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숫자와 돈이겠네요.

대학 때 나름 관심을 가지고 전공을 했고, 구직을 해서 일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전 제가 이 일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것들 보다는 제 관심을 끌었고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어라? 잘 모르겠네? 싶은 거죠. 사실 이 일이 또 엄청난 재능과 감각을 요하는 일도 아니고 그럭저럭 해 나가다 보면, 오히려 경력과 경륜이 중요한 일인만큼 꾹 참고 공부하고 일하면 되는 건데, 가끔씩 감각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좀 힘들어요.

오늘도 숫자가 안 맞아서 한 시간 여를 낑낑대고 있다가 도저히 모르겠어서 옆에 동료에게 이제까지 만든 파일을 주고 한번 봐 달라고 했죠. 동료는 한 삼심분 정도? 계산기를 두들겨 보더니 찾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맞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데이터가 약간 틀렸고, 제가 착각을 한 부분이 있었고...뭐 그랬어요. 그렇게 금방 찾았어요! 하고 알려주는데 얼굴이 좀 홧홧했어요. 난 이걸 못 찾아서 그렇게 헤맸나, 데이터 하나를 기준으로 역추적이라도 해야하나 싶었거든요.

숫자라는 게 오히려 계속 보다보면 그 미로에 갖히게 되는 경우가 이따금 있는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이제까지 봐 온 바로도 이 동료는 손도 빠르고 감각도 있어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부럽죠.

이렇게 별 대단하지도 않은 일에 내 능력을 의심하게 되면 지금이라도 얼른 진로를 틀어야 하나 생각하게 돼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는 따로 있어! 내가 더 잘하고 좋아할 일을 이게 아니야!! 이런 생각을 마구마구 하는 거죠. 여기까지가 직장인의 흔한 사이클이겠죠?  저만 이런 거 아니죠? ㅎㅎ

 

 

 

2. 최근 호감가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일과 관련해서 알게 된 사람이기 때문에 직업과 이름 정도만 알아요. 결혼 유무도 나이도 모릅니다. 사적인 대화를 할 일이 전무하기 때문에 이 정보들이 업데이트 될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요. 그냥 직업에서 오는 친절함이겠지만, 하여간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이 좋더군요. 일 때문에 어쩌다 한번 마주치는 정도인데 그 기회가 '어쩌다 한 번' 이다보니 괜히 설레고 신나고 스릴있고 그래요. ㅋㅋ날씨가 추워서 생긴, 금사빠 기질이 오랜만에 발동한 그저그런 일이겠거니 했는데 '나 좀 진지한가?'싶은 순간이 두 번 있었어요. 한 번은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괜히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그사람 회사 동료랑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어요. ㅎㅎ 다른 한 번은 어젯밤이었어요. 듀게에서 누가 그사람과 결혼한다고 글을 쓴 거에요! 실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 글을 읽으면서 그사람이구나! 백퍼센트 확신을 할 수 있었죠. 이렇게 끝나는구나 꿈에서 생각하고는 허전한 마음에 잠에서 깨고보니 새벽 3시. 자다가 깨는 일이라고는 화장실 갈 때와 모기가 괴롭힐 때를 제외하고는 없다시피한 사람이라서 스스로도 좀 놀랐어요. 하지만 꿈에서 깨서 바로 분석에 들어갔죠. 꿈에 듀게가 나온 건 자기 전에 불 꺼놓고 듀게를 봤기 때문이고, 결혼 이야기가 나온 건 요근래 일가 친척들의 결혼식 러쉬가 이어지면서 아빠의 결혼하라는 압박이 좀 거세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며, 그사람이 나온 건 앞서 말한 순간이 불과 며칠 전이었기 때문이라고요. 개꿈이었구나 생각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어요.

 

 

 

3. 오늘 가을비 치고는 꽤 거세게 내리더니 퇴근할 때 바람이 확 쌀쌀하더군요.

지난 주에 외투를 사려고 몇 군데 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걸 찾지 못했어요. 돈이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니 가을-겨울 겉옷은 더 신중하게 사게 되는데, 마음에 드는 건 없고, 날은 쌀쌀해지고, 입을 옷은 여전히 없고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사실 예산이 아주 넉넉하면이야 한 60퍼센트만 마음에 들어도 척척 사서 입을 수도 있겠지만 늘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니까요. 전 사실 보자마자 이 옷이야! 하는 느낌이 들어서 구입하는 옷도 있지만 한 80퍼센트만 마음에 들면 사서 요리조리 입으면서 정을 붙이는 타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적당히 마음에 들면 사야겠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쇼핑을 나섰는데도 옷들마다 한두군데씩 트집 잡을 게 생기더라고요. 이 옷은 색깔이 별로고, 이 옷은 소매가 별로고, 이 옷은 벌써 입기에는 너무 두꺼운 것 같고, 등등. 차라리 더 확 추워져셔 대놓고 겨울코트를 입을 때가 오면 좋겠다 싶어요.

 

 

 

4. 다시 1번과 연결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전 해야만 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 맡은 일,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일부터 일단 잘하고 싶어요. 다른 공부, 다른 적성도 물론 좋지만 지금 하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일도 허덕이는데, 다른 걸 잘 해낼 수 있을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더라고요.

음...솔직히 여기서 해야만 하는 일은 제 직업과 관련된 것도 있지만 사실 가사일을 생각하고 쓴 게 더 큽니다. 해야만 하는 빨래, 해야만 하는 설거지, 해야만 하는 청소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설거지감이 씽크대에 한가득인데 너무 하기 싫어요. ㅠㅠ 하지만 해야 겠죠. 나 말고는 해 줄 사람이 없으니.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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