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컨피덴셜을 다시 봤습니다

2011.06.02 14:33

로이배티 조회 수:3333

- 벌써 14년이나 묵은 영화이긴 하지만 어쨌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는 건데, 왜 진작에 다시 보지 않았나 싶더군요. 정말 재밌고 참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커티스 핸슨의 앞날은 탄탄대로로만 보였는데 말입니다. 어제 저녁 밥 먹으면서 잠깐 틀어 놓으려고 한 거였는데 그대로 그냥 끝까지 달려 버렸네요.


 - 50년대 미국이나 그 근방을 무대로 한 형사물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장 차림의 형사들이 예쁘게 생긴 옛날 자동차를 몰고 고풍스런 차림새의 미인(...)들과 얽히는 그림 자체가 참 좋구요. 또 핸드폰, 컴퓨터, 인터넷, CCTV, DNA 감식 같은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옛날 탐정'스러운 수사도 그 나름의 멋과 재미가 있고 말입니다.


 - 다시 보면서 가장 감탄스러웠던 건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것 저것들을 참도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놓은 감독의 솜씨였습니다. 건조한 하드 보일드(혹은 필름 느와르) 형사물의 분위기와 인종 차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특히 그 성폭행 피해자 여성... ㅠㅜ;), 그리고 이리 망가지고 저리 망가졌다가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개심하여 힘을 합하고 우정까지 쌓아가는 끈적한(?) 남자들 이야기에다가 오우삼을 방불케 하는 총격전 액션씬들까지. 어찌 보면 톤이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데도 그게 어딘가 특별히 튀는 느낌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넘어가진단 말이죠. 이런 감독이 어쩌다 요즘 이렇게 소리 없이 묻혀 버렸는지 원.


 - 이젠 좀 묵은 영화다 보니 완전 뽀샤쉬한 주연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특히 그 때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 하고 있었던 러셀 크로우가 그렇죠. '퀵 앤 데드'에서 샤론 스톤이 완전 섹시한 배우라며 극찬을 퍼부었을 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왜? 어디가? 무엇이?' 라는 생각 밖엔 안 들었었는데. 이 영화에선 아주 근사하죠. 단순, 우직, 거칠면서도 순수한, 충직하고 덩치 큰 개(...) 같은 성격의 버드 형사 캐릭터와 아주 잘 어울릴뿐더러 그냥 비주얼이 좋습니다. 특히 '여자를 괴롭히는 놈들은 죄다 총알을 박아 주마' 라는 식의 무대뽀 캐릭터 덕에 (제 주변) 여성 관객들의 호응이 유난히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뺀질거리는 스타 경찰 역의 케빈 스페이시도 연기 참 좋았구요. 특히 가이 피어스와의 대화 후에 정신 차리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나 형사 반장의 총에 맞은 후 가까스로 '롤로 토마시'라는 말을 뱉은 후 '넌 이제 이 한 마디 땜에 x될 거임ㅋ' 이라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가는 장면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이 배우도 이후로 커리어가 그다지 아름답진 않습니다만(...) 가이 피어스는 완전 맞춤형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이 배우가 잘 생긴 듯 하면서도 어찌보면 노골적으로 찌질-_-하게 생긴 면이 있는데 그게 이 역할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이 캐릭터가 사실 여러모로 좀 답답하고 찌질한 구석이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필요하면 주저 없이 나쁜 놈들(?)과 협상도 던지고. 어쨌거나 머리가 좋고. 그냥 얼굴 생김새와 표정 연기만으로도 너무 완벽해서 더 이상은 필요가 없어 보일 지경.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세 캐릭터가 모두 매력적이라는 겁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얽히고 싶은 사람은 그나마 끽해야 좋게 봐 줘도 케빈 스페이시 정도 밖엔 없지만;;

 + 더들리 반장 아저씨의 경우엔 '꼬마 돼지 베이브'의 베이브 주인 아저씨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이 되어 처음 이 영화를 볼 땐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4년이 흐르고 다시 보니 그래도 괜찮네요(...)


 - 얼마 안 되는 개그들도 많진 않지만 타율이 높아서 기억에 잘 남구요. 라나 터너에게 '네가 아무리 라나 터너처럼 꾸며도 넌 창녀일 뿐이라능!' 이라고 외치다 개망신 당하는 장면에서 이미 다 알고도 일부러 냅두고 뒤에서 히죽거리는 케빈 스페이시의 표정이라든가 마지막 싸움 직전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 경찰이 되었지.' '곧 꿈을 이루겠구먼. 아버지께서 근무 중 순직하셨지?' 라는 대화라든가... 아. 적어 놓으니 참 재미 없네요;


 - 유일하게 볼 때마다 거슬리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엑슬리가 킴 아줌마에게 낚여서 뒹구는 장면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좀 깨요. 나름대로 심리적 동기는 조금 깔아놓은 것 같긴 하지만 상대방의 정체(?)를 충분히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충동적으로 데굴데굴거리는 게 캐릭터의 성격상 이해가 안 가서리. 물 흐르듯 흘러가다 여기서 갑자기 레코드 판이 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 모텔에서의 마지막 총격전은 정말 맘에 들어요. 워낙 그 전까지 본격적으로 때리고 부수는 액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대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죠. 영화 내내 반목하던 두 캐릭터가 뜻을 모으고 서로 의지하게 되는 모습을 액션으로 잘 풀어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액션 자체도 합이 잘 맞아서 보는 재미가 있구요. 뭔가 첩혈쌍웅의 마지막 성당 총격씬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뭐 그 정도로 많이 죽어 나가진 않죠. 사실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너무 빨리 끝난다는 것. 물론 진짜 첩혈쌍웅이 되어 버리면 그것도 곤란하니 영화 성격상 이 정도가 적절하긴 하겠습니다만.


 - 케빈 스페이시 + 대니 드 비토 콤비 때문에 인생 꼬여서 살해당하는, 그래서 케빈 스페이시 각성(?)의 바탕이 되는 배우 지망생 역의 배우가 '멘탈리스트'의 주인공이더군요. 한참 젊을 때다 보니 어쩜 그리도 뽀송뽀송 상큼 고우신지(...) '멘탈리스트'에선 능구렁이처럼 보이는 웃음이 이 영화에선 백치미까지 좔좔 흐르는 느낌이더라구요. 다시 보는 것이다 보니 곧 죽을 거라는 걸 잘 알기에 더 불쌍. 


 - 킴 '베신져'는 이 영화를 찍을 때 한국식 나이로 이미 45세였죠. 러셀 크로우는 34세였으니 11살 차이나는 배우들이 커플로 출였했네요. 한국에서 이렇게 11살 많은 여자 + 연하남 커플이 나온다면 그것 자체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설정으로 나올 텐데, (혹은 '킴 배신져의 나이가 너무 많아 커플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평이 쏟아져 나온다거나) 역시 서양쪽 문화는 이런 나이 차이에 상대적으로 많이 관대한 걸까요. 러셀 크로우는 '퀵 앤 데드'에서도 6살 연상의 샤론 스톤과 커플(?)로 나온 바 있으니 나름대로 누님들의 아이돌이었다고 우겨봐도... (되지 않아!;)


 - '아방궁' 주인 역할의 David Strathairn(성을 뭐라고 읽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_-;;)은 얼굴에 '음모' 라고 적혀 있는 듯한 인상에다가 은근히 카리스마 + 품위도 있어 보여서 이러한 역할에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본 시리즈 마지막편('이었'죠;)에 나왔을 때도 참 멋졌습니다. 이 영화에선 너무 허망하게 퇴장해 버리긴 합니다만;


 - 블루 레이로 보고픈데 출시가 안 되었죠. 화질에 대한 평이 매우 안 좋다는 걸로 위안을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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