀 없겠죠.

정치.
아니 정치력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
정치력이란 표현이 워낙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한 문장으로 이것이다.  라고 말하는 건 상당히 무리겠죠.
그나마 근사치는 이해 세력(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포함이 되겠죠)들이 다양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리더쉽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거고.
하나 더 첨부하자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관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워낙 욕을 먹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장 기본인 입법을 좀 소홀히 하는 의원들이(-_-) 있어서 문제지만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이 가장 많이 발휘되는 지점은 바로 갈등 조정입니다.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것에 좀더 치우진 결정이나 논의를 이끌어 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마구잡이로 전횡을 하지는 않아요.  
일부를 제외하면 말이죠.

보기엔 딱히 능력도 없어 보이고 언론에 노출되는 모습만 보면 한심 그 자체인 의원으로 보이는데 지역에서 계속해서 당선되는 이가 있습니다.
반대로 중앙당이나 국회 안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고 언론에 보이는 모습을 보면 참 괜찮아 보이는데 재임에 실패하는 이가 있습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바로 지역 현안 처리 능력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국회의원은 지역구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관악 시절의 이해찬 의원이 아닌 이상 지역구를 등한시할 수 있는 의원은 
거의 없으니 이건 국회의원의 업무에 포함되어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지역구 내의 현안과 갈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좋은 조정 능력을 발휘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역에서 연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지역구 내의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좋은 정치인.  괜찮은 정치력을 가진 정치인이라 평가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판이란 동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지저분하고 속물들만 득실거리는 것 같지만 - 실제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 그 안에서 수많은 설득과 타협들이 오고 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그리고 중앙에서 수많은 일들을 합니다.

또한 입법 행위를 제외하면 가장 큰 역할이라 할 수 있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
이건 정말 매우매우 중요한 포인트고 때로는 입법 행위보다 이것이 더 중요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통령 후보.
정치를 낭비라 생각하는 대통령 후보.
좀 심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인식을 가진 분은 안철수가 아닌 그 누구라도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경력없이.  혹은 정치적 경력없이 대통령이 된다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이나 지자체장이 행정가라 생각하는 듯 하지만 수장은 행정가보다 정치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시장의 예를 들며 가능하지 않냐.  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박원순 시장은 오랜 기간 NGO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회적 활동을 했고 그 활동들 속에는 수많은 정치적 행위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록 정치권 밖에 있었지만 정치권과 싸우고 논의하고 설득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들을 충분히 해온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이분이 꽤 좋은 시장이 될 것이라 당시에 생각했었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만족하는 편입니다.

다시 안철수 후보로 돌아와서.
안철수 후보가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상당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대통령 중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는 이승만 대통령 딱 한명입니다.
당선 이후 매우 당연하게도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니 자유당을 만들어 자기 정권 유지하려고 했죠.  
그리고 이후의 일들이야 뭐.  -_-;;;;

안철수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정당을 만들지 않아도. 만들어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지 않는다면 책임 정치가 사라지게 됩니다.
대의 민주제 아래에서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기본적으로 정당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런데 무소속 대통령은?
심지어 단임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무소속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어떤 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정당을 만든다고 해도 문제죠.
새롭게 정당을 만든다면 새누리당. 민주당에서 일단 헤쳐모여가 시작될텐데요.
이 과정이 얼마나 시끄럽고 복잡하고 소모적일까요.
물론 필요하면 해야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최소한 1년 정도는 시간이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 지도 못할테고 
결과적으로 여당이 되지 않은 정당들의 협공에 상당한 정치적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대통령 안철수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제가 박근혜 후보에 대해 딱 하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은 한나라당 대표를 하던 시절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했던 정치적 합의를 모두 지켰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양반이 좀 안타까워요.
아버지를 기본으로 한 역사 인식만 개선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정치인이 될텐데. 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늘상 있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된다면 정치. 경제. 민주화 등 모든 것을 집약 아닌 집약하고 있는 박정희 프레임에서 우리나라가 좀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또한 그누무 좌파. 빨갱이 타령 등의 망령에서도 좀 벗어날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고.
뭐.  너무 나이브한 생각 같기도 합니다만.  -_-;;
여튼 그렇다고 제가 지지하지는 않겠지만(-_-) 그것과는 별개로 좀 괜찮은 보수 정치인과 보수 정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는 지라.  쫍.
하지만 끝까지 못하네요.

@ drl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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