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2013.06.14 16:59

지붕위의별 조회 수:3222

며칠 전에 읽었던 책인데 아래 라곱순님 글을 읽고 댓글을 달면서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제게 도움이 되었던 문장들을 조금 옮겨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평범한 삶이 아름답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평범해도 평범하지 않아도, 인생은 훌륭하거나 비천할 수 있다. 인생의 품격은 평범함이나 비범함과 상관없는 것이다. 내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인생을 어떤 색조로 꾸미고 싶다는 소망도 없었다. 그저 현실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훌륭한 인생이다. 그대로 가면 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고 느끼거나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직 충분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더 훌륭한 삶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들고 능동적으로 세상과 부딪치지 못했다. 번민하면서 주저하는 내게, 세상이 먼저 부딪쳐 왔다. 세상은 나에게 체념하거나 굴복하라고 했고, 나는 거절하고 저항했을 뿐이다. 부당한 강요에 굴복하면 삶이 너무나 비천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과 품격을 지키려고 발버둥 쳤다. 성년이 된 후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한 감정은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었다. 수치심과 분노, 슬픔, 연민, 죄책감,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자유의지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면 훌륭할 수 없다.


그러나 나를 위해,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인생은 훌륭할 수 없다는 관념에 눌려서 산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삶을 진정 원하는지 깊이 들여다보질 않았다. 무엇에선가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때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곤 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마다 누구에겐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괴로워한다고 해서 누군가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도덕주의적으로 보든 실용주의적으로 보든 좋은 생각이 아닌 것이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인간의 삶과 죽음은 비대칭非對稱이다. 생명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다. 그런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법으로 죽을 능력이 있다. 삶의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카뮈는 이 능력의 사용에 관한 의사 결정이 유일하게 중대한 철학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정답은 없다. 누구도 타인에게 삶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대신 결정해줄 수 없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과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미를 모르는 삶은 비천하고 허무할 뿐이다. 숱한 고난을 받고 살다가 모진 핍박을 받아 죽을지라도, 스스로 뚜렷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면 훌륭한 인생이다.



위로가 힘이 될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생의 품격과 성패를 결정짓는 중대사이다. 그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발견하려는 관념의 유희가 아니다. 부조리 가득한 세상에서 존엄한 인간으로서 품격 있게 살아가려면 나름의 답을 찾아야만 한다. 세상은 냉혹하다. 삶은 언제나 불안하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누구나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아도 다시 일어나 스스로를 치유한다. 반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은 작은 불운에도 쓰러지고 만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유시민씨를 싫어하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혹시 도움이 될 분도 있지 않을까 하여 제 나름대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옮겨보았습니다. 일종의 책 밑줄긋기라고 보셔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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