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반은 낚시, 반은 진짜입니다. 어 뭐 굳이 따지자면 75%쯤이 진짜.

2월인가, 현관에 물이 차올랐어요. 반지하에 처음 살아보는 저는 검색해보다 이게 결로현상이라는건가, 싶어 갸우뚱하고 듀게에

결로현상 수습법을 문의하기도 했죠. 근데 웬걸, 장판에서도 물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거죠. 해서 주인집에 연락했습니다.

이 집이 지은 지가 20년쯤 된 다세대주택이라 노후로 인해 고장난 곳이 많아요. 12월쯤엔 동파로 보일러가 고장나 새걸로 갈아야 했죠.

물이 새어나온 원인은 수도관 부식으로 인한 누수=▽= 반지하집이 저 말고 한 집 더 있는데 두집 다 난리가 났듬. 근데 두집 다 결로현상이겠거닠ㅋㅋ

입주자들이 영민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보통 상상할 수 음는 원인이잖슴까. 해서 뭐 물을 퍼내고 주인집 내외가 네 달간 즈이집 비었을 때마다 왔다갔다함서

스펀지로 물을 짜내고-_- 하는 수습과정을 거쳤지만 될 리가 있겠어요. 마치 물을 흠뻑 끼얹었는데 옷 세 겹 껴입은 채로 음지에서 몸 마르기를 기다리는 격.

쥔집 아주머니는 스펀지수습을 하다 손이 움직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대대적 공사를 단행하기로 합니다. 해서, 지난 주 통보.


-한 열흘만 아버지 집이나, 친구 집에 가있으면 안될까요?

-뭐라굽쇼? 무슨 일인데예?

-아니, 내가 물을 짜내다 짜내다 도저히 안되겠어서ㅠㅠ 수도관도 재배열하고, 화장실 타일도 새로 깔고, 변기도 새걸로 갈고, 아무튼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려구요.

-헐 갑자기 이러시는게 어딨음ㅠㅠ전 갈데가 없는 몸인데ㅠㅠ즈이 고양이들은 어쩌라굽쇼ㅠㅠ

-(고민고민)지금 옆 반지하방이 비었거든요. 아쉬운대로 거기 가 있으면 어떨까?


보여주시길래 가 봤지요. 말이 옆방이지 대문이랑 마당을 저 혼자 쓰기때문에 다른 세대 사람들이랑 마주칠 일이 없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어요.

방이 하나라서 짐이 다 들어갈지 어떨지 걱정되긴 했지만, 아예 새로 이사를 하기에는 별로 여의치 않은 상태고, 그렇다고 어디 부빌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선택의 여지가 음썼어요. 그러마고 대답했습니다. 그게 그저께 일. 


부탁할 사람도 선별의 여지가 음썼어요. 베프와 동네형과 싸부에게 SOS를 날렸습니다. 

해서 오늘, 베프와 동네형에게 맛난 삼일회관 부대찌개를 사멕이고(면사리, 햄사리 추가요!!) 일을 시작. 

이게 독립 후 세 번째 이사인데, 베프와 동네형은 이 세 번의 이사를 모두 함께했었죠. 동네형 왈, "너와 함께하는 여름은 왠지 스펙터클하다는 느낌이야..."

짐 이동거리는 약 10m 남짓이긴 한데, 이동거리가 10m건 100m건 이사는 이사여요, 겁나 힘듦. 

싸부와 동친님도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싸부는 시방 일 두 건이 꽉 막혀있고 말일크리! 동친님은 배탈크리!

머물 방에는 지금 장판도 안 깔려 있는데, 쥔집이 지금 제가 쓰던 큰방 장판 갖고가서 깔아 쓰곸ㅋㅋ 나중에 공사끝나거든 그거 또 갖다 쓰라는겈ㅋㅋㅋ

장판과 벽지에 물기와 곰팡이가 흥건한데말임다...못 갈아주겠단 심산...

아 뭐 그건 차치하고, 쥔집말대로 즤집에서 장판을 빼다 깔자면 일이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너무 복잡해지니 저는 그냥 열흘만 외국생활하기로! 

영국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되는 동네형이 야 괜찮아! 신발신고 다니고 그래도 안 죽음! 저는 또 팔랑팔랑해져서 케케케케그래! 외쿡스타일!!!

이러고 훌렁훌렁 시멘트바닥에 짐들을 부려놓기 시작합니다. 베프는 또 엄마모드로 제 옷이며 구두며 잡다구리한 물건들이며 다 참견하면서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래요. 저는 그때마다 추억의 물건이야, 엄마가 사줬어, 어렸을때부터 쓰던거란말야, 등등의 드립을 쳐서 웬만큼 방어해냈습니다고인드립짱짱


해서 두 시에 시작한 일이, 다섯 시가 좀 못 돼 어느정도 수습이 되었습니다. 그냥 짐을 싹 빼다, 쌓아놓고 부려놓은 상태. 

베프는 약속이 있어 가고, 지친 동네형은 약속을 캔슬하고 저랑 술을 마셨습니다. 저도 한 건 별로 없지만 허리가 끊어질 듯하고 뒷정리할 일이 아득해 일단 마심.

지인이 아이팟 구해오면 열린책들 이북어플 아디 공유해주겠다 그래서 동네형 영국있을때 남는 아이팟 달라했었는데 살뜰히 것도 챙겨다 주고, 부려먹긴 내가 부려먹었는데 술도 사줬습니다. 아마 제 팔자 꼬이기 시작했을때부터 실시간으로 쭉 봐온 자로서, 얘는 왜 인생이 맨날천날 이모냥 이꼴일까 쯔쯔, 했나봄. 흐흐흐허허허허허ㅓㅓㅓ


청하 한 병 반을 마시고 동네형이랑 빠빠이.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데 취기도 하나 안 오르고, 사위어가는 낮이 영 재미도 없고, 그랬습니다. 벱후가 오늘 저를 첨 만나자마자 침을 뿜었는데, 몹시 뚱뚱하고 꾸질하고 못생긴 동네아쥠의 몰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우린 서로 못생겼다고 늘상 엄매깜짝이야 그럽니다). 노동모드고 뭐고 그냥 생이 전체적으로 붓고 못생기고 충충한 날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이 조금 그러했나, 그랬었드랬어요. 해서 낯선 문 앞에서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낯선 집에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부려진 내 4년 간의 삶의 궤적을 둘러보며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자아, 이제 어디부터 뭘 시작한다.


문득 그냥 아빠한테 가서 열흘만 빌붙다올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6월에는 아부지의 그녀도 고국으로 가있다고 하니 마침 딱이잖은가, 싶기도 하고.

이 장판도 없는 방에서 열흘이나 부빌 수 있으까. 


어 근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

 

-하긴 뭘 해, 내가, 여기서, 이릏게, 잘. 살지.


떨쳐일어나 짐들을 조금씩 풀고 옮기고 청소하고 시멘트바닥에 신문지 깔고 이불에 아토케어 돌리고 할종일 먼지 뒤집어쓴 루이죠지 물티슈로 깨꼿하게 꼼꼼하게 발닦아주고, 뽀송한 옷 준비해 종일 찌든 몸을 따순 물로 말끔히 씻어냈지요. 다이소 가서 레자로 된 거실화도 사왔어요. 원래 집으로 옮겨도 이제 우아하게 거실화 신고 댕겨야지그럼루이죠지 모래가 안밟히겠지


인터넷도 티비도 열흘간 못하나부다 했는데 동네형이 술마시면서 테더링이란 걸 알려줘 넷북으로 컴터를 할 수 이쯈! 해서 지금 둔눠서 이걸 쓰고 있었는데 싸부가 오늘 못 도와줘 미안하다고 바베큐랑 와인을 사들고 왔군요. 아까 깡술먹어서 허기진 탓에 으냠냠냠 먹고.  

루이죠지랑 싸부랑 제 침대에 널부러져 있어요(난 어디서 자지?). 저는 오늘따라 당췌 취하지도 않지말임다. 싸부가 어깨에 파스붙이고 루이한테만 다정한 척 토닥토닥하는 걸 보는게 웃겨요. 어쩌면 결국 


내 공간에서, 나의 것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생의 비루함을 감당하는, 해온, 할, 건지도 모르겠군요. 적어도 어떤 뿌듯함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듯. 그 뿌듯함조차 비루할지라도, 이런 위안을 연료삼아 저는 내일도 발딱 기상하겠쬬. 그래서 사실 저는 오늘도 정말로 기운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제가 듀게에서 보고 소개해준 SBI 합격했다고 방금 벱후가 알려줘서 이래저래 +가 되어 또이또이 이상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니 날이 좀 더워져 생이 더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수는 있으나 모두 꼼꼼히 따져보면 음청 기운빠져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는 이야기.


어 그래서요 저는, 지금 한뎃잠을 자러 갑니다. 모두 푹, 주무시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