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여자..

2011.01.26 11:17

남자간호사 조회 수:4997

저는 무서운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아니, 일한 지 두 달도 안 되어서...페이첵 받은 지 세 번 밖에 안 된 사람이...

승진 제의를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내님은 얼마 전 부터 다운타운에 있는 카페 겸 델리의 오픈 준비 멤버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창고에서 그날 그날 필요한 물건을 가게로 옮기고, 배달 물건도 가게로 옮기며, 

아침 메뉴 랩 샌드위치를 미리 만들면서 가게 오픈을 준비하고, 가게가 오픈을 하면 카운터를 보면서 그때 그때 필요한 샌드위치를 만듭니다.

오피스 빌딩 두 개 사이에 연결 통로에 있는 가게라, 점심 때, 특히 비 오는 날의 점심 때에는 지옥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참고로 밴쿠버에는 겨울 내내 비가 자주 옵니다;;) 


사실 아내님은 스타 벅스에서 취직해서 커피 만드는 것을 배워보겠다 하고 있었는데, 마침 구직 타이밍이 구인 타이밍과 안 맞더라고요.

한 달 정도 이력서 내면서 이리 저리 다니다가 이 자리를 구하게 되었는데, 이 자리를 구한 것도 이야기가 참 재밌습니다.


아내님은 한국 발음으로는 여성적인 이름인데, 이게 영어로 표기하면 발음이 애매모호해져요.

발음 자체가 어려운 건 아녀요. 단지 이름 마지막 자가 ㅇ으로 시작해서, 영어로 붙여쓰기 하다보니, 중간자 자음을 끝자 모음과 곧바로 붙여서 발음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려 버리는 거죠.

어쨌든, 저도 아내님도 영어 이름 따로 가지는 거 안 좋아해서 이력서를 포함한 모든 서류엔 한글 발음 그대로 영어로 이름을 적습니다.


오픈 멤버는 사실 남자를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건들을 옮기는 것 자체가 힘이 필요한 일이라서요.

아내님이 보낸 이력서를 본 매니져는 자기 나름 대로 영문으로 쓰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보며, 주변 한국 직원들에게 이 이름 남자 이름인지, 여자 이름인지 물었더니 100% 남자 이름이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당연히 남자인 줄 알고 전화를 건 매니져는 여자가 전화를 받으니 살짝 당황하더랍니다.

그래도, 기왕 전화 건 거 면접보자 했는데, 막상 면접을 보니, 원하는 건 남자 직원이었지만, 맘에 들더랍니다.


그래서 채용.


그 후 아내님은 아침마다 14.5kg 스프 박스를 낑낑대며 옮기느라 고생을 하게 되었다죠.


아내님은 새벽 6시까지 출근을 합니다. 

아내님은 지각이란 단어는 본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내님은 후다다닥 준비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출근하는데는 30분도 안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하는 근면한 사람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위해 전 날 저녁 예닐곱시엔 잠을 청하고요.


그 덕분에 올빼미형 인간인 저도 아내님 눈치 보느라, 같이 자거나, 아니면 조심스레 이어폰 끼고 컴퓨터로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인터넷, 특히 듀게는 금지 였어요. 하얀 바탕이라 밝아서 자는 아내님 눈이 부시게 해서요. 지금은 가구 배치 바꾸고, 아내님 수면 안대도 장만하셔서 맘대로 아무거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듀게도요.)


일찍 출근하고, 열심히 일했던 덕분인지 일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오늘 슈퍼 바이저로 승진 제의를 받았다고 해요.

마침 한 사람이 관두는 등 타이밍이 잘 맞아서도 그랬겠지만, 열심히 일하느라 고생한 아내님의 노력이 인정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먼 외국 땅에서, 남편은 학교 다니느라 룸펜 노릇이고, 아내님은 열심히 일하다 스트레스로 위염까지 왔지만, 그래도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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