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부터, 예전에 한 번 쓰기로 (혼자) 약속했던 구직기를 이제 좀 써볼까 하는 시점에 이 글을 과연 지금 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어떤 문장 한 줄 꼭 써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요 며칠 뜨거웠던 이슈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주 오래 전부터 고민하고 생각해왔던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허세와 자뻑에 찌든 인간이 대개 그러하듯 이면의 그림자 같은 열등감도 많고 속 뒤틀리기가 무덤가의 굽은 소나무 같지만 그래서 더욱 최소한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늘 힘겨운 보통사람이라서요. 제가 프롤로그로 해두고 싶었던 건 이런 말입니다.

  타고난 머리와 노력 그리고 운도 따라서 직업이나 직종 또는 연봉 선택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도(심지어 제 주변에도 여러 명)존재하고 이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두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한 번쯤 그냥 나 같은 사람이 다니는 ‘회사’ 에 대해서 그리고 그 직업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늘 입이 간질거렸거든요. 이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져요.

 

   1. 2010년 연말. 타들어 가는 돼지갈비 속에 난사된 폭탄주를 끝으로 나의 조직생활은 끝이 났다고 공표했지만, 기실 저는 1월 중순이 되지 않아 잡코리아를 헤집고 다녔어요. 스스로 꾸며낸 장황한 문장, ‘뭔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병적인 불안감은 도시를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이 겪는 신종 시지프스의 바위’ 같은 식상한 표현은 저 같은 사람에겐 하나의 바코드입니다. 딱 작년 이맘때도 저는 같은 짓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저는 측근이 표현한대로 ‘시골 중학교의 노처녀 국어선생 같이-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니 이 표현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감안해 주시길’ 나왔다는 증명사진을 몇 개나 찍어 이리저리 이력서를 만들고 자기소개서를 썼어요,

 

   어디 내밀기도 면구스러운 스펙과, 어느 직장에서든 농땡이 피운 적은 없었지만 결국은 특기할 것 없는 변변찮은 이력, 실체를 보기도 전에 별로 땡기지 않을 인상으로 어색하고 웃고 있는 사진 속 얼굴, 그게 무엇이든 계속 일을 했더라면 가장 일을 많이 했을 것이고 진급할 수도 있었고 월급도 올라갔을 지 모를 몇 년의 황금기가 어쩔 수 없는 공백기로 처리되는 불리함,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다 도합한 가장 강력한 반려의 이유는 이미 늙어버린 나이였겠죠. 그래도 저는 입사지원서를 열심히도 쓰고 줄기차게도 문을 두드립니다. 제가 갈 수 있는 회사의 수준과,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분수와 주제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곳만 찾아 굽신굽신 읍소하며, 일 시켜놓으면 똑부러지게 잘 한다는 야무진 포부로 마감하면서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영어실력도 조금은 부풀리고 현지에서 배운 제3외국어쯤 될까 한 언어구사력도 별난 액세서리처럼 붙여놓고 이력서를 공개해놨죠.

 

   유일하게 연락이 온 곳은 각종 보험회사였습니다. 이곳에도 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 계시겠으나, 사실 아직까지 제가 원했던 것은 그냥 그 전에 제가 다니던 직종의 회사였습니다. 획일적이고 조직적인 회사생활을 한창 힘들어하던 저에게 최측근은 “너는 조직을 하나 만들 수도 있는 인간” 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을 만큼 그 일이라고 못할 건 아니지만, 그건 좀 더 나이먹고 제가 좀 더 유들유들 해졌을 때면 해볼 수도 있는 일이었어요, 진심.

 

   혹자들은 오자마자 무슨 일이냐, 쉬엄쉬엄 사람도 좀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라고 했지만 아무 소속 없는 채로 내 지갑에 내가 번 단돈 십만 원도 없이 가장 친한 친구조차 만날 제 성격이 아니기에 저는 말을 듣지 않았고, 그러다가 어찌어찌 그동안 일해보지 않았던 직군의 직종의 직업을 갖게 되지요. 그곳이 바로 미쓰코리아 뺨치는 미모의 여자들이 청도소싸움 같은 기싸움을 벌이는 그런 곳이었죠. 아무런 연고 없던 제가 거기서 근무했던 기간의 반 이상을 대부분의 아무와도 말 섞지 않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행사를 치렀는지는 쓰고 싶지도 않아요. 개처럼 일하는 우직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기는 했던지 막판에 저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웃길 만큼 진짜 개고생을 했어요. 그리고 그때 결심합니다. 다시는 직장인이 되지 않겠다고. 문화예술계 따위는 어슬렁거리지 않겠다고.

 

   그리고는 다시 1로 향하는 거지의 귀환. 툭 터놓고 말해 이날 이때껏 살면서 사람에게도 또는 직장 면접에서도 거절당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저는, 작년에 살짝 맛보기 하다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내가 얼마나 늙고 무능하고 선뜻 선택 받지 못하는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인간인가를 통감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탐욕스러움을 주체 못하는 한심한 족속. 누구 말마따나 일을 하지 않는다 해서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일을 한다는 것은 저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하나의 자존심이자 스스로에 대한 안전핀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늘 입맛이 씁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대폭 정리된 인간관계 내지는 다들 먹고 사느라 바쁜 그나마의 몇몇 친구들에게 절대 전화하지 않고 그 추운 1월과 2월을 혼자 보냈어요. 혹한을 뚫고 미친 듯 싸돌아 다니지만 그 동선이란 것도 너무 빤하고, 유유자적하는 예술가 코스프레라도 해보기엔 저는 이미 우습게 늙어버렸더란 말입니다. 예술전용극장이랍시고 몇 군데 뻔질나게 드나드니 표 끊을 때마다 눈 마주치는 매표소 직원들 보기도 스스로 민망하고, 그리고 이미 중년극장과 노인극장으로 변해버린 데 대한 그 공간의 변질성에 푸념하다가 나도 이제 준중년의 나이가 아니던가 하는 자조.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삼천원 이하로 해결할 끼니를 찾아 헤매며 길거리에 서서 떡볶이 반인분과 오뎅 한 개, 또는 호떡 두 개를 먹으며 자기연민에 빠지는 병신 같은 겨울을 보내는 과정에서도 저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질은 멈추지 않았어요.

 

    아무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음을 알면서, 차라리 짧고 굵게 있으면서 넌더리가 나던 거기라도 그냥 있을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는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그래도 군대가 편했다고 뒤늦게 말하는 그런 속성일까요? 돌쇠 같은 제 성실함에 탄복하여 집요하게 연락을 취하며 자신의 다른 일을 맡아주기를 바라던 정신병자 같은 늙은 여교수가 제안한 사무국장 자리라도 못이기는 척 가볼까 하다가 다시 도리질을 치고. 혹시 영화를 보는 동안 전화가 오지 않을까 난생 처음 전화기를 진동모드로 켜놓고 영화를 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그래도 안 오더군요-_-), 일단 어디든 걸려들겠지 하며 스크랩 해놓은 이십여 군데의 업체에 동시에 이력서를 투척하자니 이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그런데, 왜 연락이 아무데서도 안 왔겠습니까? 그 중 몇 군데만 기술하자면 내가 그 동안 진짜 힘들다고 여겼던 직장들이 하나같이 온실이었나 싶었죠. 면접 질문부터 더럽고 너덜거리는 회사도 있었고, 알고 보니 미국유학씩이나 갔다 온 서른 살 먹은 여자애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아빠 사업 중 한 군데 물려는 받았으나 면접은커녕 면접 온 사람에게 최소한의 목례조차 없이 휙 나가버리는 것으로 사회적 철부지의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준 회사, 서울시를 벗어나 경기도 인근의 어느 도처까지 화장 곱게 하고 바바리 자락 흩날리고 갔으나 뭔가 예전 수사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다단계 느낌의 회사(제7교육장 본부라고 프린트 된 종이가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죠). 아이고, 사람이 오죽 실력이 없어 오라는 데도 없으면 가는 곳마다 그러느냐 하겠지만 이것이 엄연한 저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런 회사는 오라고해도 안 간다 했는데 정작 그런 회사에서도 면접 이후엔 연락이 없더란 말입니다… 더욱이 한때는 이가 갈리도록 혐오했던 제 직종, 내가 싫어 그만 뒀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직종에서마저 이제 저를 하찮게 여기고 제 나이를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

 

    이쯤 되면 자학과 궁상의 레벨이 높아져 밤마다 소주에 맥주를 말고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떠는 밤을 보내다 보니 키로수는 변화가 없으나 옷은 어쩐지 죄어드는 것 같고 얼굴이 점점 못생기고 퍼지는 것처럼 느껴져 이렇게 한 방에 훅 가는구나 싶은 위기감이 급습. 문득 그때 알았어요. 취직과 결혼상대를 찾는 과정의 공통점. 저는 이날까지 제가 해왔던 일을 너무 싫어했지만 일을 떠나 내가 몸담았던 모든 조직들의 특성이 저처럼 다분히 허영심 있고 잰 체 하는 만큼 비교적 점잖은 곳이었음을. 뭐랄까, 빛좋은 개살구처럼 껍질만 벗겨보면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속살을 숨기고 있던 그 조직들이 적어도 남들한테 말하면서 스스로 우쭐해지며 허영심을 충족시켜 줬고, 이것이 저에게는 무수한 불합리와 불편을 상쇄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알고 보면 천하의 속물 주제에 지식인이자 문화귀족인 양 굴던 모회사의 사장과 그 가족 일당들, 그리고 정치가나 사업가의 성향이 너무 다분한 데도 자신을 최고의 예술가라고 믿는 여교수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진짜 토할 것 같았거든요. 두 번 다시 문화예술 언저리를 맴돌며 따까리 하는 것으로 대리만족하며 스스로 예술가가 된 양 착각하던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 박차고 나오면서 생각했어요.

 

    앞으로 또 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어디든 그냥 아저씨스럽고 단순무식 하지만 깔끔하게 월급 제때 받고 칼퇴근 하는 보통의 회사에 들어가 없는 존재처럼 살겠다던 결심. 그러나 면접이라고 몇 군데 다닐 때마다 사무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건물에서 훅 끼치는 어떤 공기의 흐름, 냄새 같은 것에 저는 질식할 것 같았고 내가 원하던 소박한 작은 회사라는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율도국인가 싶을 만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지러웠어요. 이것은 마치 지독하게 연애하던 연인과 헤어지고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을 만나보리라 마음먹고 나간 소개팅 장소에서 직감적으로 내 상대를 알아봄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리고 싶은 마음 같았다고 할까요?

 

   구직기간 동안 가장 많이 놀란 것은 이렇게나 많은 회사들이 일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왜 살인적인 실업률이라고 아우성일까? 그러면서 당장 나부터도 말로는 평범한 회사라고 하지만 내놓고 말할 큰 회사는 아니어도 자꾸만 회사의 위치와 소재한 빌딩의 층수를 궁금해 하고 있더라구요. 하긴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없어서 연애나 결혼을 못하나요? 자기에게 맞는 사람을 찾느라 그런 거죠. 결혼에 비할 바 아니지만 결국 직업 특히 직장이라는 것도 다분히 그런 속성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는 저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면면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두 달 가까이 50군데 가까운 이력서를 넣으면서(그 중 70%는 단체 투척이지만), 혼자서 그 회사에 입사해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의류회사면 물류창고의 재고조사를 하고 있는 나, 학원이면 학부모를 상담하고 있는 나, 출판사면 거래처의 외상 독촉을 받고 있는 나, 식품업계면 식자재비를 맞추고 있는 나, 무슨 재단의 이사장의 비서가 되어 스튜어디스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고 비위를 맞추고 있는 나, 심지어 연예기획사에서 조카뻘 되는 아이돌들의 식순이나 이모노릇을 하고 있는 나. 말할 수 없는 무수한 ‘나’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다시 잡코리아의 무한영역으로 기어들어가는 단순반복.

 

    결론은 그래서 어디로 어떻게 취직되어 얼마 받느냐구요? 허허,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결심을 한 건 앞서 말한 회사초입부터 느껴지는 공기와 냄새 때문입니다. 뭔가 익숙하고 편안한 그리고 벌써부터 지겨우면서도 이상하게 안도가 되는. 대단치는 않지만 그래도 10년 넘는 경력에 터무니없는 연봉을 수락하면서 여기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딱 그 이유 하나에요. 저는 경력자이나 경력이 그다지 인정되지 않는 조금은 다른 업종의 직책을 맡고 그걸 빌미로 나이 많은 경력자를 선택할 때의 부담과 고충을 늘어놓는 면접관과 연봉으로 밀땅할 생각도 기운도 없었고 그냥 그 공기와 냄새면 됐었거든요. 예전에 라디오스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김성주가 그랬어요. 조직생활 해 본 사람은 언제든 다시 조직으로 회귀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저는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 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거든요. 최근에 영어로 어떤 일을 진행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이 제가 뭘 공부했고 뭘 하고 싶었는지를 물었을 때 어떤 답변을 했죠. 그랬더니 너의 전공과 적성이 그것이었다면 너는 왜 그것을 하지 않느냐 반문했을 때 저의 대답은 딱 두 가지 단어에 방점을 찍었어요. 한때 내가 거쳤던 모든 직장과 직업과 직종에 저주를 퍼부으며 이것이 내 궁극의 밥벌이는 아닐 거라고 시건방을 떨며 헛다리 짚던 제 입에서 Odinary and Organized. 언제 또 입에 거품을 물며 출사표를 던질 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겐 이게 맞다고.

 

   *직업과 직장에 관한 글은 어쩌면 연속으로 몇 편 더 쓰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 주제는 제겐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라서요. 오늘은 그냥 맛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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