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는 과연 무적인가.

2012.12.20 04:54

drlinus 조회 수:2871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세부 데이터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 쓰는 내용들은 모두 지난 선거들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87년 직선제 이후 치뤄졌던 대선과 총선 결과들을 이리저리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매우 많고 다양한 분석들과 연구들이 
존재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우선 당시 썼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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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인구사회학적 변수들 중 연령은 큰 영향을 미치지만 계층은 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계급이나 계층 투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거의 주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투표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투표 의무감과 지지 정당 유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정책 차이와 같은 합리적 변수는 투표 참여에 미치는 영향이 작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여년간 투표 행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투표 결정 요인으로 출신 지역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것.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개인적 투표 결정 요인들입니다.
실제 선거에서 정당이나 후보자의 승패를 결정하는 건 집합적 투표 결정 요인입니다.
이 두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투표 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가 
선거에서 집합적 선거 결과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87년 이후 네번의 대선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집합적 투표 결정 요인은 
신뢰도. 위기 해결 능력. 행정 능력. 도덕성과 같은 후보자 요인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정당 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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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얘기를 해보죠.

대선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지역은 항상 논란이 되는 영호남이 아니라 서울.경기 지역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그래도 승리를 노려볼 수 있었던 이유는 PK가 뒤집어질 것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승리를 했던 정당이 민주당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천은 대체 왜?  라는 갸우뚱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인천의 패배는 그래서 더더욱 뼈아픕니다.
인천. 경기 모두 졌죠.

게다가 서울은 이겼다고는 하지만 표차가 고작 198,006표 차이 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올해 대선 구도에서 서울에서 이 정도 표차이로 이겼다는 건 사실상 패배라고 봅니다.
수도권에서 5% 이상 차이를 벌리지 않으면 승리를 할 수 없거든요.
충청이나 강원을 환상적인 지역 공약으로 가져오지 않은 이상은.
하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도권 득표 상황으로 인한 패배라고 생각합니다.

경상도 인구수 많고 새누리당 지지율 높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호남 지역 단결력과 수도권이 충분히 상쇄를 시켜줄 수 있습니다.
즉. 지역구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선 승리를 좌우하는 지역은 수도권이 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대통령이 승리했던 지난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수도권에서 모두 승리를 했었습니다.

서울 : 345,581 (6.35% 승리)
인천 : 64,561 (5.26% 승리)
경기 : 310,002 (6.47% 승리)

이렇게 더 득표를 했고 총합 720,144표 차이를 수도권에서 얻어냈습니다.
참고로 두 후보의 표 차이는 570,980표였습니다.

이쯤에서 거칠게 결론을 내리면 대선에서 무적은 경상도가 아니라 수도권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 총유권자수는 19,978,488명이었습니다.
즉. 유권자의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있습니다.
위에서 5% 정도 차이를 벌리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고 했었는데 5%면 대략 백반표 차이입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5% 이내로만 지면 대선 승리라고 예측을 했었는데 결과는 오히려 인천.경기 승리.
서울도 사실상 승리에 가까운 득표를 보였습니다.


지역 투표의 변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Alford의 균열 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계급 균열이나 계급 투표의 강도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지수인데 우리나라에선 계급 투표가 유의미한 결과를 보인 
선거가 없기 때문에 지역 투표와 같은 집단 투표의 강도를 측정하는데 주로 사용합니다.

영호남 지역균열을 대선만 놓고 보면.

1992년 : 72.30
1997년 : 67.23
2002년 : 65.28
2007년 : 61.17

지난 총 네번의 대선에서 지역 균열 지수는 10% 정도 감소했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역 투표라는 요인에 이념 투표. 연령 투표 등이 꾸준히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념 얘기를 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원래 보수적인가?
보통 영남은 보수 성향이고 호남은 서울.경기 지역인들과 같이 진보 성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한미 관계. 대북 정책 등과 같은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념적 차이가 지역 투표를 가져오는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이념적 차이는 지역 투표를 가져오는 원인이 아니라 지역 투표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정당 지지와 이념과의 상호작용 모형이란 것이 있는데요.
여기에서 보면 출신 지역별로 이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념 차이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념을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결과에 따라.
다시 말해 영남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새누리당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보수적이라 생각하고 
호남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민주당이 진보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진보적이라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념 투표는 1997년 대선에서 미약하게 나타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지역 투표나 정당 지지 투표와는 
다른 새로운 투표 행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도 지역구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이념 차이 보다는 김대중. 김영삼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별로 나타나는 이념별 차이는 2002년 대선부터 호남의 진보성. 영남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약간의 차이가 
발견되기 시작했고 이후 계속 커져갔습니다.
한나라당이.  그리고 새누리당이 철지난 얘기를 또하냐 싶은 빨갱이. 종북좌파 타령을 끊임없이 해왔고 이번 대선에도 
여전히 녹음기 틀어놓은 건 이게 선거 결과에 유의미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정당간 이념 분화의 시작은 DJ 정부의 햇볕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여야간 이념 논쟁.  그리고 경쟁이 시작되었고 참여정부에서는 이런 외교.안보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정책의 영역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이렇게 햇볕 정책으로 시작된 이념 경쟁 덕분인 지 한국인의 주관적 이념 성향은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외교.안보적 이슈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결정됩니다.
경제민주화. 복지. 소수자 문제. 등등의 사회경제적 영역에 의해 이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지 정당의 설득 효과로
(새누리당의 빨갱이. 종북좌파 타령이 대표적인 예죠) 인해 한미 관계. 대북 지원과 같은 외교. 안보적 이슈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념 성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연령입니다.
하지만 출신지에 따른 영향도 적지 않고 특히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지지 정당의 이념을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지역투표와 이념투표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참담한 마음이 커서 그런지 중언부언하며 글만 길어지는 것 같은데 결론은 이렇습니다.

대선에서 무적은 수도권이다.
이번 대선 패배는 수도권 패배로 인한 것이다.
지역구도는 지난 15년동안 조금씩이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념투표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인의 주관적 이념 성향은 외교.안보적 이슈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결정된다.
이념 성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연령이고 연령 투표는 분명하게 존재하며 앞으로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20대. 30대. 40대까지.  그리고 50대 이후의 투표 성향이 분명하게 다르다.

끝으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자료를 하나 적습니다.
연령집단별 이념 성향 변화에 관한 것인데 대선 관련된 것만 적어봅니다.


@ drl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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