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31 02:33
스카이폴을 보고 와서 계속 여운이 남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델 노래를 듣다가, 가사해석에 손을 대봤어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다른 한국어 번역들은 맘에 안 들고, 가사 자체가 쉬운 영어라서, 중의적 의미들을 살리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즉, 내 멋대로) 번역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건 M의 시점에서 본드에게 전하는 말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이하 제멋대로의 가사 번역+고딩시절 자습서 스타일의 본인첨언입니다.
(대량의 스포가 있사오니 아직 못 보신 분은 스킵하세요!)
이제 끝이야. 네 숨을 잠시 멈추고 10까지 세어 줘. 지구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니? 그러고서 내 심장이 터지는 걸 다시 들어주길 바라. 이것이 끝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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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사로잡혀왔고 꿈꿔왔어, 이 순간을. 너무 지체되는 바람에, 나는 그들에게 빚지고 말았지. 그냥 쓸어버려, 난 (이미) 납치당했으니. | (so~that 구문에서 that 생략) '당신 죄를 기억하라'라는 문구에 괴로워하던 M의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화자가 M이라면 그녀는 이미 죽은 자들에게 죽음을 빚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만합니다. |
함께 하늘을 무너뜨려 버리자, 그건 흔들리고 있으니.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함께 마주하자 | '함께 스카이폴하자'라는 제안으로, 화자는 '나'와 '너'가 몸담고 있던 'SKY'라는 장소, 즉, 이미 흔들리고 있는 장소를 근본적으로 뒤엎어 버릴 것을 '너'에게 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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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자, 하늘이 흔들릴 때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함께 마주하자 하늘이 추락한 바로 그 곳에서 스카이폴에서
| 21세기에도 MI6가 존재할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에 답하는 이번 편의 주제와 상통하는 부분으로,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가 완전히 새롭게 쇄신하려는 주제의식을 보여줍니다. |
스카이폴, 그게 바로 우리가 시작한 곳이지 (여기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세계는 충돌하고 나날은 어두운 그런 곳이야.
| (*1mile=1760yd, 1pole=5.5 yd) |
"당신은 내 번호를 알고 내 이름을 불러도 되지만 내 마음은 절대 가질 수 없어" | 과거의 출발지점을 떠올리던 화자가 이어서 말하는 부분으로, 과거 본드와의 첫 재회 때 본드가 M에게 한 말이거나, M이 본드에게 한 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
하늘을 무너뜨려 버려, 그건 흔들리고 있으니.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 모든 걸 마주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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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자, 하늘이 흔들릴 때 우린 버틸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 모든 걸 마주하자 스카이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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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는 것이 곧 내가 가는 것이나 다름없고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볼 거야 | 화자는 첫 부분에서 이미 자신이 죽었음을 선언했으므로, 지금 이 말은 아마도 '내가 죽어도 네 곁에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유언으로 추정됩니다. |
난 알아.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던 너의 사랑스러운 팔 안에서 안전하지 못했다면 나는 절대 나로 남지 못했으리란 걸. 함께 손잡고 이 일을 계속 견뎌 나가자 | 화자가 M일거라고 강하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윗 부분에서 "'너'는 내 마음은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너'를 매우 사랑하고 있으며,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맞는 화자는 이제 함께 있지 못하므로, 화자는 '너'가 계속 굳건히 견뎌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추락하자, 하늘이 흔들릴 때 우린 버틸 수 있어 그리고 그 모든 걸 마주하자 스카이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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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져도 우린 버틸 수 있어 하늘이 무너지던 바로 그 곳 스카이폴에서
| 예전에 한번 상실을 경험했던 곳에서 또다시 '스카이폴'을 겪으리란 것을 예상할 수 있지만, 'Let'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이는 화자의 결연한 의지가 섞인 선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가사를 이렇게 생각해보니 다시 한번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가 역대 본드에 비해 얼마나 어두운 첩보원인지,
그리고 이번 편은 또 얼마만한 무게인지가 새삼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번편의 본드걸이 M이라는 건 탁월합니다.
세상에 '어머니'만큼 남자에게 근원적인 여성상이 또 있겠습니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에게 있어 스카이폴은
부모의 죽음과, 유사 어머니였던 M의 죽음을 함께 겪은 곳으로,
본드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는 자기 애인이 죽었을 때도 흘리지 못했던 눈물 한 방울을 그곳에서 흘렸겠지요.
너무 삭막해서 감정조차 없어 보이는 그가 말이에요.
저는 이번 편을 통해서 제임스 본드가 진정으로 '리셋'준비가 완료된 것으로 보입니다.
<카지노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에 <스카이폴>을 더해서 일종의 '프리퀄' 삼부작이 완료되고,
이 다음부터가 본격적인 제임스 본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는 이제 막 <스카이폴>을 통해 완전히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본드는 이제 유사 어머니였던 M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비로소 혹독한 성인식을 통과하고
어머니의 보호 없이 혼자 세상을 마주하게 된 성년의 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안티-테제'라 할 수 있는 내면의 적 실바를 마주하면서
이미 내적인 갈등으로부터도 독립했습니다.
저번 편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베스파의 유품이던 목걸이를 버렸으니, 연인에 대한 미련으로부터도 독립했겠지요.
마지막으로,
실바와의 싸움을 통해 자신의 근거지랄 수 있는 유년의 기억들과, 역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물의 잔재들(애스턴 마틴 DB5로 대변되는)을
모조리 털어내 버렸거든요.
이 다음편이 무엇이든,
이제 제임스 본드는 예전의 시리즈물로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표명했습니다.
다음 편이 참 기대되네요.
50주년 결산다운 제임스 본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명불허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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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가 '위해서'가 아니라 이유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