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기왕이면 발표 순서대로 읽어보자 다짐 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요람>을 마치고 나자, 이 할배의 산문을 정말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결국 그의 가장 마지막 책이 된 <나라 없는 사람>을 구입했습니다. 훌륭합니다. 그의 소설을 막 읽어나가는 신참내기 독자에게 참으로 탁월한 '작가의 변'에 해당하는 책인지라 충분히 즐거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이 책은 재미있고, 품위 있으며, 풍자와 유머가 넘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무엇보다 141페이지라는 훌륭한! 두께를 자랑하는 등의 각종 장점 덕에 강추 할 만한 책입니다.

 

즐겁게 읽은 부분이 참 많습니다만, '예술"에 대한 이야기,  카프카에 대한 그래프에 큰 감명받은 부분이며, 듀게 분들 역시 흥미로워 하실거라 생각하는 '문예창작을 위한 충고' 를 옮겨적어봅니다.  전 셰익스피어를 언제 제대로 읽게 될지...

 

 

 

 

"문예창작을 위한 충고"

 

  

 

규칙 1 : 세미콜론을 사용하지 마라. 세미콜론은 완전히 무의미하고 변덕스러운 자웅동체 같은 부호다. 그것은 단지 글쓴이가 대학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내 말이 농담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는 농담이면 농담이라고 말하겠다.

 

예를 들어, 주 방위군이나 해병대에 가서 민주주의를 가르쳐보라. 이건 농담이다. 우리는 알카에다의 공격에 직면해 있다. 그들을 보면 깃발을 흔들어라. 그러면 겁을 먹고 달아날 것이다. 이것도 농담이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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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알게 된 사실 하나를 여러분과 공유하려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 뒤편의 칠판에 그림을 그리겠다. 이 선을 G-I 축 (Good-Ill fortune)이라 하자....죽음, 지독한 가난, 질병은 아래쪽에 있고 부유함, 건강은 위쪽에 있다. 평균적인 상태들은 중간에 놓인다. .. 다음은 B-E 축 (beginning, entropy)이다. 됐다. 모든 이야기가 컴퓨터조차 이해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일직선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잠깐 마케팅의 원칙 하나를 소개하겠다. 책과 잡지를 사거나 영화를 보러 갈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야기를 위쪽에서 시작해보자. (G-I 축 꼭대기를 가리킨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끝없이 접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르 사랑한다. 그런 이야기에는 저작권이 없다. '구덩이에 빠진 남자' 이야기지만, 반드시 남자나 구덩이가 등장할 필요는 없다. 그냥 어떤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선다는 내용이면 된다. 이 선이 대개 처음 시작했던 곳 보다 더 높은 데서 끝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독자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지만, 여기에도 굳이 소년과 소녀가 등장할 필요는 없다. 평범한 누군가가 다른 날들과 똑같은 아주 평범한 날에 우연히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무언가와 마주친다. "이런 세상에,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군!"...(선이 아래쪽으로 향한다) "염병할!"...(선이 위쪽으로 향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여러분 앞에서 폼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코넬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한 나는 전쟁이 끝난 후 시카고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고 그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솔 벨로도 같은 과에서 공부했는데, 그나 나나 현지 연구는 해보지 못했다. ...나는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민족지학자, 선교사, 탐험가-제국주의자-들이 원시인들로부터 수집한 이야기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인류학 학위를 딴 것은 큰 실수였다. 내가 보기에 원시인들은 너무나 불쌍하고 멍청했다. 그래도 나는 원시사회에서 수집한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읽어나갔다. 그것들은 B-E 축처럼 높낮이 변화가 없었다. 그러면 정말 재미가 없다. 원시인들은 그 지루한 이야기들과 함께 지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퇴행적이다. 그에 비해 우리 이야기들의 상승과 하강은 얼마나 절묘한가. (옮겨 치면서 정말 혹시 모를 노파심에...; 농담입니다 농담.)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는 밑바닥에서 시작한다. 슬픔에 빠진 주인공은 누구인가? 열다섯 혹은 열여섯 살쯤에 어머니를 여읜 소녀라면 밑바닥으로 추락한게 분명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애도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야비한 두 딸을 준 사악한 여자와 결혼했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궁전에서 파티가 열린다. 우리 주인공은 파티에 참석하는 두 언니와 계모를 돕는데 정작 그녀 자신은 집을 지켜야 한다. 그녀는 더 슬퍼졌을까? 그렇지 않다. 그녀는 이미 상심할 대로 상심한 가엾은 소녀다. 어머니의 죽음이면 충분하다. 더 나빠질 게 없다. 계모와 언니들은 파티가 열리는 궁전으로 떠난다. 그때 선녀가 나타나(곡선이 점차 올라간다) 그녀에게 스타킹과 마스타라 그리고 파티에 타고 갈 교통수단을 선사한다.

 

파티에 등장한 주인공은 무도회의 여왕이 된다. (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놀랍게 변신한 그녀를 가독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시계가 열두시를 치자 선녀와의 약속대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곡선이 떨어진다.) 시계가 열두 번 울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은 날개 없이 곧바로 추락한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은 수준으로 떨어졌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녀에겐 왕자가 자신과 사랑에 빠졌고 자신이 무도회의 여왕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그래서 훨씬 나아진 조건에서 고생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구두가 발에 맞아 엄청난 행복을 거머쥔다. (곡선이 급상승하고 마지막엔 무한대 기호가 붙는다.)

 

 

 

 

 

이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보자. 매력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은 젊은 남자가 있다. 그에겐 쌀쌀맞은 가족과 승진 가능성이 털끝만큼도 없는 고된 직업이 있다. 봉급은 쥐꼬리만 해서 애인과 춤을 추러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맥주 한잔을 마실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보니 그의 몸이 바퀴벌레로 변해 있다. (곡선이 급하강하고 마지막엔 무한대 기호가 붙는다. 비관적이고 슬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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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가 고안한 이 방법이 정말로 작품 평가에 도움이 되느냐다. 진정한 걸작을 이렇게 허술한 그물로 건져올릴 수 있을까. <헴릿>을 예로 들어보자. 감히 말하건데 <햄릿>은 진정으로 위대한 작품이다.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사람이 있을까? 이번에는 새로운 선을 그릴 필요가 없다. 햄릿의 상황은 신데렐라와 똑같고 단지 남녀가 뒤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부왕의 죽음으로 햄릿은 슬픔에 잠긴다. 햄릿의 어머니는 곧바로 햄릿의 삼촌을 남편으로 맞는다. 그는 음흉한 악당이다. 그래서 햄릿은 신데렐라와 똑같은 곡선을 그린다. 그때 친구인 호레이쇼가 찬아와 이렇게 말한다. "왕자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망대 위에서 이상한 형체를 보았는데, 제 생각엔 왕자님이 직접 말을 걸어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아무래도 선왕이신 것 같습니다." 망대에 올라간 햄릿은 유령으로 나타난 부왕에게 말을 건다. 그러자 유령이 말한다. "나는 네 아비로다. 무참하게 살해당했으니 복수를 해다오. 나를 죽인 원수는 바로 네 삼촌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지금도 우리는 그 유령이 정말로 햄릿의 아버지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심령술 모임에 참석해본 사람이라면 원한을 품은 혼령들이 우리 주위를 떠돌아다니며 뭔가 말하려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영혼의 세계에 누구보다 정통했던 블라바츠키여사는 혼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바보라고 말했다. 혼령들은 대개 원한을 품고 있으며, 살해당했거나 자살했거나 끔찍한 속임수에 걸려든 자들이라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유령은 정말로 햄릿의 아버지일까? 그리고 그것은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그건 햄릿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좋다, 확인해볼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배우들을 불러서 유령이 말한 대로 아버지가 삼촌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연기하게 하고 그 연극을 삼촌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극이 펼쳐진다. 그러나 <페리 메이슨>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삼촌은 미쳐 날뛰면서 "그래, 네가 이겼다. 내가 그를 죽였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연극은 실패한다.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아니다. 실패한 후에 햄릿은 어머니를 찾아가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중 휘장이 움직이자 그 뒤에 숨은 사람이 삼촌인 줄 알고 "좋다, 나도 이 우유부단함에 신물이 난다"고 외치며 휘장을 향해 검을 찌른다. 그런데 쓰러지는 사람은 누군가? 수다쟁이 폴로니우스다. 러시 림보(극우 성향 미국방송인) 같은 인물로, 셰익스피어는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괜찮을 못난이라고 여겼다.

 

아둔한 부모들은 폴로니우스가 자식들을 멀리 떠나보내며 강조했던 충고가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충고다. 셰익스피어도 그것이 웃긴다고 생각했다. "빌려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마라."  그러나 인생에서 끊임없이 빌리고 빌려주는 것, 다시 말해 상호 호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무엇보다 너 자신에게 충실하라." 폴로니우스의 이 말은 결국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말이다!

 

더이상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없다. 햄릿은 체포되지 않는다. 그는 일국의 왕자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그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마침내 결투를 벌이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는 천국으로 갔을까, 지옥으로 갔을까? 이건 하늘과 땅 차이다. 신데렐라 쪽일까, 카프카의 바퀴벌레 쪽일까? 셰익스피어도 나와 마찬가지로 천국이나 지옥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는 셰익스피어가 아메리카 원주민 못지않게 형편없는 이야기꾼이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햄릿>의 위대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했다. 사람들은 좀처럼 칠판위에 진실을 그리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이 좋은 소식이고 무엇이 나쁜 소식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만일 내가 죽으면 천국에 올라가 그곳 책임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이봐요. 대체 뭐가 좋은 소식이었고 뭐가 나쁜 소식이었소?"

 

 

 ..... <나라 없는 사람 (A Man Without a Country)> by Kurt Vonnegut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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